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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r 23. 2022

그 여름에 내가 두고 온 것

엄마의 yepp(옙) mp3

 친구가 선물 해 준 LP 플레이어가 있다. 내 세대의 물건은 아니다. 90년생인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 cd플레이어를 지나 mp3까지 경험한 뒤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다.


 LP 플레이어를 실물로 본 적도 별로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쓰이는 걸 본 정도다.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요즘엔 USB를 꽂아 들을 수도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 기능도 있다.

내가 예전에 설정해 두었던 글씨/ Lovely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핑크색 mp3를 꺼내어 LP 플레이어에 연결하고 계셨다. 무려 13년 전의 yepp 제품이다. 카카오톡이 출시 되기 전이었고, 그 때 나는 스마트폰과 아날로그 폰의 중간 단계인 터치폰을 쓰고 있었다. (LG에서 나온 쿠키폰. 지금 쓰는 아이폰 전에는 g5를 썼다. 꽤 오랫동안 LG 핸드폰을 썼구나.)


 강렬한 핑크색을 본 순간, 포트키를 잡은 해리 포터처럼 과거의 기억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맞아, 지나 온 나의 세계에 이런 일들이 있었지...


 처음 해보는 거라 뭐가 잘 안되서 알아보기로 하고, 다른 스피커에 끼웠다. 노래 하나 하나마다 미쳐버린다. 서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서 박아 둔 편지를 발견한 기분. 목록이 넘어갈 때마다 다른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 건 유튜브에서 힙한 팝송 모음을 들을 때도, 기분을 업 시키려 디즈니 ost 모음을 들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꽂아도 나온다.


 아! 조덕배의 노래다. 음질도 되게 좋다. 이건 유튜브 연결해서 들을 때 쓰는 블루투스 스피커다. 돈 주고 산 mp3 파일이라 그런가 뭔가 다르다.


 제목을 모르는 락 발라드도 나온다. 미간이 먼저 반응하는 이 익숙함. 최근에 '화요일은 밤이 좋아'같은 데서 누군가 불렀던 것 같다

(네이버 음악 찾기로 찾았음/ 조장혁-중독된 사랑(2000))


 이영현의 '체념'은 얼마 전에도 화제가 됐었다. <놀면 뭐하니>에 나왔던가? 빅마마 활동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노래방에서 나도 부르고 친구도 부르고 옆방도 부른 그런 노래다. 중1 학교 축제 때 선배들이 빅마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동경하며 바라봤다. 2년이 지나 중3이 되었고, 축제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친구랑 같이 빅마마의 '브레이크 어웨이'를 불렀던 추억이 있다.


 다음 곡은 최헌의 '그리워 그 시절'이다. 엄마가 흥얼거리면서 말씀하신다. '이 사람 젊을 때 많이 들었는데. 그 다음부턴 안보여~. 진짜 그 시절 그립다.'


 포지션의 '하루'는 찾아보니 2007년도 노래다. 13년 전 엄마 mp3의 노래는 거의 내가 멜론에서 돈 주고 다운받아 드린 건데, 그 때 기준으로도 몇 년 전 노래다. 당시는 대학교 기숙사에 살던 때라 주말마다 집에 갔었다. 엄마는 어디선가 좋은 노래를 들으면 제목과 가수를 알아두었다가 나를 만나면 다운로드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꽉 채워진 플레이 리스트를 출근길 버스 안에서 들으셨다.


 반주 없이 바로 가사로 시작하는 '밤이 깊었네'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밴드 '크라잉넛'의 노래인데, 고등학교 밴드부 활동을 할 때 친구들과 같이 연습했었다. 나는 드럼을 맡았다. 원래 하고싶었던 건 기타였는데,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보인다고 드럼을 맡게 되었다. 내가 곡의 도입 부분에서 스틱을 '딱 딱 딱 딱' 네 번 치면, 친구들은 각자 맡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연습할 땐, '밤이 깊' (두) '었'(둔) '네~' 이런 느낌으로 넘어가는 초입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잘 듣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오늘 추억 속으로 순간 이동 여러 번 했다. 실존하는 타임머신이 바로 노래구나. 영화<앤트맨>에 나오는 양자 터널 저리 가라다.




 오늘과 내일을 사느라 과거의 나를 잊고 살았다. 반가워 과거의 나야. 나 여기 잘 있어. 너도 잘 있었지?




 나이가 드는 것의 좋은 점은 떠올릴 추억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추억 부자가 되고있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오랜만에 들어 본 mp3 속 노래들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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