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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Feb 19.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23)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9. 하가우어 교수가 펜을 들다


성공적인 사고 과정에서 다섯 개의 단추를 구분한다.
1) 한 사건에 대한 면밀한 관찰. 그러나 이 관찰만으로는 사건이 즉각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어려움이 야기된다. 2) 이런 난관들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경계 짓기와 정의 내리기. 3) 가능한 해답의 추정. 4) 이 추정 결과들의 논리적 발전. 5) 추정의 수용이나 거부뿐 아니라 사고의 성공을 위한 또 다른 관찰.
-450


헤겔의 변증법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테제와 안티 테제를 지나 진테제로 이어지는 정반합이라고 부르는 변증법 말이다. 진테제는 다시 테제가 되고 안티 테제를 만나 또 다른 진테제가 된다. 한 가지 측면, 다시 말하면 하나의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인생이 무엇을 믿고 사는가에 대한 여정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람마다 믿고 사는 것이 다르다. 놀라울 정도로. 화석처럼 굳어버린 관점은 가르친다고 변하지 않는다. 각자가 믿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그토록 반가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이 공감받을 수 있는 삶이라고 위안을 얻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정욕구를 논하지 않더라도 그럴싸한 인생을 살았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고 싶을 테니까.


사실 하가우어는 다른 말을 쓰려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능은 폐쇄적이거나 독자적인 능력이 아니고, 지능의 결핍은 도덕의 결핍을 불러오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도덕적 백치라고 말할 때면 주목을 덜 받기는 하지만 도덕적 결핍이 지능의 힘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거나 현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가우어의 정신적 눈앞에 한 확고한 유형이 나타났다. 그가 기존의 규정에 기초해 ‘특정한 결락 현상에서만 나타나는 도덕적 백치의 충분히 지적인 특수 형태’라고 부르고 싶은 유형이었다. 
-454


살면서 하가우어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될 확률은 무척 높아 보인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판단한 사안에 관하여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사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굳이 어려운 말을 사용해서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30. 울리히와 아가테가 이유를 하나 더 찾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 알지 못할 거야. 네가 선하길 원하면 먼저 세상이 선하다는 걸 확신해야 해. 하지만 우린 둘 다 그렇지 못해. 우린 도덕이 해체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시대에 살고 있어. 그렇지만 다가올 세계를 위해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어야 해!”
-462


시대에서 요구하는 선함이 다르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선하길 원하면 세상이 선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는 것과 반대로 세상이 선하다고 믿으려면 자신도 선하다고 믿어야 한다.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을 선하게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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