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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카레 Oct 21. 2022

[벌초]

나의 여행기 

“여기가 아빠 초등학교 때 다니던 등굣길이야”


뒷자리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다 깬다.


“그때는 이런 길도 없어서 산 넘고 강 건너서 두 시간을 걸어야 학교가 나왔어. 그니까 얼마나 학교가 가기 싫었겠어. 하루는 학교에 가는 척하고 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하교 시간 맞춰서 집에 들어갔는데 너 할아버지가 그걸 안거야. 그래서 어찌나 혼이 났던지.”


열 번째 듣는 에피소드다.


‘아마 다음 이야기는... 비 오는 날..!’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어. 가방을 머리 위에 메고 불어난 도랑을 친구들이랑 건너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서 도랑에 떠내려가는 걸 먼저 건넌 친구가 날 살려줬지. 그때 죽었으면 너도 여기 없는 거야.”


결초보은이란 유치한 표지판이 휙휙 지나간다. 아빠의 유년 시절을 반강제로 함께 회고하다 보면 증조할아버지 산소 앞에 도착한다. 이곳은 충청북도 보은이다.


 추석이 오기 약 한 달 전, 아빠와 나는 매년 보은으로 벌초를 하러 간다. 대입과 군 복무라는 찬스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나는 여름이 꺾일 무렵이면 보은을 방문한다. 관리해야 할 산소는 증조할아버지 산소와 할아버지 산소이다. 원래는 더 많았는데 합장한 거란다. 아빠가 트렁크에서 예초기를 꺼내어 맨다. 예초기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실제로 벌초 철에 예초기 사고가 많이 난단다. 굉음을 내며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칼날에 팔이 잘려나가는 아찔한 상상을 굳이 해보며 안전 불감증으로부터 벗어난다. 시동은 어찌나 힘들게 걸리던지.. 때문에 한 번 시동을 걸면 두세 시간은 쉬지 않고 예초를 해야 한다. 아빠와 나는 서로의 체력을 위해 교대로 예초를 한다. 먼저 아빠가 예초를 하고 나는 갈퀴로 예초한 풀들을 제거한다. 예초기가 내는 노동요를 들으며 무아지경으로 예초를 한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빠가 말없이 예초기를 벗고는 담배를 입에 문다. 이제 내 차례다. 작년에 처음 예초기를 썼던 경험이 쥐꼬리만 한 자신감을 갖게 한다. 예초기는 노트북이 3개쯤 들어있는 가방의 무게라 굉장히 무겁다. 일정한 높이와 각도로 예초를 해야 산소가 보기 좋기 깎이기 때문에 좌우로 움직이는 왼팔과 이동을 위한 거동 말고는 자세가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땅에서 1.5cm 정도 되는 높이로 칼날을 좌우로 예초하다 보면 땅에 있는 작은 돌들이 칼날에 부딪혀 얼굴에 마구 튄다. 눈에 돌이 튀게 되면 상당한 통증에 잠시 아무것도 못하지만 내년엔 고글을 가져와야겠단 생각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설상가상으로 산속에 이름 모를 벌레들이 물어댄다. 때문에 긴팔과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예의상 아빠가 예초한 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예초기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그렇게 각자 2-3번씩은 해야 산소 하나가 끝이 난다.


 장소를 옮겨 할아버지 산소를 예초를 할 때이다. 슬슬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8시간이 넘게 벌초를 하다 보면 팔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허리와 어깨의 위치가 뒤바뀌기라도 한 듯 통증 또한 굉장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초기에 기름이 떨어져간다. 아빠가 기름을 사 오겠다고 한다. 불행인 것 같다. 굉음 속에서 눈치껏 알아들은 나는 계속 예초를 한다. 예초기는 혼자 시동을 걸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빠가 오기 전에 시동을 끄면 다시 혼자서 시동을 걸 수 없다. 갑자기 쓸데없는 오기가 생긴다.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지만 한창인 나이의 내가 환갑인 아빠보다 먼저 지치는 게 싫다. 아빠가 오기 전까지 시동을 끄지 않기로 결심한다. 당신은 어떻게 힘들다는 티 한 번 내지 않고 이 짓을 몇 십 년을 했을까. 체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도 든다.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꼭 오늘의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버틴 것을 상기하며 이겨내자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본다. 단정하게 이발을 한 할아버지에게 쓸쓸한 작별 인사를 건네며 하산하고 예초기를 반납하러 간다.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댁들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기다렸어요.”


대여소 사장님이 웃으며 타박한다.


“하하.. 둘이 하니까 되게 오래 걸리네요. 다음엔 두 대를 빌려야겠어요.”


아빠가 머쓱하게 내년의 고통을 예고한다.


“하이고 이렇게 오래 벌초하면 사람 망가져요.”


아빠는 맡겨놓은 보증금 3만 원을 미안하다며 받지 않는다.


 집으로 가기 전 망가진 몸을 이끌고 식사를 하러 간다. 시골이라 그런지 8시만 넘어도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콩국수가 먹고 싶다는 아빠는 콩국수 간판을 보고 신나서 앞장서지만 실망하고 돌아선다. 왁자지껄한 사람 소리를 따라 걷다 국밥집을 발견한다. 돼지국밥 특 두 개를 주문하고 먼저 나온 섞박지를 밥도 없이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점심으로 슈퍼에서 파는 퍽퍽한 빵 쪼가리 몇 개만 먹었더니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특 두 개요~”


 허전해 보이는 돼지국밥에 들깨가루와 어른의 상징 깍두기 국물을 거침없이 투하한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는데 팔이 바들바들 떨려서 입에 도착할 때쯤이면 내용물이 거의 없다. 왼 팔로 오른팔을 붙잡고 간신히 한 숟갈씩 밥을 먹는다. 돼지국밥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 사이로 고장 난 듯 바들바들 떨리는 또 다른 팔이 보인다. 습기가 찬 아빠의 안경과 눈이 마주치고는 멋쩍게 웃는다. 숙명이란 게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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