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찌 Jun 15. 2024

베를린과 명품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기 전,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는 웨이팅을 해야 하지만 유럽에서는 쉽게 살 수 있는 샤넬 백 하나를 사달라는 주문이었다. 사진과 모델명을 받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친구의 부탁이기도 했고, 가방 하나 사서 가는 일이 별로 힘든 일도 아니어서, 친구에게 다시 연락했다.

“야, 인터넷에 아무리 봐도 구입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서 가지?”

“누가 샤넬을 인터넷으로 사? 매장에 가서 사야지. 쿠팡이냐?”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좀 당황스럽고, 그 사실을 잘 몰라 머쓱했지만, 나의 첫마디는 “아 근데 나 샤넬 매장 가본 적도 없고, 백 사서 샤넬이라고 적힌 쇼핑백 들고 전철 탈 자신이 없는데…”였다. 샤넬을 구입하고 그 쇼핑백을 들고 베를린 전철을 탄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진심으로 생각만 해도 너무 창피했다. 베를린 서쪽의 쿠담이라는 곳에 가면 압구정동처럼 길게 늘어선 명품 매장 거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백화점의 명품 매장,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범접할 수 없는 고급짐을 가지진 않았지만, 베를린 사람들의 수준에선 쿠담이란 비싼 물건을 파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쿠담에 가서 샤넬을 사서 큰 쇼핑백을 매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니… 나 진짜 너무 쪽팔릴 것 같은데… 그날 신랑에게 샤넬 매장 앞에 시간 맞춰서 데리러 오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친구는 왜 그게 창피할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베를린에 살고 있거나 베를린을 잘 알고 있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나의 첫 독일어 선생님은 60이 훨씬 넘은 지빌레라는 선생님이었다. 집주인을 제외하고 내가 만난 첫 번째 독일 사람이 되겠다. 다정하고 교양 있던 지빌레 선생님은 한국 학생들이 항상 옷을 깔끔하고 잘 입고 다닌다며 내가 입고 가는 옷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하셨다. 어떤 날은 “오늘 중요한 면접 가냐”라고 물으실 정도였다. 나는 고작 치마에 구두를 신은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패션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던 터라 독일로 오기 전에 그때 입던 옷들을 거의 다 가져왔다. 게다가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깔끔하고 세련되게 입어야지 (라고 쓰고 잘 입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비싼 핸드백에 정장 재킷에 코트도 몇 벌이나 챙기고 하이힐도 계절별로 몇 켤레나 챙겨 왔다. 2024년 현재 한국 여자들도 구두보다는 편한 운동화를 많이 신는 트렌드로 바뀌었지만, 2011년 당시는 청바지와도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여성이 많이 있었다.

하루는 지빌레 선생님이 자기 아들과 싸운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다. 모피 코트가 너무 입고 싶어서 처음으로 장만해서 입고 나갔다고 한다. 선생님의 아들은 자기 엄마가 상식 없고 무식한 사람이라 너무 창피하다며 비난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제 나이가 60이 넘어 이 나이에 모피 코트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구입한 고급 코트였는데, 아들이 그렇게 나를 비난했다며 너무 속상해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 새끼가 괘씸하네! 엄마가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게 하나 사드리지는 못할망정 엄마에게 핀잔 따위나 주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13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베를린 사람이 되고 나니 선생님을 핀잔 준 아들도 이해가 되고, 모피가 입고 싶어 나이가 60이 될 때까지 기다린 선생님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대부분의 베를린 사람들은 (비단 베를린에 살고 있는 독일 사람들을 지칭하지 않는다) 비싼 옷, 비싼 차 등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는 하지 않는 편이다. 베를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대부분이 부자가 아니기도 하고, 월급쟁이들은 엄청난 세금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비는 지극히 평범하다. 의외로 고급 매장에서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며 우리나라처럼 백화점에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도 보기 드물다. 베를린 시내는 웬만하면 자전거로 다니거나 교통이 잘 되어 있어 차가 있어도 몰 일이 없다.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말로만 듣던 독일의 명차 벤츠, 아우디, BMW가 길거리에 즐비할 거라는 생각에 엄청 들떴는데, 내가 살던 모든 동네에서는 아주 드물게만 보았다 (나는 13년 동안 구 동독의 베를린에만 살고 있다).

베를린 생활이 익숙해지자 내 하이힐은 창고로 들어갔고, 바리바리 싸 온 옷들은 자연스럽게 옷장 속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지금 옷장을 열어보면 언젠가는 다시 입겠지 싶어서 버리지 못한 원피스가 한 50벌은 된다. 곧 삭아서 없어질 것만 같다.

하루는 한국에서 15년 전 큰맘 먹고 산 에르메스 가방을 메고 출근했다. 루이비통이나 구찌처럼 알만한 무늬가 찍힌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오래된 나의 소중한 가방일 뿐이라 아무 생각 없이 매고 출근을 했다. 부기관장이 불쑥 “와 에르메스 가방 같은 거 매고 다니는 사람이 xx라니 몰라 봤어요”라며 무슨 된장녀 취급을 했다. 한국이었으면 관심이 없던지 아니면 가방이 이쁘네 라는 반응이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아, 10년도 넘은 가방이에요”라고 대답하며, 부끄러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나의 구입 연도를 설명하며 과거의 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명품을 사고 누리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현재 필요하고, 좋아하는 디자인이거나 나에게 어울리는 제품이 명품이라면 현재의 나는 구입하기도 한다. 그저 이곳 베를린에서는 그다지 빛나지 않는 제품일 뿐이다. 누가 샤넬 백을 오픈런해서 샀다고 봐주는 사람도 없고, 옆집에 누군가가 명품 유모차가 있기 때문에 나도 그런 걸 사줘야 우리 (라고 쓰고 나라고 해석) 아이가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들에겐 명품은 가치 없는 소비일 뿐인 것이다. 명품의 소유 경험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고, 설사 타인들이 그로 인해 행복감을 맛본다 하더라도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자신도 똑같은 명품 소비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베를린 사람들에게는 전시회 다니며 쓰는 소비, 퇴근 후 바에 앉아 맥주 한잔 하는 소비, 주말마다 클럽에 가서 돈 쓰는 즐거움,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즐거움, 그리고 일 년 내내 절약해 여름휴가만큼은 잘 다녀오는 즐거움 등이 있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소비 기준, 그러니 행복감을 느끼는 기준이 명확해 보인다. 본인에게 일 년에 한 번뿐인 휴가가 중요하다면, 아무리 다른 사람이 명품 백을 메고, 매일 저녁 외식을 해도 그 사람의 행복에는 관심이 가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요즘 축구에 푹 빠져있다. 축구 선수들의 열정에 감흥을 받는다. 프리미어 리그를 보러 런던에 자주 가고 싶은 이유로 절약하고 있다. 그래서 신랑과 올해는 같이 모으는 돈을 조금 더 늘리고 외식은 덜 하기로 했다.

안타깝지만 명품 백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지도 특별한 경험을 부여해 주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나도 한참 돈 벌 때 열심히 사봤는데, 명품 백이 힘을 잃는 베를린에서는 시장 갈 때 가지고 가는 에코백보다도 빛이 나지 않는다. 현재 나는 런던에서 보게 될 축구 경기가 기대돼 들떠 있다.

이전 02화 지금의 나를 만든 경험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