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을 만든 여자
오늘날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 디자인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북유럽 디자인 양식은 칼 라르손 Karl Larsson 1853-1919과 카린 라르손 Karin Larsson 1859-1928 부부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 국가들은 겨울이 길고 추운 기후적인 특성 때문에, 밖의 차가운 풍경과 다른 밝고 따뜻하고 포근한 실내 인테리어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북유럽은 자연을 소재로 하여 실용적이며 간결한, 자연의 빛과 에너지를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대체로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의 원목 가구, 밝은 색상의 포근한 느낌을 주는 패브릭 소재의 소파, 쿠션, 커튼, 자연광과 가까운 따뜻한 조명 등이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실내의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창출해낸다.
칼과 카린의 새로운 디자인 탄생은 그들의 유명한 집 ‘칼 라르손-고덴 Carl Rarsson-gåden’을 수리하고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부부가 원목을 잘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가구와 벽지, 패브릭 제품을 망라한 실내 디자인은 북유럽의 모던 인테리어의 기초가 된다. 그들은 유럽의 실내 장식의 트렌드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테리어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풍의 디자인 가구나 소품을 판매하는 이케아 IKEA는 이들 부부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한다. 이케아는 라르손의 집을 영감의 원천으로 하여, 칼과 카린의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들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록 라르손 스타일을 값싸게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어쨌든 이케아가 북유럽 풍의 디자인 가구와 생활 소품을 전 세계에 퍼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스웨덴이나 전 세계의 디자이너나 실내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꾸준히 영감을 얻고 있다.
그런데 칼 라르손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는 반면, 카린 라르손은 스웨덴 이외의 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를 단지 칼 라르손의 아내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칼 라르손의 아내, 혹은 보조자 이상이었으며, 어쩌면 칼보다도 카린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칼은 모던 아트를 싫어했다. 그러나 카린은 주도적으로 ‘칼 라르손-고덴‘을 조금씩 모더니즘 색깔로 바꾸어 버린다. 가구와 꽃의 배치, 색채와 패턴을 적절한 조합 속에서 스타일링하는 그녀의 재능이 이 집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 그 새롭고 독창적인 실내 인테리어는 사실상 많은 부분이 칼 라르손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아내 카린 라르손의 솜씨였다.
그녀는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시금치 등 채소를 길렀을 뿐 아니라, 추운 스웨덴에서 기르기 힘든 아프리카의 푸른 백합 같은 이국적인 식물도 키워 집 안팎으로 생기가 넘치게 했다. 한편, 수선화, 튤립, 백합 등 꽃을 재배해 집 안의 가구, 패브릭과 조화롭고 화사하게 어울리도록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 또한, 카린은 집안에서 사용되는 직물(앞치마, 침대 덮개, 식탁보, 베개 커버, 커튼, 테이블 러너, 베드 스프레드, 키친 리넨 등)과 자신과 아이들의 옷, 자수 작품, 가구(실용적인 가구, 식물의 스탠드, 의자, 아이들의 나무침대)를 디자인했는데, 그것들은 밝고 유쾌하며 대담하고 생생한 색채와 모던한 추상적 스타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당시는 여성의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대였고, 그녀는 전문적인 직업 화가가 되는 대신, 섬유예술 및 가정용 가구, 실내 장식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부부가 함께 칼 라르손 고덴을 디자인했다고 하며, 심지어 칼 라르손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개척자라고 기록하지만, 어쩌면 이 집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카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카린이 없었다면, 이 집의 탄생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당시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한계 속에서, 이 놀라운 집에 대한 카린의 역할은 작게 취급되었다.
