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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Feb 11.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21)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6. 채소밭의 봄


“진짜 큰 범죄는 그것을 저질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용함으로써 생긴다는 걸!”
-389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99명이 행복하기 위해서 1명이 갇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1명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머지 99명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위 자체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타인이다. 


“그런 그녀가 난 아주 멋지다고 생각해. 우리 나머지 인간들은 그런 일들을 너무 무심하게 넘겨버리거든. 클라리세가 우리보다 나아.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양심을, 무한한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니까. 하지만 내가 처남한테 묻고 싶은 건, 그게 어쩌면 지나친 양심이 도덕적 망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거지. 그건 처남이 판단할 수 있겠지?!”
-396


억울함을 당한 약자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외면받을 때가 있다. 자신의 안위와 상관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도대체 저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저러는 거지?' 많은 경우 이익 혹은 실용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용해 보이는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을 가리켜 팔자가 좋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말로만 안타까워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욕정 살인’과 ‘끌어당기다’, 심지어 ‘빠르다’라는 말, 그 외 많은 단어들, 아니 어쩌면 모든 단어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고, 그중 하나가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의미다. 이중 언어는 두 개의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상적인 언어는 죄악의 삶이고, 비밀스러운 언어는 빛의 형상을 띤 삶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빠르다’는 죄악의 형체일 때는 일상적으로 몰아치는 습관적인 서두름이고, 반면에 기쁨의 형체일 때는 일상적 서두름에서 뛰쳐나와 기쁨에 겨워 통통 튀어 다닌다. 그래서 기쁨의 형체에는 힘의 형체니 순진무구함의 형체니 하는 말을 붙일 수 있고, 반면에 죄악의 형체에는 비천한 삶의 낙담, 무기력, 우유부단과 관련된 모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것은 사물과 자아 사이의 이상야릇한 관련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407


중의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람에 관하여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상태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판단이지만, 스스로 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열정이 없다거나의 표현을 서슴지 않고 한다. 개개인의 욕망과 절제 사이를 타인이 판단하는 것에는 분명 오류가 존재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만들 때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힘이 세다고 자랑하는 것과 약한 상대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불안감은 시시각각 점점 커져나갔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속에서 계속 생겨났다.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는 잘 안 드러날지 몰라도, 원래 의심으로 시작된 모든 행위 이전에는 행위 후 후회의 순간과 일치하는 나약함의 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09


확신을 가지고 하는 행동에도 오류가 발생할 때가 있다. 하물며 불확실에서 출발한 사안이라면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불안으로 인한 다툼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차이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갈등과 대립은 관계의 파탄을 가져오게 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처음 정했던 목표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기대만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일은 기대와 현실 속에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하더라도 실망할 수 있지만, 적어도 기대만 가지고 시작할 때보다 계획을 가지고 할 때가 타인과의 관계가 덜 나빠진다.


“처남은 신호들이 언제 장애를 일으키고 언제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지 세심하게 검사해.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 모든 것이 신호인 상태가 바로 인간의 진짜 상태라고! 모든 것이 말이야! 처남은 어쩌면 진실을 직시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진실은 절대 처남을 직시하지 못해. 이 신성하고 불안한 감정을 처남은 절대 알지 못할 거라고!”
-415


과학적 접근 방법과 감정적 접근 방법은 그 해석이 무척 다르다. 논리와 비논리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란 있을 수 있을까? 논리가 항상 승리한다는 상상은 비논리로 무장한 사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에서 나온다.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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