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장재영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 소속 야구선수 장재영(22)이 타자 전향을 선언했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키움의 1차 지명을 받았던 장재영은 입단 당시 9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이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며, 역대 1위는 14년의 커리어를 마운드 위에서만 보냈던 한기주(2006년 1차 지명·계약금 10억)였다. 이로써 장재영은 타자로 전향한 투수 중 역대 최고액의 입단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KBO리그 신인 타자의 역대 최고 계약금은 1999년 강혁(25)이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며 받은 5억 7000만 원이다. 고교 시절 이중계약 문제로 인해 대학 졸업 후 현대 피닉스 실업야구단에서 활동했던 강혁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박재홍, 김동주와 함께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KBO가 영구 제명 징계를 철회하면서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할 자격을 얻었고, 입단 당시 역대 신인 타자 최고 계약금 기록을 경신했던 국가대표팀 동기(박재홍 1996년 4억 3000만, 김동주 1998년 4억 5000만)와 마찬가지로 해당 부문의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박재홍은 데뷔 시즌부터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골든글러브와 신인상, 홈런왕, 타점왕 기록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김동주는 커리어 내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야구장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도 역대 최고의 거포 3루수로 이름을 떨쳤다. 두 선수 모두 KBO에 의해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선정될 정도의 커리어를 쌓아 올렸다. 계약금만 놓고 보면, 강혁은 두산으로부터 박재홍이나 김동주보다 더 훌륭한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받은 셈이다. 이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홈런 타자'가 기대치일지라도 5억 이상의 금액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혁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은 신인 선수는 모두 여덟 명이며, 전원 투수다. 그리고 장재영을 제외한 단 한 명도 타자로 전향하지 않았다. 장재영 이전에 타자로 전향한 투수 중 신인 시절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았던 선수는 이형종이다. 고교 시절 최고 149km/h의 빠른 공을 던졌던 이형종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고 4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만 470개의 공을 던질 정도로 혹사당했던 유망주의 팔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이형종은 투수로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던 첫 7년 동안 두 번의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2015년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키움 구단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장재영은 구단과의 면담 과정에서 유격수 포지션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장재영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팀의 미래와 선수의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구단이 제안한 중견수 훈련도 함께 준비할 것을 제안했다.
프로 입단 후 타자로 전향한 투수가 1군에서 유격수로 자리 잡은 사례는 21세기 이후 단 한 건밖에 없었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1차 지명을 받은 박준영은 고교 시절 투·타 양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20경기서 3할 타율과 .977의 OPS를, 3학년 때는 엉성한 폼으로도 최고 145km/h의 빠른 공을 던지면서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박준영은 첫 시즌부터 1군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으나, 시즌 중반부터 팔꿈치 통증을 느끼다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됐다. 그리고 수술 과정에서 팔꿈치 힘줄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으며 타자로 전향했다.
박준영은 투수로서 두각을 보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도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유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박준영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유격수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야수로서 프로야구에서 뛰기 위해 오롯이 1년의 시간을 수비 훈련에 매진했다. 장재영이 유격수로 경기에 나선 것은 중학교 시절이 마지막이다. 장재영은 고교 시절 타자로 출장할 경우 주로 좌익수나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유격수는 내·외야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운동 능력을 요구하는 포지션이다. 유격수를 보던 선수가 타 포지션으로 전향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1루수나 코너 외야수가 유격수로 전향하는 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단에서 장재영에게 희망한 중견수 포지션의 경우, 성공적으로 전업에 성공한 케이스가 여러 건 존재한다. 과거 장재영과 같은 팀에서 뛰었던 장민석과 현재 장재영의 팀메이트인 이형종, LG에서 신고선수 신화를 써 내려갔던 이천웅, 그리고 KBO리그의 간판스타로 발돋움한 김강민과 바로 그 사례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은 좌완 투수 장민석은 1군에서 4경기 동안 3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하지만 타자 장민석은 1군 742경기에 나서면서 2395타석에 들어섰으며, 2010년에는 2할 8푼 3리의 타율과 41도루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김강민과 이형종은 부상으로, 나성범은 구단과의 면담을 통해 타자로 전업했다. 이들 셋은 FA로만 도합 236억 원을 벌어들일 만큼 웬만한 에이스 투수 이상으로 성공했다.
