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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Apr 24. 2023

[내 몸] 과식부터 바꿔보자

남들과 똑같이 먹으면 과식

1. 위가 작은 나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한 숟가락 남기고 일어나려면 엄마가 말했다.

  "턱 찌끄레기 남기면 복 나간다"

  "알았어요. 다 먹을게요"

  엄마의 목소리. 밥을 남기지 말라는 말.


  밥 한 톨 상에 떨어지면 바로 입에 넣었다. 방바닥에 떨어지면 손으로 얼른 주워 먹었다.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하니까. 맘 아프게 하면 안 되니까. 빨리 죽으면 안 되니까.


  엄마는 몇 가지 말을 내 속에 욱여 넣었다. '마른 때 벗기면 엄마 죽는다' '밤에 피리 불면 뱀 나온다'  '밤에 손톱 깎으면 쥐 나온다'


  밤에 누우면, 시영아파트 천장 위에서 쥐들이 후다닥 후다닥 달음박질했다. 작고 큰 쥐가 발자국 소리를 내면, 배에 힘을 주어 '야악~' 소리를 질렀다. 한참 후 쥐들은 옆집과 우리 집을 또 넘나들었다. 동사무소에서는 가끔 쥐약을 배포해 주었다. [1] 내 취미가 밤에 손톱 깎는 거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어려서 들은 말들은 피부에 못처럼 박혔다. 나를 원격 조정하는 듯했다. 턱 찌끄레기 남기지 마~ 주는 대로 다 먹어.



2. 과식습관


  국민학교 2학년 봄날 아침. 서부이촌동 시범아파트 슈퍼문이 열리고, 가방을 멘 우리 반 남자아이가 성큼 걸어 나왔다. 카레 냄새를 풍겼다. 나는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하~ 해봐!"

  그가 내 코에 '하' 바람을 뿜었다. 입바람이 얼굴을 타고 눈썹과 머리칼을 흔들었다. 노란 냄새가 났다. 부러웠다. 우리 집도 슈퍼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나는 카레라이스가 좋았다. 카레 냄새가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날은 최고였다. 감자가 희끗희끗 보이는 노란 카레. 허리띠부터 푼다. 카레소스를 밥에 붓는다. 카레물이 질질 밥 위에 떨어진다. 한 국자 더 부어 밥알이 보이지 않게 한다. 김이 모락모락 매콤향 솔솔. 코로 빨아들인 향기를 가슴에 넣는다.


  냄새가 신비한 나라로 인도한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먹을까 말까. 한 그릇을 더 먹는다.


  과식 후엔 호흡이 힘들었다. 배가 들랑달랑할 여지가 없었다. 카레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내려가지 않았다. 거북했다. 숨이 잘 안 들어왔다. 밖에 나가 중앙시장 주변을 뛰면, 배가 꼭꼭 찔리고 아파 허리를 숙였다.



3. 칼국수 비빔밥


  군제대 후 예비처갓집에 놀러 갔을 때는 많이 먹는 시늉도 했다. 친절한 예비 장모님은 치킨 두 마리를 시켜, 많이 먹으라고 했다. 나는 마루 소파에 앉아 아구작 아구작 씹었다. 먹다 몰래 휴지에 뱉어내고, 먹다 뱉어냈다. 뱉은 걸 잠바 속에 숨겨 나왔다.


  결혼 이후엔 두 가지 음식이 과식을 불러왔다. 칼국수와 비빔밥.


  여의도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시킨 날. 칼국수를 바닥까지 비우고 나니, 꺼억 소리와 함께 밀가루 냄새가 입과 코로 밀고 나왔다. 숨쉬기가 힘들어 빨리 여러 번 숨을 쉬었다.


  비빔밥을 먹을 때도 그랬다. 밥 위에 얹혀 있는 시금치·오이·당근·버섯·콩나물·무생채·도라지· 계란 프라이를 섞어 모두 먹고 나면 위가 부었다. 피는 위장으로 집결했다. 걷기도 힘들었다. 비빔밥은 꺼려졌다.


  남들과 동일한 양의 음식은 내게 과식이었다. 주는 대로 다 먹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과식은 위가 늘어지는 위하수(gastroptosis)를 만들었다. [2]  



4. 소식(小食)


  밥 한 공기를 모조리 먹는 날이 이어지면, 한 달에 한 번씩 탈이 났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제산제(Antacid), H2 차단제(H2-blocker) , 위식도 운동 촉진제(Prokinetics), 양성자 펌프 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 위식도세포 보호제(Cytoprotective agent)를 15일간 들이부어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명치 위로 음식이 차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나. 그럼 덜 먹어야지. 나는 위가 작잖아. 위대하지 않잖아.


  결국 밥 양을 줄였다. 소식(小食)하기로 했다.


  식사량을 줄이고 나니 속이 점차 편해졌다. 병원 가는 간격이 줄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병원에선 왜 말해 주지 않을까. 그냥 약 처방만 해 주고. 한도 끝도 없이.


  소식과 단식이 장수에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나는 그냥 아프지만 않았으면 했다.

  

  속이 편해지자 다시 남들처럼 밥 한 공기를 다 먹기 시작했다. 비빔밥도 칼국수도 라면도 먹었다. 그러다 김밥을 먹던 추운 날, 위장이 제자리에 서 버렸다. 4일간 먹지 못하고 몸살로 드러누웠다.


  내 문제는 밥 한 공기를 다 먹는 거였다.

  주는 대로 남김없이 먹는 거였다.


  턱 찌끄레기라도 남겼어야 했다.

  ... 계속


ps

  <소식, 간헐적 단식의 효과>

 소식 한 두 달을 실천해 체중 5%만 감소해도 허리와 무릎 통증이 나아진다. 목과 어깨도 가벼워지고, 오십견이 낫기도 하며, 눈이 맑아지고, 두통이 사라지며, 뱃속이 편안해진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면도 나아진다. 면역 관련 질환, 내분비질환 등이 개선되는 임상 사례가 매우 많다고 한다. [3]


  소식이나 간헐적 단식으로 낡은 세포를 스스로 먹어 치워 세포를 재생하거나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오토파지(Autophagy)가 일어날 수도 있다. [4] [5]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공복 상태를 유지하면 ‘회춘 유전자’로 알려진 시르투인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장수에 도움을 준다. [6]


※ 모순 같지만, 영양소의 충분한 공급은 필수이다. 이 것도 숙제였다.


< 참고자료 >

[1] 간첩을 색출하듯 쥐를 잡자-쥐잡기 운동, 국가기록원


■ 소식(小食)

[2] 몸 가뿐, 마음 가뿐 건강 지키는 '소식' - 시사저널, 2010.02.09

[3] 한두 달 소식하면 나타나는 6가지 신기한 반응 - 중앙일보, 2018.7.30


■ 오토파지 : 소식과 간헐적 단식에 의한 자가포식

[4] 세포 내 재활용 시스템 '오토파지' - 사이언스타임즈, 2019.10.11

[5] 오토파지로 몸 스스로 해독하기, 소식 단식 다이어트 방법과 효과는, 김소형 채널H, 2022.3.4   

[6] '소식'하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 KISTI의 과학향기. 2022.4.25


표지이미지 : Image by 장상영ㅇ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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