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내장탕
달콤한 핫케익을 포크로 콕 찍어 잘만 먹던 중이었다. 티브이를 보다 웃음이 터졌는데, 어쩐지 눈물이 나서 엉엉 울었다. 곱창전골을 끓여 가족 식사를 하는 티브이 속 아버지의 모습에 아빠가 겹쳐 보인 까닭이다.
우선 그 메뉴, 곱창전골이 신경 쓰였다. 우리 아빠도 내장탕 참 좋아하는데. 약간 꼬릿한 냄새가 남아있는 쫄깃한 내장을 아빠 덕분에 나도 자주 먹었었다.
도시락에 랩으로 예쁘게 포장된 고기를 파는 대형마트에선 내장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오가는 좁은 길, 가게 문 앞에 빨간 대야를 놓고 그날 온 싱싱한 내장을 담아놓는 단골 정육점에서 우리 집은 이따금 내장을 사다 먹었다. 간판은 대성 정육점인데 부모님은 대성육구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그렇게 불렀다나?
몇 해 전 정육점 할머니는 가게를 며느리에게 물려주시고 오전 중에만 잠깐 자리를 지키신다. 그래도 가끔씩은 전처럼 엄마한테 전화를 하신다. "어멈아~ 오늘 고기 좋~은거 들어왔다. 잘해줄게 언제 올래?"
그럼 오늘은 고기를 좀 먹어볼까 하고 대성육구에 갔다가, 어느 날은 갈비를 20만 원어치, 어느 날은 내장은 한 소쿠리 사 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고기를 사 온 얘기를 들으면서 하는 대화는 늘 비슷하다.
"어우 뭔 고기를 이렇게 많이 샀어?"라고 묻는 나.
"아니 할머니가 들어가자마자 고기를 덩어리 채로 저울에 올려놔. 그리고 싸게 준다고 자꾸 유혹하니까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엄마.
"다시는 고기 소리 안 하게 당신 좋아하는 고기 실컷 먹자."며 껄껄 웃는 아빠.
가끔은 아빠가 먼저 슬며시 내장 얘기를 꺼낸다.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해서 내장탕을 좋아하시는데, 큰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거 하나 못해주겠냐며 엄마는 바로 대성육구로 향한다. 빨간 대야에 담긴 내장을 사러.
꼼꼼하게 밀가루로, 굵은소금으로 박박 주물러 씻고, 데치고 몇 번을 손질해서 벌집 몇 점, 곱창은 구워 먹었다. 그러고 나서 큰 곰솥에 내장탕을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된장을 풀고 우거지도 좀 넣고 팔팔 끓인 내장탕은 파는 것보다 맛있었다.
얼마 전 고모 친구가 하시는 해장국집에 우연히 들렀다. 엄마가 인사를 하니,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긴가민가 하셨다며 아빠 얘기를 꺼내셨다.
"오빠가 우리 학교 졸업할 때 짜장면도 사주고, 사진도 찍어줬는데, 오빠가 참 사람이 좋잖아요?"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아빠의 이야기가 따듯해서 참 좋았다.
그나저나 달콤한 핫케익을 먹다가 갑자기 울음이 났던 건, 티브이 속 아버지가 그 두툼한 손으로 곱창전골을 한 번 떠먹고는 가족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다. 싸워서 잠깐 꽁기했던 분위기가 일순에 풀어지고 다 같이 웃는 그 장면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웃다가 울어버렸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