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지 Oct 28. 2019

조안나 코튼

ㅡ 렘브란트 그림보다 비싼 종이 오리기 작품

■다음 글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일부내용입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렘브란트의 <야경 Night Watch>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린 한 미술가의 종이 오리기 공예품들이 있었다. 그녀는 ‘종이 오리기 예술의 렘브란트’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녀의 종이 오리기 작업장은 당대 유럽의 명사들이 찾아드는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였다. 이 종이 오리기 작품 paper cut의 대가는 조안나 코튼 Joanna Koerten 1650-1715이다.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 


조안나 코튼은 종이 오리기 공예의 개척자이다. 당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브란덴부르크의 프레데릭 3세, 영국의 윌리암 3세, 독일의 여왕 등 왕실과 귀족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작품을 사 갔다. 종이 오리기는 16세기 무역상들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전통공예로 자리 잡았다. 조안나 코튼은 이 민속공예를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로 재창조한 종이 오리기의 대가였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녀의 작품들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걸작이었는데도, 종이 오리기를 민속예술로 간주하고 미술사에 넣지 않았다. 그녀의 종이 오리기는 멋진 작품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데 요구되는 재능은 단순히 그냥 손기술로 간과되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주변의 살아 있는 것들, 혹은 무생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데 관심을 가졌다. 남편은 암스테르담에서 천을 파는 상인이었는데, 그녀는 그 가게 안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여러 가지 예술적인 작업을 하고 전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수채화, 드로잉, 자수, 유리 에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종이 오리기 작품이었다.               


펜 그림 같이 보이는 종이 오리기 작품  


가위 하나로 세심하게 오린 종이는 그림으로 변신했다. 종이 오리기는 회화와 마찬가지로 이차원의 평면에서 탁월한 공간 효과를 창출했다. 눈은 그림을 보았는지 종이를 오린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갤러리에는 유명한 예술가와 시인들도 방문했고, 그녀의 사후에도 그러했다. 그녀는 이 기법을 사용해 풍경, 바다, 꽃, 과일, 동물, 건축물, 초상화, 심지어 종교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그림을 그리듯 재현할 수 있었다.


종이 오리기는 세부의 정확한 묘사를 위해 엄청난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마치 펜 그림처럼 보였다는 데에 그 혁신성이 있다. 그녀는 점차 풍경 대신, 종이 오리기로 황제나 왕과 같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조안나 코튼은 화가가 그린 세밀한 초상화만큼이나 종이를 정교하게 오려 훌륭한 초상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실물과 닮은 사실적 묘사는 실로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유럽 각국으로부터 열렬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가격 역시 엄청나게 고가였다. 어떤 외국인들은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그녀의 작품을 사 갔다. 그러나 종이는 손상되기 매우 쉬운 섬세한 재료이기 때문에, 현재 그녀의 작품은 단지 15점만 남아있다. 혹은 작품들이 개인적으로 팔린 탓에, 간혹 오래된 경매 카탈로그에서 이 15점 외의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조안나 코튼, 윌리암 3세 종이 오리기 초상

조안나 코튼의 열혈팬이었던 영국 윌리암 3세의 종이 오리기 초상화이다. 물결 모양의 컬을 가진 머리칼 한 올 한 올을 섬세한 절개 기술로 묘사했으며, 털코트의 털도 꼼꼼하게 재현되어 있다.      



조안나 코튼의 열혈팬이었던 영국 윌리암 3세의 종이 오리기 초상화이다. 물결 모양의 컬을 가진 머리칼 한 올 한 올을 섬세한 절개 기술로 묘사했으며, 털코트의 털도 꼼꼼하게 재현되어 있다.   

  

   

조안나 코튼, <사냥 장면>, 1700, Verhave Collection, Willet-Holthuysen Museum, Amsterdam

엽서 크기의 종이 오리기 작품이다. 이 작은 공간에 나무와 개, 토끼, 사냥꾼, 풀 등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조안나 코튼, <성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1703, cut paper and crystals, 높이 70mm, V & A Museum



이 작품은 조안나 코튼의 매우 비범한 기술을 보여준다. 작품 높이가 70mm에 불과하다. 100배 정도 확대하여 볼 때, 그 정밀하고 복잡한 세부 묘사가 관람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놀라운 작품이다.      


조안나 코튼, 종이 오리기 꽃 정물화

 

조안나 코튼, 종이 오리기 종교화

 



미술관 창고 속에서 잠자는 옛 영광   


조안나 코튼의 작품은 극소수만 남아있는 데다가, 그나마 일부는 전시실에 걸려 있지 못하고, 미술관 창고 서랍 속에서 수백 년간 잠자고 있다. 이는 여성 미술가로서의 핸디캡과 공예가라는 미술사에서의 위치가 그녀를 이중의 질곡에 꽁꽁 묶어 놓았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회화와 조각 이외의 미술 분야의 여성 예술가들은 미술사에서 여성 화가나 여성 조각가보다 한층 낮은 대접을 받아왔다.  

   

다방면의 매체에 재능이 있었던 그녀가 회화에 전념했다면, 그림에서도 큰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위로 종이를 섬세하게 오려 회화에 버금가는 초상화들을 창조해낸 것은 미술사에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기에 충분한 성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