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별
새벽부터 뭔가 소란스럽다. 아침 일찍 나가는 사람이 있나?
시계를 보니 아직 6시다. 나는 오늘 11시에 저동에서 배를 타니 아직 시간이 여유롭다. 다시 잠을 청해볼까나.
"야, 사장님이 환불해준다고 했으니 빨리 일어나."
뭔 소리지? 갑자기 환불을 왜 하지?
"형 왜요? 어제 고양이들이 너무 시끄러웠어요?"
"아니,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 정도인데. 다른 곳으로 가자."
"오늘 어디가도 방 구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는 원래 이 정도는 시끄러워요."
우리가 어제 시끄러웠나? 12시 전에 파하고 어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평소보다 조용했는데 게스트하우스 처음 오신 분인가 싶다. 그나저나 갈거면 그냥 조용히 가지 왜 굳이 도미토리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얘기하고 있을까.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긴가.
살짝 짜증이 나지만 무시하고 그냥 자기로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을 이런 기분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다. 3명이서 온듯한 그 일행은 한참을 떠들더니 결국 다 어딘가로 나간다.
잠이 결국 깨버려서 거실로 나온다. 거실에서 사모님도 그렇고 여기 숙박객들까지 그 일행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다. 그래도 아침 인사로 화기애애하게 몇마디를 던진다. 짜증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손해다. 그분이 그랬다고 해서 우리도 그럴 필요는 없다.
게스트하우스는 일반 펜션이나 호텔과는 다른 여기만의 문화가 있다. 또 게스트하우스마다 조금씩 다른 문화가 있다. 그러하기에 예약을 할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이 그쪽의 문화가 나랑 잘 맞느냐는 확인이다. 그 분도 이해는 된다. 그냥 일반 숙소를 생각하고 오면 저런 반응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사장님이 원래 이곳은 소등 시간이 없다고 고지도 하였거니와 이 곳의 핵심 문화에 대해 항의를 하면 딱히 방법이 안생긴다. 모든 현상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이 두개는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버리라고 하면 다른 하나도 같이 버려진다. 저녁의 파티는 이곳의 문화이고 이로 인한 단점도 있겠지만 그 단점 때문에 장점을 버리는 것은 무식한 짓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장단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내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와 함께하는 사람의 단점을 없애고 싶으면 그로 인해서 장점도 없어질 것임을 확실히 알자. 단점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개선시키는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니 나갈 시간이 다 되었다. 11시에 저동에서 가는 배이니 식사도 하려면 8시반 차는 타야 한다. 남은 시간이 30분 가량이지만 급할건 없다. 짐 싸는데는 분이면 되고, 씻는데는 1분이면 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여유롭게 있는게 좋다.
오늘 나갈때는 어제 독도 땅을 밝고 온 독도총각과 어제 밤에 새로 만난 온양이 고향이라는 오냥처자와 함께 하기로 했다. 독도총각은 내일 떠나지만 일찍 나가서 식사를 같이 한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오냥처자는 나랑 배 시간도 비슷하고 항구도 저동이기에 같이 하기에 적합하다.
여유롭게 짐을 싸고 있는데 갑자기 문득 떠오른다. 아 맞다! 부지갱이! 울릉도에서 먹어본 나물 중에 가장 맛있던 부지갱이를 이 옆에 하나로마트에서 사가려고 어제 얘기까지 해놨는데 깜박했다. 지금 몇시지? 갑자기 또 서둘러진다.
후다닥 짐을 정리하고 바로 하나로마트로 가니 거기 냥꼬네 사모님이 와서 한탄을 하고 계신다. 아침 일로 속상하신 것을 여기서 마트 사장님하고 푸는 중이신가보다. 일단 시간이 급해서 절인 부지갱이를 손에 들고 급하게 인사를 하며 나온다.
하나로마트, 현포항에서 유일한 마트이다. 그래서 그럴까? 말만 하나로마트인지 안 파는 것이 없다. 심지어 독도새우도 여기 사장님이 직접 바다로 가서 가져오셔서 판매를 하신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얘기하면 또 구해주신다. 그냥 종합 선물 유통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듯 하다. 택배 판매도 하신다고 하여 번호도 적어놓는다. 나중에 울릉도 뒷풀이 할때 막걸리와 부지갱이를 함께 곁들이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냥꼬네로 돌아와서 독도총각, 오냥처자와 함께 인사를 하고 나와서 바로 앞 버스 정거장으로 간다. 이제 냥꼬네와도 이별이다.
