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을 읽다가 지구를 생각하다
기후가 이상하다.
기후 변화를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이 있다. 지구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그렇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그렇다. 최근 읽었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에서도 이러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대지는 삶의 터전이다. 세계인구의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의 징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지구 위의 생명>에서는 그간 6번의 대멸종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 역사상 가장 두려운 존재인 사피엔스의 시대를 예고한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각종 핵물질로 바다와 땅이 더럽혀지고 있다. 해마다 기온 상승에 여름이 길어지는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자유로울 수 없다. 흔한 인간의 심리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제 더는 나만 아닌 상태가 아니다. 건물마다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의 더운 열기, 자동차 매연과 달걀이 익을 정도의 강력한 열, 한낮의 태양의 복사열이 합쳐 저 질식할 정도의 대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태양을 제외한 모든 행위의 주체는 사피엔스이다.
2018년도에 지구의 암이라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yoodluffy/42
6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좋지 않은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다. 당시만 해도 전쟁 억제력이 있다는 순진한 믿음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깨져버렸고 중동지방에서도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지구를, 대지를 삶의 터전이 아닌 자원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영화 <Don't Look Up>의 통치자처럼 지구의 위기가 왔을 때 우주로 도망가는 것을 꿈꾸기라도 하는 것일까? 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생각보다 그것이 파괴된 후 다른 대안을 생각하는 것일까? 전쟁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일까? 세계대전의 비참했던 교훈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의 문장을 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오른다.
저도 물과 공기가 경탄스러워요. 하지만 사람들은 둘 다에 별 관심이 없어요. 주위에 널려 있으니까요. 공기가 대지의 숨결이라면 물은 대지의 생명줄 같아요.
-<늦여름 2> p117
지구가 병들어가는 것인지 사피엔스가 병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코로나 팬더믹을 겪고도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다. 공기와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위협할까.
- 나 하나가 변한다고 뭐가 변하겠어?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느끼는 무기력함 속에서도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런 마음의 공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구의 물과 공기는 계속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피엔스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