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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Apr 21. 2021

단순하고 튼튼한 일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ep.59 Walk the moon - One foot


정확히 오후 여섯 시 반에 퇴근. 지하철로 집에 도착하면 일곱 시 반. 빠르게 운동화와 에어팟을 챙겨 헬스장에 도착하면 정확히 여덟 시.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한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가면 아홉 시 반.

잠들기 전까지 일러스트 작업을 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TV를 보다가 침대에 누우면 열 두시.

최근 한 달간 대부분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코로나19로 미뤄두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필라테스와 헬스를 같이 할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라 주 2회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주 1회 헬스 PT를 받는다. 예전에 반년 정도 필라테스를 배운 적은 있지만 헬스를 돈을 내고 제대로 배우는 건 처음이다. 수업을 제외하고도 퇴근 후나 주말 아침에 헬스장을 가기도 하니 일주일에 적게는 3번, 많게는 6일 정도 헬스장에 출석하고 있다. 덕분에 매일 어딘가 한 군데씩 달고 있는 근육통은 덤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좋아진 점은 하루 일과만큼이나 머리도 단순해진다는 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시간을 꽉 채우고 나면 머리에 남아있는 생각이 별로 없다. 뻐근한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동안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던 나머지 생각들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정말 끝까지 남아있는 잔여물들은 다음 날 내가 해결해주겠지.

그리고 한 달 정도 지켜본 결과, 그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할만한 생각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단순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이 많다'라든가 '나는 머리가 좀 복잡한 사람이야'라고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들이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

생각은 원래 끝까지 하고 나면 절대로 복잡하지 않다.
생각이 복잡해 보이는 건 생각의 도중에 있어서 아직 문제만 열거되었을 때 그러는 거거든.
생각은 끝까지 밀어붙여놓고 나면 의외로 단순해져.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


'생각이 많다는 것'이 독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생각이 많다는 건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특성이고, 때론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위 구절은 머리에 강하게 기억되는 내용들 중 하나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뜨끔했다. '나는 생각이 많다, 나는 머리가 좀 복잡한 사람이야'라고 하는 류의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대부분의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일주일, 길게는 1년 365일까지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채 이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어쩌면 그렇게 늘어지는 것도 당연할 법한, 막연한 것들이었다. 대략 이런 것들.


'내년에는 어떻게 좀 더 재밌게 살지?'

'뭘 해야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지?'

'멋진 어른(아마도 가장 추상적인)이 되려면 뭘 더 해야 하지?'

...

'몇 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더 나은 모습인가?'

'지금 나는, 어디까지 왔지?'




올해 초, 태어나서 처음 심리 상담 클리닉이라는 곳을 내 발로 방문했다. 퇴근 후 도착하니 아홉 시. 내 상담은 마지막 순서였다. 카운터에 있는 친절한 선생님이 내준 커피를 마시며 순서를 기다렸다.

작은 방에 마주 보고 놓인 소파 두 개. 중학교 때 영어를 가르치던 학교 선생님을 닮은 상담 선생님이 나른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심리 상담이 처음이냐고 묻고, 왜 상담을 받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분명 잘 살아오고 있다, 는 걸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이 살아왔어요.

늘 하고 싶은 게 있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도 해왔고,

이대로 살면 괜찮고 멋진 어른으로 완성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종종 이 확신에 대한 의심이 들고 그러다 보면 갑자기 모든 걸 리셋하고 싶어 져요.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이 무력감이 반복되면, 그걸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두렵기도 하구요.


주변을 돌아보니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오히려 자리를 잡고 안정되어가는데

저는 아직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향해 막연히 달리던 시절에서 더 자라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분명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이십대가 끝나가는 지금, 저는 왜 여전히 불안한 걸까요?"


50분 동안 내 얘기만 하다가 상담은 끝이 났다. 내가 원하는 완벽한 답은 얻지 못했다. 사실 예상치도 못한 새로운 솔루션에 유레카를 외칠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남이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명확한 해결책을 얻는 것 자체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불안의 이유에 대한 답은 나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담 선생님은 혹시 자신을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한두 번 더 상담을 받아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담을 마친 후 친절한 카운터 직원은 '진료 기록에 안 남는다'는 말과 함께 자율신경계 검사를 추천했고, 나는 지극히 정상이라는 결과를 안고 센터를 나왔다.







나는 자주 과거와 미래를 생각했다. 사실 지금의 나도 그렇지 않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이십대의 나는 특히 더 그랬다. 과거에는 늘 아련함과 아쉬움이 남았고 미래에는 늘 막연한 기대와 불안감이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결국 당장 닿을 수 없는 시간. 돌이켜 생각하거나 앞당겨 생각해도 모든 생각에 명쾌한 결론을 내긴 어려웠다. 늘어진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다 어느 날 막상 꺼내려고 보면 끝을 찾지 못한 실처럼 잔뜩 엉켜있기도 했다.

그때의 내가 자주 했던 말은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였다. 그리고 정말로 오늘 하루하루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건 오늘이 아니라, 아쉬운 과거가 될지 모를 미래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줄 과거였다.







원래 몸을 움직이는 활동들을 좋아했다. 다만 그 활동들에는 일련의 기준이 있었다. 강제적이거나 지루하지 않고 비정기적인 활동일 것. 날이 좋은 주말에 등산을 가거나 밤바람을 맞으며 강을 따라 러닝을 하거나 하는 것들이 내가 하는 운동들의 기준이었다. 반복적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헬스장을 가서 지루한 러닝 머신 위를 달리거나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무거운 기구들을 드는 것에 흥미를 붙이게 될 줄은 몰랐다.


단순하고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지금 서 있는 이 시간에 완벽하게 집중하는 데에 가장 좋은 습관인 것 같다. 꾸준히 몸을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불안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나에게는 하루하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하고 튼튼한 루틴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우니 오늘 하루가 아쉽거나 불안하지 않다. 이것도 제법 멋진 어른의 삶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었나보다.




https://youtu.be/05v4nfUmBYI


요즘 글 쓰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더 좋은 헬린이의 추천곡은

walk the moon의 one foot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운동을 하면 왠지 더 힘이 솟아서,

20분할 운동을 10분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원래 이 곡은 '드라이브 뽐뿌 오는 곡'으로 추천할 예정이었는데 운동 뽐뿌에도 딱이지 뭐에요.

물론 오늘도... 스쿼트는 힘들었지만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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