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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빌레 Apr 08. 2023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왔다

미리 대비했으면 잘 넘어갔을까?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오십은 살아 뭐 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열세 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뜬 것 같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정영주 배우의 대사처럼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왔다.


40대 중후반 어느 날부터 노안이 오고 어느 날부터 몸 안의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갱년기 증상을 겪으면서도 50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앞에 붙는 숫자가 3에서 4로 바뀌었을 때처럼, 50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40대 삶은 바쁜 삶에 함몰되어 어떠한 생각도 못했다. 30대 삶처럼 여전히 세상의 시선과 타인의 기대에 얽매여 똑같이 주 5일 직장 다니고 365일 아이 생활에 내 생활을 끼워 맞추면서, 한 때 누구나 외쳐 되던 삶의 밸런스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했고, 실타래처럼 얽힌 시댁과 각종 사회관계 안에서 온갖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을 겪으며 살았다.


하지만 50대는 달랐다.

앞의 나이에 5가 붙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삶을 흔드는 큰 변화도 찾아왔다.


무엇보다 내 삶의 중심이었고 365일 내 품에 끼고 있었던 아들이 멀리 있는 대학으로 떠났다. 그동안 편안해했던 내 손길을 거부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물론 정서적 독립만. 경제적 자립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빈 둥지를 혼자 지키는 어미 새의 처지에 상실감이 너무 컸다. 양가 부모님들의 크고 작은 병치레와 함께, 내 몸에도 하나 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은 지원 부서의 한계와 MZ세대가 반을 넘는 조직에서 뒷방노인 소리 듣지 않으려고 물밑 오리발질하고 있으며, 앞에 보이는 내리막길에서 박수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얼굴 붉히고 나오지 않을 적절한 시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말로만 듣던 중년의 위기(?)인가, 한순간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리고 나는 비껴갈 수 있다고 자만했던 중년의 위기.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었나 라는 자괴감, 누구를 위한 삶인가라는 허무함, 그리고 커리어 끝자락에서 백세 시대에 남은 반백살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혼돈의 일상을 보냈다.


불행히도 중년의 위기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혼돈은 가족의 혼란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나를 이해하고 어느 날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혼돈의 증상이 어느덧 내 성격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증상과 달리 성격은 끝이 없으니 암담했을 것이다.  


나만 겪는 위기가 아닐 터인데, 나만 겪는 것 같았다. 혼란의 일상을 보내는 내 모자란 모습이 넋두리처럼 비칠 것아 가족 외 주변과 터놓고 말하기도 불편했다. 중년이라고 만천하에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에게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인터넷에도 2030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널렸지만 50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중년의 위기를 미리 대비했으면 잘 넘어갔을까? 나랑 같은 고민을 가진 50대 여성들끼리 서로 고민을 나누고, 도와주고, 다시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혼란의 시기 없이 잘 넘어갔을까?


혼자서 막막한 시간을 아주 한참 동안 버텨낸 후에야 (아직도 진행형) 남은 인생 절반을 잘 살기 위한 노력을 아직 서투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서서히, 조금씩 시작하기로 하였다. 나의 지난 삶도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젊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늙었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살아온 인생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기 시작하였다. 내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었던 그러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영화 아멜리에 명대사처럼 내 인생은 실패가 아닌, 아직 미완성 원고일 뿐. 나는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미완성의 원고를 계속 써내려 가고 싶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사진: 데이비드 호크니 'Pictures at an exhibition (2018)' @ 구하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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