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있다
70년대 교실은 인구폭발 직전이었다. 한 반에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드글거렸다. 많은 학생을 수용해야 하니, 둘씩 짝지어 한 책상에 앉아야만 했다.
책상 하나에 여자와 남자가 짝으로 앉았다. 남학생이 더 많으면, 남학생끼리 짝을 지었다. 이건 끔찍한 일이었다. 낡고 어두운 색의 책상은 때 묻어 반질반질했고, 책상 아래 서랍은 학용품을 넣도록 앞이 뚫려 있었다. 서랍 가운데는 칸막이가 있어, 소지품이 섞이진 않았다.
책상 위는 자주 영역싸움이 일어나는 전쟁터였다. 남자애들은 영역표시를 위해 연필 깎는 칼로 가운데 금을 새겨, 짝꿍의 물건이나 신체부위가 못 넘어오게 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짝꿍의 지우개나 연필이 금 넘어 구역을 침범하면, 자기 것으로 압수하거나 칼로 잘라가기도 했다.
서로 으르렁거렸다. 남녀 짝 사이에선 티격태격 바람 잘 날 없었다.
1975년은 내 국민학교 생활 중 가장 환했던 시기였다. 3학년에 올라와 며칠이 지나고, 송웅순 담임 선생님은 남녀 짝을 새로 정했다. 복도에 남자와 여자를 키순서대로 각각 일렬로 세우고, 앞에서부터 둘씩 둘씩 짝지어 교실 빈자리에 지그재그로 앉게 했다.
나는 경림이가 어디 있는지 재빨리 둘러보았다. 내 마음속의 여자로 찜했기 때문이었다.
경림이의 얼굴은 갸름했고, 코는 반질반질해서 빛을 반사했다. 살짝 어깨 위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정돈돼 있었다. 마치 그 해 2월부터 tbc에서 방영된 '아내는 요술장이'의 요술장이 아내 사만다를 보는 것 같았다.
시트콤 속 요술장이 아내 사만다의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고, 부드럽게 곡선인 머리는 정숙했는데, 경림이도 비슷했다.
tv속 사만다는 필요할 때마다 남편 다린을 요술로 도와주었다. 사만다가 입술을 좌우로 빠르게 실룩이면, 뾰롱뾰롱 소리와 함께, 냉장고에 파이가 창조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뭘 사러 급하게 나갈 필요도 없었다. 약간 띨해 보이는 남편과 볼 뽀뽀도 하면서, 그들은 딸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나에게도 저런 요술장이 아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형 누나들에게서 들었던 해피엔딩의 옛날이야기의 끝은 '그리하여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였지. 이런 tv 외화를 넋을 잃고 보다 보니, 나의 사명은 사만다 같은 예쁜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경림이는 요술장이는 아니지만, 2학년 때 반에서 1등 했다는 소문이 있으니, 일단 그 정도로 만족했다. 요술은 찬찬히 배우면 되니까~
복도 짝짓기 줄은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반 인원이 80명을 넘었으니, 내 앞 남자애들은 아직 이십 명은 넘게 있었다. 내가 몇 번째 인지 세어 보고, 경림이도 몇 번째에 서 있는지, 줄이 줄어들 때마다 확인했다.
경림이는 계속해서 나보다 2명 앞에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그녀를 다른 녀석에게 빼앗길 판이었다. 순간 내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몸이 생각을 앞서갔다.
"야~ 너 나보다 키가 크잖아."
나는 앞 녀석의 오른쪽 어깨를 내쪽으로 당기면서 말했다. 말과 동시에 그 녀석 앞에 섰다. 그리곤 바로 또 앞 녀석의 어깨를 쳤다.
"야~ 니 머리가 내 머리보다 높지?"
나는 그 녀석의 머리 꼭대기에 손을 올리고, 내 머리를 그 아래에 밀어 넣었다. 무릎은 약간 굽히고.
그 녀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둔한 녀석들.
누가 내 전법을 쓰면 어떻게 방어하지? 처음엔 줄어드는 줄을 보며, 안심 반 조바심 반이었다. 점차 교실 앞문이 가까워졌고, 내 마음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다행히 경림이와 짝꿍이 되어 앞에서 3번째 자리에 앉았다. 경림이도 나의 당돌한 행동을 봤을까?
