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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Dec 29. 2024

또다시 사랑.

<인터스텔라>, 2014.

[인터스텔라 - 크리스토퍼 놀란] 또다시 사랑.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반드시. 그것에 뭐라고 이름 붙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이 비극적 운명이나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떤 오늘을 선택하는가, 나아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그 후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수많은 역작 중에 나를 가장 많이 울렸던 영화는 단연 <인터스텔라>였다. 머피의 법칙(Murphy’s Law). 쿠퍼가 딸 머피에게 이에 대하여 설명한 바에 따르면, 머피의 법칙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우주적 진리의 함축이다. 모든 존재의 현재(나타날 현 現, 있을 재 在)는 과거와 과거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에 대한 대응들의 합집합과 같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고, 현재 물체의 운동 양상은 작용과 반작용의 대칭적 현상의 결과다. 그러니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 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다른 줄로 옮겨 섰는데 옮겨선 줄이 오히려 늦게 줄어드는 것은, 불운(아닐 불 不, 옮길 운 運)이 아니라 줄이 줄어드는 속도를 관찰하고 줄을 옮겨야겠다고 판단하고 실행에 옮긴 자에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논리적 결과물이다. 인간은 아무리 단순한 현상이라고 해도, 현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내외부 요인을 관찰하고, 완벽하게 분석해 낼 수 없다.


식물이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해서 꽃 피우고 뿌리내리고 잎을 틔우는 태동이 치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의 가장 깊고 잔잔한 심연이 사실은 늘 투쟁 중에 있는 것처럼. 고요한 것들도 저마다 치열한 속내를 안고 있다. 조용하고 평온한 우주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은 치밀하게 실존을 갈구하고, 죽음의 순간 앞에서 자신의 의미를 고민한다. 본작은 우주처럼 고요하지만 또한 생명처럼 치열하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진공 상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때때로 본작과 박진감 넘치는 호흡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우주처럼 고요하고 치열한 스릴 덕분이다. 비뚤어진 사명감과 오만으로 가득한 만 박사와 거창한 대의보다 가족의 안위가 중요한 아버지의 싸움은, 그들이 뒹굴고 있는 얼음장만큼이나 차갑고 조용하며 지구보다 옅은 중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허공에 부유한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없이도 사생(죽을 사 死, 날 생 生)을 결단한 자들의 목숨을 건 격투로 읽힌다. 이는 결투에서 진 사람은 산소 부족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설정 때문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사실은 사랑과 신념의 치열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념과 사랑은 양립 가능하고, 상호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는 중요 가치들이지만, 균형을 잃고 상충(서로 상 相, 찌를 충 衝)하면 우선 가치의 자리를 두고 대결할 수밖에 없다. 광활한 얼음 행성 위에서 싸우는 작은 생명들. 이 대결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승리로는 어떤 것도 구해낼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 안에 차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대결에 투신하는 것이 인간이며, 그것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실존을 이룩하게 한다.


만 박사는 죽을 각오를 하고 먼 우주로 떠나오지만 생존을 향한 본능 앞에서 공공의 가치나 대의를 위한 각오는 무력화된다. 본작이 관객에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는 만 박사의 오만과 그의 패배의 과정에서 여러 키워드의 힘을 빌려 형체(모양 형 形, 몸 체 體)를 갖춘다. 만 박사는 그 누구보다 능력적으로 뛰어난 사람이고,(“He is REMARKABLE”),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계산 가능한 모든 가능성에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실존주의자(그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 특히 얼음 행성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직시한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살리고 인류의 다음을 기약하기 위하여 지구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되 그 자신은 동면을 취하는 도박을 기꺼이 선택한다.)이며,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셨듯이 과학이 인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기회로 삼고자 노력한다. 프로젝트 NAZARUS(나사로)는 애초에 플랜 B, 인류의 배양체를 지구와 유사한 새로운 행성에서 번성시켜 인류를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션이었고, 계획대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만은 여러모로 인류의 구원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부를만한 여러 요인(요긴할 요 要, 인할 인 因)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Endurance(인내, 참을성)호의 시스템에 접속을 시도하고, 완벽하게 도킹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어떻게든 에어락을 열려는 그에게 우주가 보낸 메시지는 늘, ‘unauthorized(승인되지 않은, 인정받지 못한)’ 뿐이다.


반면 쿠퍼는 어떠한 다른 의도도 없이, 오로지 사랑하는 자녀들의 내일을 지켜주겠다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우주로 떠나온다. 만 박사가 주목할만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쿠퍼에게 대패하게 된 이유는 만 박사의 인프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요한 관절, 즉 사랑하는 마음이 쿠퍼에게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구에서는, 브랜드 교수가 풀지 못한 중력방정식을 쿠퍼의 딸 머피가 풀어내고야 만다. 어떤 것들은 영원히 알 수 없고, 그 진리가 모든 유기물, 탄화수소, 심지어는 빛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한복판, 특이점을 확인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쿠퍼는 사랑의 힘 하나로 회전하는 가르강튀아의 내핵, 부드러운 특이점에 도달한다. 사랑이라는 단순하고도 원인 규명이 불가능한 힘을 빌려, 모든 시간대의 머피의 방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때야 깨닫는다. 머피를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 그러나 머피를 지키기 위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은 일어난다. 큐브에 펼쳐진 머피의 책장 뒤에서 자신을 말렸던 것도, 또한 자신을 미래로 떠밀었던 것도, 그저 쿠퍼 그 자신이다. 그는 가르강튀아에 끝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과거들의 잔영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은 과거의 자신이자 현재 블랙홀에 존재하는 자신이며, 중요한 것은 사랑을 지켜내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하여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에 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양자데이터는 긴 시간, 끝없이 펼쳐지는 진공의 성간(interstellar), 이제야 함께 흐르게 된 두 사람의 시계(시간대)를 건너, 부녀의 사랑의 증표에 뚜렷이 새겨진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알아챌 수는 없는 암호로. 사랑의 언어로.


