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배추로 김치를 담갔더니 배추 겉잎이 많이 남았다. 배추 겉잎 몇 장은 김치에 넣기에는 상처도 나 있고, 질감도 거칠다. 물론 배추가 아주 비쌀 때에는 겉잎, 속잎 가릴 것 없이 김치에 사용하지만, 이제는 배추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니 겉잎은 씻어서 따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렇게 남아 있는 배추 겉잎은 된장국을 끓이면 제격이다.
냄비에 물을 받고, 된장은 반 큰 술만 푼다. 건새우와 다시마를 넣고 배추 겉잎을 툭툭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넣고 푹푹 끓였다. 파, 마늘, 양파를 넣어도 좋지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두부만 조금 넣고, 부족한 간은 멸치액젓으로 했다. 배추 겉잎은 질기기 때문에 한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낮춰서 10분 정도는 더 끓여야 배추가 부드러워진다. 별다른 재료 없이 배추만 빡빡하게 넣고 끓여도 배추에서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우러난다. 배추를 물보다 많이 넣는다는 생각으로 엄청 넣어도 만들고 나면, 배추의 숨이 죽어서 건더기의 양이 적당하다. 배추된장국의 맛을 보니, 바로 이 맛이다. 아무리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도 배추를 넣은 된장국의 시원하고 깊은 맛은 나지 않는다. 반면 다른 재료를 쓰지 않아도 배추만 넉넉히 넣으면 된장국은 실패하기 어렵다. 맛있는 된장국으로 기분 좋게 자연식물식 식탁을 차렸다. 어제 만들어 둔 김치는 조금 숙성되면 먹으려고 아직 꺼내지 않았다.
아이들 반찬은 냉동실에 있던 소고기미역국을 해동해서 팔팔 끓이고, 청경채 고추 두부조림을 했다. 며칠 전에 솥밥집에서 고추와 두부를 사용한 메뉴를 본 기억에,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제법 맛이 좋다. 먼저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프라이팬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굽는다. 두부 한쪽 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 뒤집으면서 기름을 넣고, 한 입 크기로 자른 (아삭이)고추 5개를 넣어서 같이 굽는다. 고추에서 향이 올라오면, 간장 1, 설탕 1, 물 3의 비율로 섞은 양념을 넣고 끓이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른 청경채를 넣고, 청경채 숨이 약간만 죽도록 잠시 두면 완성이다. 두부와 고추의 조합이 꽤 잘 어울리고, 청경채도 간장 양념에 잘 어울린다. 기름이 들어가긴 하지만(엄격한 자연식물식이라면 식물성기름도 먹지 않는다), 재료가 자연식물식에 들어맞는 음식이다.
요즘, 밀가루음식을 좀 먹고 있다. 버터로 토스트를 구웠는데, 맛있어서 두 장이나 먹고, 크림치즈까지 곁들여 먹었다. 유연한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지만, 간식으로 밀가루 음식이 자주 추가되어서 고민을 좀 해보아야겠다. 밀가루 음식은 자연식물식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니, 먹을지 말지 결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미 자연스럽게 매우 자주 먹기 시작했다. 간식으로 대봉감과 사과, 단감, 귤까지 골고루 먹었다. 요즘 과일이 다 맛있는데, 대봉감이 적당히 익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최고다. 너무 푹 익으면 벌써 한쪽이 곯기 시작하니 적당히 익었을 때 먹어야 한다.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시를 포착하는 타이밍이 대봉감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