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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빌레 Apr 15. 2023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만의 의식

올해가 작년 같고 내년이 올해 같은 삶이 아니기를!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지난 해가 그대로 이어진 느낌이, 새해 같지가 않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치르지 못해서인가?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세 가족은 매해 마지막 날에 지나가는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해를 맞이하는 우리만의 의식을 가졌었다.


경건한 의식의 장소는 1박 숙박하는 호텔 룸이거나 평소에 자주 가볼 수 없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다. 아무래도 집에서는 오롯이 세 명의 관계에 집중하기 쉽지 않고, 대화의 분위기를 내기도 쉽지 않다.


지나가는 한 해를 돌아보며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몇 개 달성했는지 반성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한 해 또 열심히 살아보자 손도 모으며 다짐하는 의식을 치른다. 서로에게 고마웠던 점, 서운했던 점들도 이야기하는 소중한 관계 교류 및 공감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아들의 군입대로 의식을 걸렀더니, 한 해가 마무리되지 않는 느낌이다. 끝을 잘 맺어야 새로운 시작도 있는 법인데 뭔가 찜찜하다.



마지막 날 반성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항상 나였던 것 같다. 책 한 달에 몇 권 읽기, 언어 배우기 등 매번 계획은 거창하게 세우지만, 정작 결실을 맺은 계획은 손에 꼽힌다.


아들에게도 낯이 서지 않는다. 잔소리 쇄도 전에 네 녀석 학비벌이에 올해도 직장은 잘 버텨내지 않았냐고 선수 치며 슬쩍 넘어간다. 행여라도 학비 생색으로 아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에는 조심스럽다가도 이 날만큼은 예외다.


왜 나만 반성할까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어느 순간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없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명분이나 원동력이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나 아들에게는 매년 나름대로 달성해야 할 목표들 - 사업 매출 증대, 고객 확보, 대학 합격, 입대 등 - 이 있었고,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작은 계획들이 있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나의 계획들은, 대체적으로 달성하지 않고 한 해를 넘겨도 그만인, 워너비 취미 활동들로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악착스러움이 결핍되어, ‘대체적으로’ 달성하지 않았다.


그나마 작년에서야,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일까?  ‘목표 없으면 뭐 어때,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답이 찾아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지 생각하고 실행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술이야 말로 삶을 보다 풍부하고 깊게 해주는 윤활유라는 것을 느낀다. 나머지 삶의 일부분은 예술로 채워야겠다 다짐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무엇을 할 때 행복한 기분이 드나?


어렸을 때부터 무한한 갈증을 느꼈던 미술과 피아노가 떠올랐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지만, 너무나 쉽게 그리고 뛰어나게 잘 그리는 여동생의 타고난 재능을 보며 일찍 포기했었다. 여동생은 중3 때 예술 고등학교 가겠다고 갑자기 선언하더니 미술학원을 한 달 다니고 예술 고등학교에 떡하니 합격하였다. 그리고 어떠한 미술 과외도 없이 미술대학을 한 번에 합격했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 두었던 소망들을 수면 위로 떠올렸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까지 시동이 늦게 걸렸다.


지금 배워서 뭐 해, 어느 세월에 배워, 꾸준히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소모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는데 몇 달이 지나가고,


미술은 유화, 수채화, 아크릴, 소묘 등 뭐 이리 종류가 많은지 무엇을 먼저 배워야 하나, 직장 취미반을 들어야 하나, 기초부터 가르쳐 주는 반에 들어가야 하나 등등 수많은 고민에 휩싸이느라 몇 달이 지나가고, 나에게 맞는 학원을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이 들어 배우기가 쉽지가 않구나.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검색을 하는 데 몇 달, 그리고 정작 학원까지 찾아가는 데만 몇 달이 더 걸렸다.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올해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가장 어려운 과제인, 내 남은 삶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난 모르겠다. 반백살이 넘었지만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매년 어김없이 고민하는 문제지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안다.

올해가 작년 같고 내년이 올해 같은
지금 같은 습관적인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어느 연예인 부부의 정신 상담 프로그램을 보았다. 마치 정신과 의사가 내 앞에서 내 고민을 듣고 처방을 내려주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인생을 살다 보면 간혹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디선가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경우가 있다.)


“잘하고 싶다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다.

목적지를 모른 채 달리는 것도 괜찮다. 달리는 동안 종착지를 몰라 불안해도 괜찮다.

우리는 이루고 나서야 내가 왜 열심히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한다.

삶의 결과가 모든 것을 덮어줄 것이다…

이것이 나를 찾는 과정이다.”


올해의 목표를, 나머지 인생을 위한 기틀을 다지는 해로 삼기로 했다.

보다 심신으로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삶의 기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잘하고 싶은 목표들을 먼저 적었다.  그림 그리기, 피아노 배우기, 성당 열심히 다니기, 체력 다지기… 그리고 직장 버티기 (이건 자신 없다만). 그 외도 많았었는데…

나머지는 차차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는 걸로!


(2023년 1월 말에 쓴 글)


사진: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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