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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월 Aug 15. 2021

(지금은) 익 명 시 절

  

나는 아주 소심하다.

40년 넘는 평생 타인과 큰 소리로 싸움 한번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상황이 몹시 창피하고 생각만으로 눈물이 먼저 쏟아져 할 말도 다 못하기 때문에 피하고 살게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대담하기도 하다.

싸우고 싶지 않아 꼬리 내리거나 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는 싫으니 남들 보기에 별일 아니란 듯이 호탕하게 넘어간다. 그러니 흔한 말로 쿨한 성격,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며칠 밤을 잠자리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상상 속 복수를 하는 나를 누가 알까.

  

주변에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맘에 안 드는 것 다 지적하면서 시원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그래도 다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인간이고 사사건건 갈등 속에 피곤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소심하고도 평범한 내가 평범한 동네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다가 올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너무 오랜만에 이사를 하니 새삼스레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 전 동네도 어디에나 있는 요즘 사람들의 요즘 동네였다. 현관문 닫으면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 나도 맞벌이였던 앞집 부부 얼굴을 자세히 모르고 살았다(고등학생 그 집 아들과 강아지 두 마리 하고만 인사하고 지냈다). 그런데 다른 층인 501호가 6년 전까진 은아네 집이었고 은아네가 옆 동으로 이사한 뒤엔 같은 나이 태현이네가 이사 들어와 살다가 옆 단지 아파트를 매매해서 이사 가고, 지금은 더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가족이 살고 있는 건 안다. 3동 1103호엔 전셋집을 창고처럼 지저분하게 해놓고 살다 2년에 한 번 이사 가면 다음 이사 들어오는 사람을 기함시키기로 유명한 지율이네가 살며, 204호엔 술버릇이 고약한 기훈 엄마가 살고 있는 걸 안다.


즉, 특별히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작은 시골 동네가 아니었음에도, 고만고만한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연령대가 모인 신도시였다 보니 어린이집,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자 아는 얼굴이 더 많아져, 드디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주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어디가?"가 툭툭 튀어나오기 바쁘더란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놀러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그랬었다.

"너 부녀회장이니?"     

 

물론 처음엔 드디어 입을 트일 기회가 생기고, 오며 가며 인사 나눌 사람이 생겨 사는 맛이 있었다.

그런데 한 곳에 너무 오래 살면서 어릴 때와 다른 학부모 친구들, 동네 친구들이 늘어가는 건 어느 정도 피로감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룹이 늘어날수록 입조심은 물론이고, 아이들 일로 원수가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친한 사이라도 비밀이 생길 수밖에. 비밀이 생기다 보니 막역한 사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운동을 하는데 비빔국수가 너무나 먹고 싶던 날. 집으로 가는 길에 국숫집에 들러서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점심 식사를 포장하러 온 내 아이와 같은 반 학부모를 만났다. 혼자 왔냐고 묻기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친구에게 나중에 들었다. 그녀가 그 친구에게 전화했더란다. 내가 '무슨 일' 있는지 '모자 푹' 눌러쓰고 '혼자' 국수 시켜놓고 앉아 있더라고.

  혼자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날씨 좋으면 아무 곳에 앉아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나는 몇 번의 비슷한 일을 겪고는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 집 근처에서는 혼자 밥 먹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오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좀 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아는 얼굴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 미안한 표현이지만 방해가 되었다. 애들 기관에 보내놓고 꿀 같은 수다를 나누고 있는 엄마들 그득한 카페에서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독서를 한다고? 날씨 좋다고 아파트 단지 근사한 벚나무 아래 그늘에서 책을 읽어? 열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우연히 마주친 열 사람에게 인사와 함께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지 앵무새처럼 반복해 설명하게 될 것이었다.

  살다 보면 삶에 치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도 나를 아는 체하지 않았으면 싶은 날이 있다.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러나 겉으로 내 심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그럴 수 있는 날은 없다.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아니라면. 훌쩍 떠나버리지 않는다면. 


그러다 십수 년 만에 이 먼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며칠 동안은 여행 온 것 같았다. 전에 살던 곳과 아주 먼 곳이라 지역색이 확연히 달라서 더욱 그러했다. 밖에 나가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게 자유로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정말 너무 오랜만에 느꼈다.

  신났다. 일명 '코로나 확 찐 살'로 체중이 십 킬로가 불었어도 마주치는 누군가 깜짝 놀라 심각하게 "왜 이렇게 쪘어? 운동 좀 해야겠다!" “무슨 일 있어?”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그래서 두 번 나갈 것을 몰아서 한 번만 나가고 마는 못난 짓을 안 하는 것. 혼자 동네 카페에 앉아 멍때리기를 해도 집에 무슨 문제 있나 오해를 안 사도 된다는 것. 말 안 하고 싶을 때 말 안 할 수 있다는 것.

맙소사! 이런 것들이 이렇게 해방감 느낄 일이었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구동성 모두 공감했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안다고. 자기들도 너무 많은 얼굴들을 알아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그곳을 가끔은 벗어나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한 달쯤 지나면 내가 곧 외로워 우울해질 거라고 장담했다.

"그래? 그럼 갑자기 나 연락 안 받으면 외롭고 우울해서 땅 파는 줄 알어!"     


  그리고 지금 몇 달이 지났다.

친구들의 예언대로 나는, 외로워지지 않았다, 전혀!

   여전히 아무도 몰라서 너무 신난다.

아직도 조금은 한창 유행했던, 어디 어디 지역에서 한 달 살아보기, 뭐 이런 여행을 온 것도 같다.

소심한 내가 타인 의식을 덜 하니 실수를 해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 나에게 긍정적이니 다시 타인에게 여유롭게 대하게 된다. 긍정의 순환! 잘 보여야 한다는, 저 사람이 생각하는 내 평균을 유지해야 한다는 소심쟁이의 스트레스 자체가 없어졌다.

 

   신난 김에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런 신나는 익명의 장점이 왜 인터넷 문화에서는 적용되지 못할까, 익명으로 숨어 악플로 영혼을 죽이기보다 차라리 위선을 떨어주면 좋겠다 생각 한 것이다. 

오늘 내가 현실은 별로 성실하게 못 살아냈을지라도, 온라인 남의 얘기 아래엔 내가 저기 위 댓글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인 척, 열심히 선하게 쓰는 한 문장.      

  

  유한한 나의 이 익명성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나는 아직도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들지는 않고 있다. (마주치는 주민들과 인사는 반갑게 나눈다.)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와도 참 잘 맞는 인간형이라고 나는 나를 지지한다.

아직은, 조금 더.

이곳이 조금 오래 낯설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외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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