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쳤다.

by 박아담

엄마가 다쳤다. 아파트 입구 계단 옆 내리막에서 아기가 와다다다 뛰어가는 걸 잡다가 그만, 얼굴로 넘어졌다고 했다. 서류를 뗄 일이 있어서 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일어난 사고였다. 밖에 나와있는 동안 엄마는 몇 번이고 전화를 했다. 아기가 응가를 왕창 했다면서 깔깔깔 웃으면서 전화가 오고, 10분도 안 돼서 또 전화가 왔다. "엄마 다쳤어 얼른 와" 부리나케 달려 집 앞에 다다르니 대문 앞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피칠갑이 되어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미한 나와는 달리 그 새빨간 피를 보고도 아기는 하나도 울지 않았다.

제일 가까운 동네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엄마는 병원을 가는 와중에도, 병원에 도착해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야야 별로 안 다쳤어야 뼈는 안 다쳤다니깐" '별로' 안 다쳤다는 말을 계속했다. 피칠갑을 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참 이질적이었다. 진료 접수를 하고서야 엄마의 상처를 찬찬히 보았다. 콧잔등, 인중, 광대까지 시멘트 바닥에 쓸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내가 상처를 피해 코뼈나 광대뼈 부근을 만져 괜찮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암시롱 안 한다며 손녀딸과 웃고 장난을 쳤다. 엄마는 오히려 다쳐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 엄마와 달리 나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지난 토요일에 다녀올걸... 아니 조금만 더 서둘러서 집에 올 걸...' 말끔한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어디서 다치셨냐고 정중히 물었다. 정중한 의사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엄마는 명랑하게 말했다. "아니 글쎄 아기가 와다다다 달려가가지고 내가 잡을라고 하다가 얼굴로 확 넘어졌지 뭐예요, 우리 아기가 어찌나 빠르던지" 엄마는 질문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제 손녀딸이 얼마나 잘 걷고 잘 뛰는지에 대해 말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진짜 엄마 말대로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처치 준비를 하는 간호사들을 보면서, 처치를 하면서도 엄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죠? 팔도 안 부러지고, 무릎도 괜찮고 그죠? 야야 올해 운이 다 좋다!"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약을 지었다. 엄마는 또 말했다. "야야 의사 선생님이 빠꼼이다. 이거 하니깐 훨씬 안 아프다. 아이고 우리 아기 안 다쳐서 얼마나 다행이니 얘 좀 봐라 피를 보고도 울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야" 엄마는 손녀딸이 울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은 것도 다 대단하다며 제 손녀딸을 추켜세웠다. 나는 그제야 조금 웃음도 나오고 진짜 엄마 말대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맞아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지. 큰일에 강한 사람. 옛날에 어느 사거리에서 토스트 장사를 했을 때 좀도둑이 엄마 가방을 통째로 훔쳐갔었던 일이 있었다.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시절이었다. 그날 장사한 돈에 공과금 낼 돈까지 몽땅 잃었다. 엄마는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10분도 안 돼서 벌떡 일어났다. "아휴! 나보다 못한 사람 줬다쳐야지 뭐!"

약국을 나와 우리는 죽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진짜 긍정적이야" 그러면서 속으로 내심 생각했다. 그래 엄마 말대로 어디 하나 안 부러져서 얼마나 다행이야, 혹시 머리라도 부딪혔다면 최소 뇌진탕이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 또 우리 아기가 안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이야.. 아차차 딸 대신 엄마가 다친 게 다행이라니... 엄마는 피칠갑에 이어 반창고를 코에 덕지덕지 붙이고도 유모차에 있는 손녀딸과 장난을 치고 하하 호호 웃었다. "엄마가 성격이 좋지? 좋지? 미장원 가면 다들 코 세웠다고 하겠다야!" 우리는 그제야 같이 웃으면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한번 다친 걸 어떡하냐며 앞니라도 깨졌으면 100만 원은 더 들었을 텐데 했다. "그래 엄마 말이 다 맞아. 다행이다. 진짜" 안 다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말은 고이 넣어두고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엄마의 시선은 죽집 옆 복권집으로 향했다. 나는 유모차를 끌면서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그쪽이 아니라!" 그러자 엄마가 한숨을 퐉! 내쉬며 말했다. "아휴! 짜증 나는데 복권이나 사 불자!" 엄마는 복권집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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