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그 맛
봉평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로 유명한 곳이다. 이효석문화예술촌이 자리하고 있고 평창효석문화제라는 축제도 열린다. 평창은 평균 기온이 서울보다 약 7도가량 낮다고 한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만 피하면 서울보단 훨씬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평창에 가려면 메밀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가 생긴 후 업무상 여러 번 갔다. 운이 좋으면 9월 초에 메밀꽃이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평창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에게 둘러보면 좋을 곳을 추천받았다. 한 여름에는 휘닉스파크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보는 것을 추천했고,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축제와 봉평시장을 추천했다.
겨울철의 눈길이 있는 스키장 모습과 달리 여름의 스키장은 나무가 베어진 산의 모습과 유사했다. 다만 리프트와 곤돌라 시설물이 나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리프트는 모두 정지된 상태였고 곤돌라 한 라인만 운영되고 있었다. 이용권을 구입한 후 정상으로 향했다. 눈이 없는 스키장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불편한 스키부츠를 신고 플레이트와 폴을 들고 타던 것에 비해 가벼운 걸음으로 곤돌라에 탑승했고 겨울 산과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정상에 도착했다. 당시 정상에는 사각형 모양의 울타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양 몇 마리가 한가로이 걷고 있었다. 아마도 이벤트로 데려다 둔 듯했다. 정상에는 산책로가 있어서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 좋다. 평창에 가면 산책 삼아 양 떼목장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
평창의 막걸리 중 가장 입맛에 맞는 막걸리는 단연코 봉평메밀막걸리다. 탄산이 거의 없고 메밀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면서 담백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선사한다. 강원도 지역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중에서는 가장 자주 찾는 막걸리이기도 하다. 간혹 막걸리 병에 주류대상, 우리 술 품평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막걸리 초보자에겐 입상 경력이 있는 술을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노벨상이나 퓰리처상 혹은 국내에서 상을 받은 소설부터 읽어보는 것과 비슷하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평창의 막걸리 중 감로주를 추천한다. 식혜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감로주는 메밀막걸리와 달리 엄청 단맛을 선사한다. 화이트 와인 중에 모스카토 품종을 원료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이 디저트 와인으로 사랑받는 것처럼 감로주도 달달한 맛으로 술자리를 마치고 싶을 때 마시면 좋을 것 같다.
늦여름에 봉평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엔 효석문화제와 봉평시장을 둘러보길 권한다.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봉평시장에 가면 메밀 막국수와 전병에 막걸리 한잔은 점심 식사로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의 허브나라농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농원 안쪽엔 계곡물이 흐르고 있는데, 발을 담그고 한가로운 늦여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이다. 평창에서 1박을 하고 올 때면 빠지지 않고 가는 식당이 있다. 친애하는 서울대학교 강병철 교수의 추천으로 방문한 식당의 이름은 갈증해소이다. 이름만 들었을 땐 맥주집이 연상되었으나, 소막창과 돼지고기를 주 메뉴로 하는 곳이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도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특히 돼지목살 구이가 맛이 좋아서 주인장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이렇게 맛이 좋은가요?" 색다른 비법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할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도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좋은 물과 쌀 그리고 누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저런 치장을 하는 것보다 본연에 충실한 것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