카린의 남편 칼 라르손은 스웨덴의 국민화가이며, 미술공예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칼의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은 너무도 불우했다.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그는 세탁부로 하루 종일 일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겨우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스웨덴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파리와 스웨덴을 오가며 창작 활동에 매진하던 그는 화가 지망생 카린 베르거 Karin Bergöö, 즉 카린 라르손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결혼은 그의 삶을 축복으로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다. 카린은 그에게 좋은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 뮤즈가 되어 주었고, 그의 작품의 비평가이기도 했다. 결혼 후, 그는 생활이 안정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을 확립하게 되었고, 수채화의 대중적 성공을 시작으로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반면, 카린은 결혼과 동시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술 작업을 모두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림 대신 패브릭 제품과 가구에 관심을 돌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쏟아부었다. 붓은 바늘로, 물감은 실크나 모직의 실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카린의 부모는 그들 부부에게 스웨덴 북부의 달라르나 Dalarna 지방의 작은 마을 순트보른 Sundborn의 별장을 선물로 주었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가진 이 집을 디자인 실험의 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칼 라르손-고덴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칼과 카린의 집 꾸미기 작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집 중의 하나가 된다. 칼은 가구, 생활용품, 패브릭 등 이 집의 실내 인테리어 소품을 그렸고, 주변 자연환경 속에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가족의 일상생활을 자신의 수채화에 담아냈다. 그리고 1899년, 마침내 그는 자신이 그린 수채화 모음 중 24점을 뽑아 책으로 출간했는데, 그것이 ‘우리 집 Ett Hem,’이다. 후에, 칼 라르손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이 그림들을 전시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시골집 칼 라르손-고덴은 ‘릴라 히트나스 Lilla Hyttnä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었는데, 이는 스웨덴어로 ‘작은 용광로’라는 뜻이다. 집 주변의 매력적인 환경과 실내 인테리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게 한다. 당시 많은 이들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끄러운 도시에 살고 있었고, 도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쳐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시골집은 단지 새로운 양식의 실내 인테리어를 제시했던 것을 넘어서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환경 속의 이상적인 행복한 가정의 모습, 그리고 아동 친화적이고 비위계질서적이며 따뜻한 현대 가정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매혹시켰다.
부부는 집수리에 어떤 건축가나 디자이너도 고용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그 지방 목수나 인부들의 노동력과 자신들의 디자인 감각에 의지했다. 옛 부르주아지 취향의 칙칙한 실내 장식은 빠르게 철거되고, 집은 산뜻하고 밝은 색채로 단장된다. 부부의 작업실 같은 몇몇 장소 외에, 모든 공간은 동등하게 취급되었고 어느 곳이든지 아이들이 마음껏 드나들도록 허용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집안의 공간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커튼으로 드리워진 빅토리아 풍의 어둡고 무거운 실내와 전혀 다른, 사랑스러운 아늑한 거실은 칼 라르손의 여러 수채화와 간행물을 통해 스웨덴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편안해 보이는 거실, 카린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일곱 아이들의 피크닉 장면, 그림 같은 시골집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과 밝고 화사한 인테리어에 열광했다.
카린 라르손은 이 아름다운 집을 꾸미고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현대 스웨덴 디자인 양식을 창조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녀는 스웨덴의 민속적인 전통 디자인과 세기말에 유행한 미술공예운동과 자포니즘 Japonism 등 새로운 국제적 트렌드를 주체적으로 수용, 융합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했다. 1900년대 스웨덴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 인테리어의 특징인 밝고 행복하고 경쾌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없었다. 그녀는 이전의 어둡고 무거운 색조의 가구들을 밝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교체했으며, 쿠션, 커튼, 테이블 크로스 등에 쓰인 직물 중 많은 것을 원색으로 선택했다. 칼과 카린은 실생활에 편리하도록 이 집을 조금씩 조금씩 고쳐 나갔는데, 그들의 근본적인 신념은 실용성을 기본으로 하여 소박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카린은 달라르나 지방의 전통적인 디자인 양식에 관심을 가졌다. 이 지방은 독창적인 지방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달라르나의 집들은 색채로 가득했고 찬장, 벽, 문에 장식적인 그림들이 있었는데, 부부는 이것들을 자신의 집에 차용했다. 카린의 직물 작품에도 이 지방의 전통적인 것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달라르나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공예품을 만들고 팔아 생계를 책임지는 전통이 있었다. 달라르나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하는 동안 카린은 술 장식의 직물 제품을 제작하는 기술도 배우기도 했다.
< 카린 라르손이 디자인한 가구 및 직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