보통, 선생님은 반에서 1, 2 등하는 남녀가 짝이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지. 그러니 선생님은 이런 짝을 오래 두고 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걱정해서 무엇하리. 일단 짝이 되었잖아. 이 순간을 기뻐하라고.
마음속 긴장을 풀고 나니 내 입가엔 승리의 미소가 감돌았다.
경림이와 짝하는 동안 책상 영역 분쟁은 당연히 없었다. 서로 얼굴을 붉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른 남녀 짝들과 달리, 나는 경림이를 친절하게 대했다. 그녀에게 말을 걸 때면, 마치 신혼여행을 온 것처럼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소리로 했다. 다른 애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며시.
선생님은 우리 둘에게만 관찰일지를 쓰라고 했다. 동쪽 창가 작은 어항 속 올챙이는 내가 맡았고, 그 옆 강낭콩 화분은 경림이 책임이었다. 나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더 있었다.
아침마다 온도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운동장 끝 백엽상까지 뛰어갔다 왔는데, 수은주 온도계가 잘 보이지 않아 쉽지는 않았다.
백엽상에 갔다 오면, 어항 속 올챙이의 변화를 관찰했다. 검고 딱딱한 껍데기에 실로 묶인 관찰일지에다 매일 관찰 내용을 적어야 하는데, 변화가 보이질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올챙이는 날마다 굶었다. 실지렁이를 먹는지, 실지렁이는 어디서 사는지 알 수도 없어 속만 태웠다.
반면, 경림이는 강낭콩에 물을 가끔 주었다. 그녀는 쑥쑥 올라오는 강낭콩을 자로 재고, 꽃이 피었다고 쓰고, 콩이 열리고 있다고 썼다.
나는 올챙이 뒷다리가 나오기만을 기도할 뿐. 뒷다리인 줄 알았지만 똥이 떨어져 나갔다고 관찰일지에 쓰다가 결국 어항은 폐기됐다. 아마 모두 굶어 죽었든지, 병 걸려 죽었겠지.
그래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경림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너도 아닌 나였으니까.
가끔씩 고개를 돌려 보면, 경림이의 뾰족한 코가 보였고, 움직일 때마다 기울어져 달랑거리는 머리에선 향기도 났다. 날렵한 눈매에선 똘똘함도 느껴졌다.
"우리 책 한쪽을 누가 빨리 베껴 쓰나 할까?"
경림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 마음속 여인이 다정히 내게 말을 하는 그곳은 천국이었다.
"응? 그래. 책 쓰기 해 볼까? 경림아~"
그녀 이름을 불러보았다. '경'자로 시작하고, '림'자로 마치는 네 이름은 어찌 그리 예쁘니.
나는 경림이가 경림이인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세상에 경림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많겠지만, 지금의 경림이는 특별한 경림이었다.
3학년 아침에 등교하면서 비로소 경림이가 보였다. 1, 2학년 때도 학교를 오갔는데, 왜 그때는 경림이가 안보였을까. 어디에 꼬옥 숨었다가 나온 걸까.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학교 정문까지 걸어 내려오는 길, 어깨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찰랑찰랑거렸다. 걸음걸음마다 어깨 높이와 기울기가 변하면, 머리칼은 좌우로 율동하듯 흔들렸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동공은 동그랗게 크게 열렸고,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얼빠진 몸이 되었다.
그녀를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고, 나란히 앉아 있기까지 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경림이는 내 마음속 비밀이었지만, 재채기를 숨길 수 없듯이, 동생들도 알게 되었다.
"형과 막상막하 있잖아~"
"아니야~아니란 말이야."
내 속에 들어온 경림이가 차고 넘쳤나 보다. 동생까지 알게 되다니. 나는 막상막하란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1학년 때는 한혜진을 좋아했었지. 지금은 경림이를 좋아하고. 사랑은 옮겨가는 것일까. 사랑은 식기도 하고, 불타오르기도 하는 건가. 밥을 많이 먹어 위가 커지면, 계속 밥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처럼, 사랑을 먹어 늘어난 마음이기에 또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건가.
이 시절
내 속엔 어떤 말들이 들어왔을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오직 네 마음속에 있다?'
<아내는 요술장이>
<바블껌 - 짝사랑>
https://youtu.be/EtvbZd_aSvs?list=RDEtvbZd_aS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