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송웅순 남자 선생님. 선생님은 남자인데도 풍금을 잘 다뤘다. 피아노, 풍금 등 음악은 주로 여자의 영역이라 생각했었는데, 남자 선생님이 악기를 잘 다루니 부러웠다. 나도 잘하고 싶었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70년대 피아노 가격은 초임교사 월급의 41배인 70만원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 반면, 풍금은 월급의 2배인 3만5천원 선이었다.[1] 국민학교에서는 비싼 피아노 대신, 층마다 풍금을 한 대씩 갖다 놓고 각 반에서 공동으로 사용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미루나무와 도끼만행 사건
3학년 음악시간. 풍금 반주에 따라 '흰구름'이란 노래를 불렀다. 계이름도 외워 불렀다.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란 가사는 다음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예고한 것이었을까.
8월18일 미루나무 벌목작업하던 UN군 장교 두 명을, 북한군 30여명이 도끼등으로 살해하고 북으로 도망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국민학교 3학년 음악책 박목월작시 '흰구름'이란 노래 가사는,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로 슬쩍 고쳐졌다. 아무도 모르게.
발로 공기를 불어 넣는 '리드 오르간'. 풍금은 피아노처럼 한 음 한 음 정확히 부딪혀 내는 맑은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쉼없는 페달의 움직임으로 밀려 오는 바람을 이어 붙여, 연결된 소리를 토해냈다. 그 소리는 멜로디언 소리에 가까웠다.
-경림이가 음악이다
학교든 교회에서든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듣기 어려웠고, 풍금 소리가 음악세계를 채웠다. 중학교 음악실의 콘크리트 빈공간을 부딪혀 울리는 맑은 피아노 잔향을 듣기전까지.
음악시간 선생님의 오른손 왼손은 규칙에 맞춰 건반 위에서 춤췄다. 그 건반은 선녀와 나뭇군이 바람을 타고 내려온 골처럼 느껴졌다. 이런 재능이 있는 선생님은 존경스러웠다. 반면, 나는 풍금도 피아노도 연주하지 못하니,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접었다. 내 꼬라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 꿈은 포기했지만, 완전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피아노를 잘치는 여자와 결혼하기로 우회했다. 사촌 남동생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야 하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렇지만 경림이에게는 피아노를 치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안쳐도 상관이 없었다. 경림이 자체가 음악인데, 더 바랄게 없었다.
-머리카락 향기
3학년은 그렇게 좋기도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점선이란 애가 나를 찍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것봐라 누구맘대로 나를 찍어. 자존심이 상했다. 왼쪽 윗입가에 검은 점이 살짝 묻어 있는 그 애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대신 그 애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지 않으려고 골몰했다.
누구 것인지 따져본다면, 나는 경림이 거고 경림이는 내거였다. 물론 이런 마음을 경림이는 알턱이 없었지만.
경림이와 짝이었던 2달 동안은 온 세상이 밝았다. 가끔 머리카락 향이 나면, 살며시 가슴을 부풀려 숨을 들이쉬었다가 잠시 멈추었다.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수행자처럼 그 순간을 살았다.
-경림이와 마주친 시선
쉬는 시간에 운동장 백엽상 옆에서 경림이와 마주쳤다.
"경림아. 이 번 시험문제. 땅속으로 차가 다니는 길. 있잖아"
"응. 그래. 나는 지하철이라고 썼어."
"아니, 지하로 철길이 나있어야 지하철이지"
"넌 뭐라고 했는데?"
"지하도"
내 시선은 햇빛이 반사되는 경림이의 코와 눈을 몇 차례 오갔다. 수업시작 벨이 울리기 직전, 우리는 운동장을 뛰어 교실로 들어왔다.
3학년 체육시간엔 신세기 체조를 했고,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놀이도 했다. 등뒤를 붙잡고 길게 기차처럼 사람굴을 통과하다 잡히면 벌칙으로 노래도 했다.
-손대신 나뭇가지를 잡아
포크댄스 시간엔, 여학생은 오른손, 남학생은 왼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손을 잡고 리듬에 맞춰 걸어야 했다. 나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고, 여자애는 내 손 대신 그 나뭇가지를 잡게 했다. 경림이 손이라면 눈치없이 꼬옥 잡았으련만, 그녀와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내세를 기약했다.
왜 이랬을까? 사랑이란 숨기고, 피해야 할 감정이던가? 당시 시대상황이 그랬을까?
1975.02.04 조선일보 조간4면 <학용품(學用品)에「저질(低質)만화」>라는 기사를 통해 당시 교육 환경을 수사해 본다.[2]
학용품에 그려진 만화에 대해선, "국적도 알수없고 내용도 교육적이기보다는 너무 상상적인 우주왕자 빠삐, 아톰등의 만화는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것"이라며 내가 좋아하던 tv 프로그램에 공격을 가했다.
뭐~이런. 아톰이 빨리 끝나버린 게, 어른들이 아톰을 비교육적이라 미워했기 때문일까?
-혐오증 앓는 사회
그림혐오, 만화혐오, 사랑혐오증을 앓는 환자들이 애들 교육 걱정했나?
어른들은 "과일그림이 그려진 과일연필, 만화연필이 있고 심지어는 공책 속장마다 영어로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쓰여진 것까지있다. 교육을 위한것이라기보다는 겉모양과 상품효과만을 노리고 있는것" 이라며 그림과 사랑문자를 비판했다.
너희들 제정신이니? 느그들 손좀 봐줘야겠어. 아주 사랑이란 단어에 몸서리를 치는구나. 너희들 태생이 어디냐? 혹시 덜 떨어진 것들이 외계에서 시간여행 온 것 아니야?
그들의 사랑혐오증은 극에 달했다.
"문구점에서 팔고있는 하트형 노트는 어른들도 얼굴을 붉힐지경이다. 모양자체가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형일뿐 아니라 은은한 핑크색, 하늘색 바탕에 각장마다 외국인 남녀의 데이트그림을 넣기도했다."며 눈알을 부라렸다.
하트라~ 턱이 벌어져 안 닫힌다. 치료비 내놔라 이 놈들아.
-나는 꿈틀이었다
"이같은 과잉상술이 ①어린이들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존엄성을 잃게하고 ②사치및 소비성향을 조장하며 ③공부를 장난처럼 여기는 경향을 조장할 우려"를 운운하다니.
1975년은 감정을 억압하는 시대였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감정억압 독재사회와 같은 것이었다. 전국민에게 감정을 마비시키는 프로지움(우울증약 '프로작'에서 따옴)을 투약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독재사회를 그린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2002)~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모든게 사라졌지
자넨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정 말야"
- 영화 《이퀼리브리엄》 중에서-
내게 이성 친구에 대한 친절은 감추어야 할 감정이었고, 들키면 비난과 조롱이 쏟아질 것 같은 걱정거리였다.
Partridge: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I assume you dream, Pre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