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엔딩 요정, 붕어빵 단상
올해 첫 붕어를 마주했다. 방금 구워낸 따뜻하고 바삭한 겉과 떨어진 당 수치를 끌어올리는 달고 단 팥 앙금까지. 과자나 빵을 주기적으로 옆에 두고 먹지는 않지만 붕어빵만큼은 예외여서 가을부터 겨울까지 눈에 보일 때마다 바로 사게 된다. 붕어빵을 살 때면 정말이지 행복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지갑 속에 3천 원을 품고 다닌 스스로를 매우 칭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따뜻한 붕어빵을 하나씩 꺼내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붕어빵은 사람을 두 유형으로 나누는 재주가 있다. 머리부터 먹는지, 꼬리부터 먹는지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나 유형을 나누는 심리테스트의 기질을 가진 것. 머리부터 먹는 사람은 리더십이 강하고 고집이 강하며 남에게 패배할 줄 모르는 열정 넘치는 유형이고, 꼬리부터 먹는 사람은 신중하고 디테일하며 남에게 배려가 깊다고 한다거나, 꼬리와 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등지느러미부터 먹는 사람은 굉장히 차분하고 인정이 많으며 상냥, 감수성이 풍부한 타입이고 배부터 먹는 사람은 적극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유형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유형을 머리, 꼬리, 등, 배 4개의 유형으로 단정 짓다니 정말 예사로운 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지고, 매우 다양한 유형의 환경과 사람 성향들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머리부터 먹니 꼬리부터 먹니 하는 이분법의 선택지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듯하다.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를 제안하는 트렌드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 그 틈에 끼어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이분법적인 사고나 선택을 하려는 자신을 깨달을 때 흠칫 놀라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의 어린이, 청소년 시절에만 해도 ‘공부 잘하는 애’, ‘공부 못하는 애’의 선택지만이 있는 사회 분위기였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에 익숙해져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요즘에 더 자주 느껴진다. 퇴사 후 쉬어 가는 과정에 있다 보니, 가끔 스스로 위축이 될 때가 있다. 그 위축이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두 개의 선택지 위에 나를 올려놓고 불안과 불안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중간을 배제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일 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그리고 “쉬어 가는 자”로 생각하기를 스스로에게 부탁해본다.
붕어빵을 만난 10월 말. 붕어빵을 만났다는 건 이제 올해가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엔딩 요정처럼 등장한 붕어빵은 반가움과 동시에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올해가 거의 다 갔네, 올 초에 생각했던 올해의 내 모습은 얼마나 이루었니, 괜찮은 한 해였니 이런 류의 생각들. 서른넷의 나이로 한 해를 스타트한 것이 조금 우울했지만(생각해보니 서른 이후로는 매번 우울했다), 그 간 간절했던 쉼표를 얻어서 나름 괜찮은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쉬어감과 동시에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국외로의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쩌면 이런 휴식을 다시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대찬 나의 꿈은 코로나가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일상에서 무언가를 앗아갔겠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올해는 이제 두 달 정도 남았지만, 회의적인 감정으로 두 달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의 두 달도 어떤 일들로 일상이 채워질지 궁금하다. :)
요즘은 붕어빵을 파는 곳이 정말 많이 없어서, “붕세권”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는 글들도 많이 보았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의 길목에 늘 붕어빵을 팔고 계신 분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 보면 삶에서 거창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붕어빵을 포함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주변에 늘 있는 듯하다. 다음 주 학원가는 날에도 붕어빵이 있을 거라서 행복하고, 평일 오후 3시에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어서 기쁘고, 올해가 두 달이나 남아서 괜찮은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