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다혜 Oct 30. 2022

인간이 만든 역사적 참사의 반복

연극 일리아드

어젯밤, 용산의 사무실에서 출발해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길에 짧은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길을 건너려고 주위를 둘러보려는지 고개를 돌렸고 그때서야 얼굴에 피칠갑이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핼러윈이었다.


11시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와 무심코 핸드폰을 열었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트위터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길에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누워있고 소방관이 cpr을 하는데 그걸 신나는 노래가 나오는 클럽 안에서 웃으면서 찍은 영상은 마치 힘껏 응급 구조하는 모습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혹시나 해서 포탈에 검색해 봤지만 특별한 뉴스가 없었다. 별 일 아닌가? 단순 호흡곤란이라 응급조치로 다 괜찮아지셨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트위터는 곧 이게 마약 사건일 거라는 추측성 이야기가 난무했다.


하지만 곧, 정말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이게 대형참사임이 밝혀졌다. 점점 늘어나는 사상자, 소방 단계 2단계 발효, 이어서 순식간에 대형산불과 같은 3단계 발효.....


그리고 인터넷 세상은 빠르게 사진과 영상들이 퍼져 나갔다. 옷을 벗겨 응급처치를 하다가 하나 둘... 길에서 모포로 덮이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그 사진을 보고 '그러게 누가 가랬냐', '저 사람 배 나온 것 좀 봐라'는 식으로 달리는 댓글들, 응급 구조 현장을 서로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으려고 다수의 손이 뻗어 있는 모습, 참사 현장에서 생방송 라이브를 진행하려는 유튜버들, 구급차의 반짝이는 불빛을 배경 삼아 외설적인 노래를 틀어놓고 길에서 다 같이 춤추는 사람들....


지옥이었다.


밤새 올라오는 뉴스와 현장에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보며... 정말 이런 게 지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막히고 혼잡하니 그냥 밀면서 가자는 사람들이 있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공통된 증언들이 올라왔다. 아래에 사람이 깔려 비명을 질렀지만 별 일 아니겠거니 계속 밀면서 이동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서울 길 한복판에서  생긴 300명에 가까운 사상자 숫자의 괴리감에 뉴스를 보는데 눈물이 흘렀다.


작년에도 이태원은 핼러윈에 사람들이 미어터졌고 올해는 드디어 코로나로 인해 썼던 마스크가 야외에서 해제되는 첫 해라 사람들이 몰릴 게 눈에 뻔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사고가 있기 전날인 금요일 밤도 사람이 많았고 충분히 대비나 주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사람들은 죽은 이들 옆에서 밤새 클럽 영업을 멈추지 않았으며 거기서 춤을 췄다. 이게 바로 내가 발 딛고 있는 2022년 서울의 모습이었다.


연극 일리아드는 아주 먼 옛날, 트로이 전쟁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왜 헤라클레스 같은 고리짝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봐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극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깟 다툼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등불이 수없이 꺼져가고 남은 사람들이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세상에 무의미한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이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내레이터는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야 하고 관객인 우리는 이야기장을 빠져나와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세상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무 일도 없는 한쪽에서 나는 늘 그렇듯 글이나 쓰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우리가 이야기를 기억하고.... 더 이상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작은 스위치가 될 수 있기를.... 제발... 오늘은 내가 내레이터가 되어 바닥에 머리를 찧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남겨본다. 더 이상 사람에 의해 발생되는 성수대교, 세월호, 이태원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전 08화 어둠이 삼키지 않도록 너의 이야기를 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