냥꼬네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게스트하우스이다. 시설은 솔직히 내가 가본 게스트하우스 중에 꽤나 안좋은 편이다. 화장실, 샤워실도 하나이고, 도미토리도 개방형이라 방음이 아예 불가능하다. 누가 나한테 추천해주고 싶냐고 하면 당당하게 추천을 못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에 울릉도를 오면 무조건 이곳을 다시 올거다. 냥꼬, 꼬냥이, 오순이, 그리고 이제는 나를 보면 울지는 않는 아들 동휘까지 모두 그리울 거다. 그리고 보통 추천하지는 않지만 자기는 다시 온다는 곳이 그 누군가에게는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8시반 되니 버스가 오고 모두 차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고 냥꼬네가 희미한 버스 창 뒤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잘 있어라.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이리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찾아왔을때도 이 행복을 전해주렴.
오늘 나가는 사람이 꽤 있는지 차가 만석이다. 현포항은 노선의 초기 부분이라 자리에 앉아 있지만 옆에 사람들이 잔뜩 있으니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 떠나는 길에는, 여러 생각을 하며 마음의 정리를 할까 했는데 쉽지 않다.
창밖으로 울릉도 바다가 지나가고, 익숙한 곳들이 계속하여 눈에 들어온다. 나는 울릉도를 얼마나 느끼고 가는 걸까? 얼마나 많은 곳을 갔냐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이 그 곳을 느꼈느냐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래도 울릉도의 일부분을 느끼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렇게 빠져들었겠지. 맨날 바람과 파토로 화만 내는 이 돌섬이 뭐 이쁘다고.
결국 성인봉은 못 보고 가게 되었다. 꽁치물회도 저동에는 안판다고 하니 이것도 이번 여행에서는 글렀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굳이 집착을 할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남겨 놓는 것이 있어야 다음에 또 왔을때 즐거운 법이다. 울릉도에서는 4번 오면 정착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아마? 나는 이곳에 몇번이나 오게 될까?
저동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다. 오냥처자와 함께 발권부터 먼저 하고 식당을 간다. 30분 밖에 없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서두른다고 빨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그 시간을 잃을 뿐이다. 그 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급한 마음을 갖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30분이라도 여유를 즐기면 그게 또 작은 여행이 되는 법이다.
근처 식당에서 나물 소고기 국밥이라는 정체 모를 음식을 시킨다. 먹어보니 매콤한 맛이 강한 울릉도 특유의 음식이다. 그다지 맛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식사이니 맛있게 먹도록 해본다. 어차피 오감은 다 마음 먹기 나름이다.
자 이제 진짜 갈 시간이다. 독도총각과 오냥처자하고도 이제 이별이다. 만남이 짧았기에 애닳픈 이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어준 것이 고맙다. 독도총각은 내일 배가 안뜨기를 내심 바라는 것 같은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서핑과 다이빙을 즐기는 액티브한 오냥처자는 네팔에 가고 싶다고 어젯밤에 그렇게 울부짖더니 꼭 가기를 바란다. 나도 다음에는 네팔을 한번 가볼까?
파도가 심하게 쳐서 멀미약을 하나 먹고 배에 오른다. 이제부터 서울까지 대략 10시간 정도 걸리니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이별을 한다. 울릉도와, 그리고 이번 여행과.
이번 여행은 나에게도 손 꼽히는 기억에 남을 여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원없이 했고, 즐거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6일 내내 술을 마셔서 간도 피곤해졌지만 영혼만은 풍부해졌다. 여행이란 어차피 몸을 다소 희생해서 영혼을 충전시키는 활동을 뜻하는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만족스럽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분명 그리울 거다, 이곳 울릉도가. 그럴때면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과 함께 우리집 옥탑방 마당에 작은 울릉도를 만들어볼까 한다. 그 어디에 있든 울릉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릉도를 추억하면 그곳이 바로 울릉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