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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Oct 02. 2021

너라는 사람의 세계

'닮다'에서 벗어나기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마주하면 온갖 생각이 든다. '왜 닮지 말라는 것들만 닮았을까.', '이것만은 진짜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렇게 자라다가 나처럼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나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다.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도 존재하는 게다. 나의 아이들은 짜증이 날 때, 신경질을 부릴 때, 싫은 마음을 표현할 때 등등 완벽하게 나를 닮았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고, 말을 잘하지 않는다. 몸을 배배 꼬면서 짜증을 부리다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온 몸에 힘을 주며 버티기도 한다. 아이의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정말 전적으로 나를 닮았다.


  첫째 아이는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는 것을 늘 어려워한다. 아침에 아이를 깨울 때마다 짜증과 피곤을 다 받아줘야 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 변함없이 아이를 깨워 화장실에 들여보내었다. 세수하고 나오면 그만인데, 아이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화장실 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내뱉으려는 찰나, 아이가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눈물을 터트렸다. 처음엔 아이의 투정이나 거짓말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는 내내 목을 움직이기 너무 어려워하는 게 아닌가. 아이에게 차근차근 물어보니,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비틀며 짜증을 부리다가 그만 담이 와버린 것이었다. 아뿔싸, 무슨 이런 것까지 날 닮는담! 문제는 첫째 아이만 나를 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아이의 성질머리는 더욱 나를 닮았다. 남자아이라 나보다 행동이 조금 더 클 뿐이다.


  나와 닮은 아이는 이해하기 쉽기도 하지만 더 많이 부딪히기도 한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아이의 행동을 용납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단점을 알고 있지만 고치기 어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지점일 것이다. 그래서 나를 닮은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면서도 매섭게 변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와 같은 문제로 씨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극단적인 마음이 앞서 있어서 말이다. 아니면 아이도 모르게 닮아버린 모습에 미안한 마음을 감추는 가면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정 안에 나를 닮은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피하고 싶은 내 모습을 자꾸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서 조절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는데, 아이에겐 쉼 없이 조절되지 않은 채 나타나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보기 힘들기 때문에 아이에게 있는 힘껏 '지금, 당장' 수정을 요구할 때가 많다. 뒤돌아보면 내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까지,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까지, 나의 잘못을 온전히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면서 말이다.


  너에게도 너만의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걸 자꾸 잊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닮았든, 닮지 않았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어차피 각자의 기질과 성향대로 태어나는 법이니까, 너의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너는 나를 닮았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 감정은 자칫 '나는 너를 알아.'라는 엄청난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절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은데, 너무나 다른 '너'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런 너에게 나는 자꾸 우문을 던졌다. "너는 누굴 닮아 그러니?"


  오늘부터 '닮다'라는 올무에서 벗어날 작정이다. 너에게서 나를 발견할수록, 미처 화해하지 못한 나를 만났다. 그래서 그 분노가 엉뚱한 곳에서 불꽃을 피웠다. 이제 너에게서 나를 빼고, 온전히 너만 볼 작정이다. 너의 안에서 자꾸만 나를 투영하며 나와 너를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고, '너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힘을 쓸 작정이다. 너의 세계에 새롭게 들어가, 너를 탐구하고 발견해야겠다. 그 안에서 즐겁게 탐험하며 뛰어놀다 보면, 어느새 너와 내가 온전히 독립하여 마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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