21세기 이래 투수로 프로야구에 입문한 선수가 타자로 전향한 사례는 총 26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26인 중 억대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무려 스무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이 수치에 대한 해설을 해주지 않을 테지만 누구든 쉽사리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지명 받았지만 구단과의 상의를 거쳐 타자로 전향한다거나, 투수로서 아쉬운 성적을 올리다가 타자로서 새 출발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행위는, 억대 계약금을 받을 만큼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가 아닌 한 감히 누릴 수 없는 행운 혹은 사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재영은 KBO리그 42년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계약금을 받고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수다. 그가 만 18세의 나이에 '9억'이 적힌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고 157km/h의 빠른 공을 던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장재영은 지난 3년간 1군 56경기서 6.45의 평균자책점을, 2군 36경기서 5.1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구단이나 같은 팀 동료들의 질책을 받는 대신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선발투수로 경기에 나서도 꾸준히 150km/h를 상회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장재영이, 언젠가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장재영은 '강속구' 없이 계약금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장재영보다 앞서 수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야구 선수가 된 이들은 어린 나이에 터뜨린 '잭팟'의 무게를 알았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글러브를 벗지 않거나, 혹은 벗을 수 없었다. 고교 시절과 신인 시절에 너무 심한 혹사를 당한 나머지 20대 중반의 나이부터 은퇴하는 날까지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된 한기주가 그랬다. 거듭된 수술과 재활로 인해 데뷔 9년 차가 돼서야 1군에서 두 자릿수 이닝을 던질 수 있었던 윤호솔이 그랬다. 데뷔 2년 차에 1군 마운드 위에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성영훈이 그랬다. 그렇기에 데뷔 4년차에 글러브를 내려놓기로 한 장재영의 급진적인 선택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는, 장재영이 고교 시절 타자로서도 주목 받던 유망주라는 점이다. 장재영은 2019년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타자'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엔트리에 승선했다. 당시 4번타자 1루수로 경기에 나서면서 매서운 타격 능력을 뽐내며 해외 취재진과 스카우트의 이목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석에서 '계약금 9억'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장재영보다 겨우 세 살 많으며 현재 KBO리그의 간판타자 중 하나인 강백호의 계약금이 4억 5000만 원이었다. 장재영의 계약금은 강백호보다 정확히 두 배 많다.
하이 리턴(High return)을 위해서는 하이 리스크(High risk)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어쨌든 장재영은 지난 44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결국에는 장재영 스스로가, 자신의 방망이가 150km/h 강속구보다 가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 이대호(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계약금 2억 1000만원/투수 → 1루수&3루수/17시즌 sWAR 52.06)
- 장민석(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현대 유니콘스/계약금 1억/투수 → 외야수/10시즌 sWAR 2.88)
- 김강민(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SK 와이번스/계약금 1억 1000만원/투수 → 외야수/22시즌 sWAR 29.08)
- 박종윤(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롯데 자이언츠/1억 1500만원/투수 → 1루수/12시즌 통산 sWAR -1.62)
- 김대우(2003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계약금 1억/투수 → 1루수&좌익수/7시즌 sWAR -0.5)
- 구명환(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 두산 지명/계약금 5000만원/투수 → 외야수)
- 이형종(2008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LG 트윈스/계약금 4억 3000만원/투수 → 외야수/9시즌 sWAR 14.31)
- 최원제(2008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삼성 라이온즈/계약금 2억 5000만원/투수 → 1루수/4시즌 sWAR 0.22)
- 장영석(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우리 히어로즈/계약금 1억 3000만원/투수 → 1루수&3루수/10시즌 sWAR -1.87)
- 강지광(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LG 트윈스/계약금 1억/투수 → 코너 외야수/5시즌 sWAR -0.02)
- 홍재영(2010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계약금 1억 6000만원/투수 → 외야수)
- 이천웅(2011년 신고선수 LG 트윈스/계약금 없음/투수 → 중견수/10시즌 sWAR 5.20)
- 이현동(2012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삼성 라이온즈/계약금 1억 7000만원/투수 → 코너 외야수/2시즌 sWAR -0.06)
- 나성범(2012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NC 다이노스/계약금 3억/투수 → 외야수/12시즌 sWAR 55.53)
- 한주성(2014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두산 베어스/계약금 2억 7000만원/투수 → 외야수)
- 김영한(2015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계약금 1억 5000만원/투수 → 외야수)
- 신동민(201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 SK 와이번스/계약금 5000만원/투수 → 코너 외야)
- 박준영(2016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NC 다이노스/계약금 2억/투수 → 유격수/5시즌 sWAR 2.70)
- 최우재(201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계약금 6000만원/투수 → 외야수)
- 임지유(201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8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계약금 /투수 → 1루수)
- 박성민(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롯데 자이언츠/계약금 7000만원/투수 → 외야수)
- 이원빈(2018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KIA 타이거즈/계약금 9000만원/투수 → 내야수(유격수))
- 하재훈(201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SK 와이번스/계약금 X(해외파)/투수 → 코너 외야수/3시즌 sWAR 3.33)
- 안인산(2020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NC 다이노스/계약금 1억원/투수 → 1루수&코너 외야)
※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지명됐으나 타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례도 포함
※ 타자 → 투수 → 타자 사례는 제외
※ 투타겸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타자로 전업한 사례는 제외 (ex : 김건희)
※ 채태인, 추신수 등 고교 시절 투수였다가 해외에서 타자로 전향하고 KBO리그에 입성한 경우는 제외
※ 하재훈은 2019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 당시 투수로 지명됐으므로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