사랑의 증표에 가득한 아빠의 메시지를 확인한 머피는 방정식을 풀어내고 외친다. EUREKA! 그것은 미지의 해(解)를 풀어낸 자의 외침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무게를 풀어낸 딸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됐음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다. 브랜드(앤 해서웨이 분)의 주장처럼 사랑은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관찰할 수 있고 동시에 강력하다. 사랑은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힘(力)이다. 해가 있어야 풀 수 있는 중력(무거울 중 重, 力) 방정식과 달리 기지(이미 기 旣, 알 지 知)의 영역에 존재한다. 결국 아멜리아는 연인의 죽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사랑이 가리키는 방향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요컨대 본작은 어떤 치열한 가치 추구와 그것을 추동하는 유형적 혹은 비유형적 제반(모두 제 諸, 일반 반 般) 면모가 갖추어지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어떤 가치 실현과 실행 과정도 전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만의 권한 없음이 해제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에게 권한이 부여될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긴 인내의 시간에 상응하는 응답을 받지 못한다. 반면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쿠퍼 부녀, 아멜리아 브랜드 박사, 지구에 남은 연인 아멜리아를 살리기 위해 완전한 고독 속에서 장시간 신호를 보냈던 에드먼즈는 긴 기다림의 끝에 사랑을 구원하는 데에 성공한다. 어떤 비극 속에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상대적으로 흐르고, 물리(물건 물 物, 다스릴 리 理)는 예외 없이 원칙대로 적용된다. 물체는 등속도로 움직이고, 힘은 가속도에 비례하며, 가속도는 질량에 반비례하고, 작용에는 반작용이 뒤따른다. 그러나 어떤 현상은 영원히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 큐브를 만든 것은 비단 쿠퍼 부녀의 사랑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행성 위에서도 사랑의 힘으로 삶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인류의 간절함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악수했던 They가 쿠퍼고, 회전하는 인듀어런스 호와 같은 속도에 회전하여 도킹에 성공하는 등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행운이나 초월적 존재의 서포트 때문이 아니라, 그저 머피의 법칙의 결과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난다. 사랑이 어떤 이론과 법칙보다 더 불가해한 방식으로 위력을 행사한다는 본작의 메시지는, 사랑이 관찰은 가능하나 인간이 규명하지 못한 힘이라는 점에서 진지한 설득력을 가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필생의 필모그래피 전체의 걸쳐, 원대한 이야기에 복잡한 과학적 이론을 끌어들이고, 압도적인 연출력, 장대한 묘사, 장엄한 사운드를 얹어 그야말로 대작을 제작해 왔다. 그러나 <메멘토>,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오펜하이머> 등 유수의 작업들은 거대한 작품 규모를 빌어 일상의 소중함과 사랑의 힘에 대하여 역설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복잡다단하고 논쟁의 소지가 많은 과학적 소재로, 비효율적이라고 할 만큼 간단하고 친절하게, 일상의 소중함과 일상의 파괴가 모두에게 미칠 악영향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의 작품들은 결국 인생을 만드는 것은 사소한 하루, 일상들의 모음이며, 우리는 더 위대한 인간이 됨으로써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고 필요하다면 개척함으로써 실존한다고 이야기한다. 평범한 일상의 엄청난 영향력을 공감하는 관객으로서, 우주, 양자역학, 중력, 웜홀, 블랙홀에 대한 이해 보다 일상으로의 회복, 사랑, 실존적 사고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애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테넷>, <오펜하이머>가 대놓고 관객에게 직관에 의존하여 작품을 이해할 것을 주문했던 것처럼, 본작 역시 복잡한 이 작품의 감상법에 대하여 “그냥 보기나 해”라고 주문한다는 사실 역시, 그가 작품이 차용하는 과학적 이론에 대한 이해 보다(이론적으로 가능할 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과학적 콘셉트가 현실화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는 차치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찰 가능하고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들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설명한다. 웜홀을 통과하는 인듀어런스호 가득, 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냥 보기나 해.”


그러니까 또다시 사랑이다. 결국은 사랑이다. 어려운 방정식을 풀지 않아도, 그냥 보기나 하면 느낄 수 있는 것. 우리가 한 편의 이야기이고, 성간의 시끄러운 고독과 고요한 폭발을 마음에 품은 우주라면,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에서 와서 우리의 피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이 나아가도록 이끄는 것. 삶을 다시 살게 하는 것(Nazarus), 시시포스의 운명도 기꺼이 짊어지고 견디게 하는 것(Endurance),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 영겁처럼 흐르는 시간과 칠흑 같은 우주의 어둠 앞에서, 찰나 같은 인간의 삶이 잠깐이나마 반짝이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말자. 오늘을 사랑하고,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옆에 앉은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자. 잃지 말자. 긴 밤, 별들과 별들 사이를 건너온 이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빛이 꺼져 가는 순간에도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살자. 기꺼이 밤을 받아들이지 말자. 사랑하고, 묻고, 울고, 말을 걸자. 거울에 비친 사랑하는 너의, 별처럼 빛나는 두 눈을 보면서 말한다. 나는 오늘을 살겠다고, 사랑하겠다고. 나의 오늘들이, 내가 살았던 지금들이, 내가 품었던 사랑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모여 벌어질 일들이 벌어지는 그 순간들을.  See you on the other side. 삶의 책장, 그 반대편에서 만날 때까지. 나는 쉬이 두운 밤에 침잠하지 않을 것이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Dylan Marlais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And you, my father, there on the sad height,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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