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yepp(옙) mp3
친구가 선물 해 준 LP 플레이어가 있다. 내 세대의 물건은 아니다. 90년생인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 cd플레이어를 지나 mp3까지 경험한 뒤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다.
LP 플레이어를 실물로 본 적도 별로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쓰이는 걸 본 정도다.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요즘엔 USB를 꽂아 들을 수도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 기능도 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핑크색 mp3를 꺼내어 LP 플레이어에 연결하고 계셨다. 무려 13년 전의 yepp 제품이다. 카카오톡이 출시 되기 전이었고, 그 때 나는 스마트폰과 아날로그 폰의 중간 단계인 터치폰을 쓰고 있었다. (LG에서 나온 쿠키폰. 지금 쓰는 아이폰 전에는 g5를 썼다. 꽤 오랫동안 LG 핸드폰을 썼구나.)
강렬한 핑크색을 본 순간, 포트키를 잡은 해리 포터처럼 과거의 기억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맞아, 지나 온 나의 세계에 이런 일들이 있었지...
처음 해보는 거라 뭐가 잘 안되서 알아보기로 하고, 다른 스피커에 끼웠다. 노래 하나 하나마다 미쳐버린다. 서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서 박아 둔 편지를 발견한 기분. 목록이 넘어갈 때마다 다른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 건 유튜브에서 힙한 팝송 모음을 들을 때도, 기분을 업 시키려 디즈니 ost 모음을 들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아! 조덕배의 노래다. 음질도 되게 좋다. 이건 유튜브 연결해서 들을 때 쓰는 블루투스 스피커다. 돈 주고 산 mp3 파일이라 그런가 뭔가 다르다.
제목을 모르는 락 발라드도 나온다. 미간이 먼저 반응하는 이 익숙함. 최근에 '화요일은 밤이 좋아'같은 데서 누군가 불렀던 것 같다
(네이버 음악 찾기로 찾았음/ 조장혁-중독된 사랑(2000))
이영현의 '체념'은 얼마 전에도 화제가 됐었다. <놀면 뭐하니>에 나왔던가? 빅마마 활동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노래방에서 나도 부르고 친구도 부르고 옆방도 부른 그런 노래다. 중1 학교 축제 때 선배들이 빅마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동경하며 바라봤다. 2년이 지나 중3이 되었고, 축제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친구랑 같이 빅마마의 '브레이크 어웨이'를 불렀던 추억이 있다.
다음 곡은 최헌의 '그리워 그 시절'이다. 엄마가 흥얼거리면서 말씀하신다. '이 사람 젊을 때 많이 들었는데. 그 다음부턴 안보여~. 진짜 그 시절 그립다.'
포지션의 '하루'는 찾아보니 2007년도 노래다. 13년 전 엄마 mp3의 노래는 거의 내가 멜론에서 돈 주고 다운받아 드린 건데, 그 때 기준으로도 몇 년 전 노래다. 당시는 대학교 기숙사에 살던 때라 주말마다 집에 갔었다. 엄마는 어디선가 좋은 노래를 들으면 제목과 가수를 알아두었다가 나를 만나면 다운로드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꽉 채워진 플레이 리스트를 출근길 버스 안에서 들으셨다.
반주 없이 바로 가사로 시작하는 '밤이 깊었네'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밴드 '크라잉넛'의 노래인데, 고등학교 밴드부 활동을 할 때 친구들과 같이 연습했었다. 나는 드럼을 맡았다. 원래 하고싶었던 건 기타였는데,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보인다고 드럼을 맡게 되었다. 내가 곡의 도입 부분에서 스틱을 '딱 딱 딱 딱' 네 번 치면, 친구들은 각자 맡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연습할 땐, '밤이 깊' (두) '었'(둔) '네~' 이런 느낌으로 넘어가는 초입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잘 듣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오늘 추억 속으로 순간 이동 여러 번 했다. 실존하는 타임머신이 바로 노래구나. 영화<앤트맨>에 나오는 양자 터널 저리 가라다.
오늘과 내일을 사느라 과거의 나를 잊고 살았다. 반가워 과거의 나야. 나 여기 잘 있어. 너도 잘 있었지?
나이가 드는 것의 좋은 점은 떠올릴 추억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추억 부자가 되고있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오랜만에 들어 본 mp3 속 노래들이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