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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Oct 21. 2023

스페인 씨름과 조지아 왕릉

#씨름 #조지아 #플로리다 #신대륙 #콜롬부스 #옥물지천 #노예 #흑인

응용력이 뛰어나다

“365일중에 360일을 해외에 나가 있어요”


코리아의 ‘두뇌 국뽕 이야기’이다. 몇 해 전 문체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인권을 감시하는 사업을 진행 했다. 나는 감시단원으로 참여해 전국에 야구, 농구, 양궁, 배드민턴 종목이 열리는 대회를 모니터링 했다. 


때는 가을이었다. 푸른 바람과 하얀 햇살이 들판을 살찌우고 있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하얀 마스크가 익숙해져 갔다. 그날은 정읍의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리는 배드민턴 대회를 참관하고 있었다. 감시단 패찰을 목에 걸고 PCR 검사 결과를 제출한 뒤 입장했다. 경기가 가장 잘 보일 것 같은 2층 상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에 나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는데 지나가는 선수들이 절도있게 인사를 하는걸 보니 실업팀 감독이었다. 


어느새 나는 모니터링은 잊은채 셔틀콕을 스매싱하는 소리와 운동화가 마룻바닥을 찍찍거리는 소리에 빨려 들어갔다. 경기중 선수들 부상에 대한 응급처치가 제 때 이뤄지는지, 감독의 강합적인 지도와 선후배간의 불미스러운 일을 없는지 관찰하며 하얀색 깃털이 포물선을 그리는 경기장을 내려다 봤다. 내가 앉은 옆자리의 중년 감독의 볼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위에서 누가 인권 감시하러 왔다는데 지원이나 해주지 팀 운영하느라 힘들구만...”


나를 사이에 두고 내 오른쪽에 체격이 있는 여성이 내 왼쪽에 앉은 남성에게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말을 건냈다. 둘의 대화를 배려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제꼈다. 그가 맞짱구를 쳤다. 둘의 대화를 들을 수 밖에 없어서 서둘러 내 신분을 밝혔다.


“저기 안녕하세요? 제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말씀하신 인권 모니터링하러 온 사람입니다. 감시하고 추궁하러 온 것은 아니고요. 안전 문제라든지 개선할 사항을 조사하러 온거라서요.... 감독님들 애로 사항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 운영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대화하다 보니 그분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로 전세계를 돌며 대회를 치뤘던 유명인이었다. 그분들은 1년 365일중에 360일을 해외에 있었다고 했다. 유럽이나 미국, 동남 아시아 같은데서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하기 때문에 외구 선수들이 겨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응용력’이 뛰어나서라고 했다. 체격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게 스포츠인데 배드민턴 같은 경우 ‘두뇌 회전’이 결정적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배드민턴으로 대충 치다가 말아 우습게 봤는데 다시 보게 됐다. 


스페인 씨름


1977년 어느날 태권도 사범 신현승씨는 대서양 앞바다를 둘러싼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아프리카 모로코 앞바다에 있는 섬들이지만 멀리 동떨어져 있는 ‘스페인 점령지’이다 그곳은 대서양의 지상 낙원으로 휴양지로 유명하다. 초록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바다빛과 맑고 건조한 날씨,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카나리아 제도는 7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었다. 신현승씨가 그곳으로 이민을 간 해는 카나리아 섬 중에 하나인 ‘테네리페섬’이라는 곳이다. 신현승씨는 태권도 사범뿐 아니라 ‘침술' 기술이 있어 카나리아 섬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도 병행했다.


그런 그가 카나리아 제도의 민속 씨름인 ‘루차 카나리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나라 씨름과 똑같아서이다. 씨름은 각저, 각희 등의 한자 이름이 있고 한글로 ‘씨를 겨룬다’는 뜻이 있다. ‘루차 카나리아(Lucha Canaria)’의 ‘루차(Lucha)’는 ‘반격하다(Fight back)’는 뜻으로 '카나리아 씨름'이라고 보면 된다.


루차 카나리아, 스페인 씨름

신현승씨는 이후 스페인의 '루차 카나리아' 대표단 총감독이 됐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 스페인과 우리나라 씨름 선수들끼리 친선 대회를 열고 국내에 카나리아 제도의 씨름을 알리게 됐다. 


‘카나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조‘로 알려진 노란색 새이다. 제비처럼 작은데 황조는 일산화탄소와 같은 냄새에 민감해서 광부들이 광산에 데리고 가서 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재난 경보음처럼 황조가 울면 미리 대비했다. 우리나라는 ’꾀꼬리‘로 불리고 있다. 


고구려 왕의 ’카나리아‘ 발라드


황조


기원전 17년에 10월에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의 왕비인 송씨(松氏)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새로 두 여인에게 장가를 갔는데 왕의 총애를 두고 서로 다퉈서 결국 한 명이 도망을 갔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나무 아래서 휴식을 하닥 황조[黃鳥]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노래하여 말하기를, 


“훨훨 나는 꾀꼬리[黃鳥]는 암수가 서로 의지하는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 것인가!”


라며 ’황조가‘라는 로맨스 곡을 남겼다. 


투석전과 자치기, 씨름의 삼종 세트


스페인 씨름의 특징은 '샅바'를 매지 않는다. 대신 밑이 둥글게 말린 반바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서 서로 맞대고 있다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기술을 써서 상대 선수를 넘어 뜨린다. 그들은 경기가 끝나면 관중석에서 던져주는 동전을 받는다. 


옛날에 참가 선수들에게 따로 상금이 없어서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팁을 받는게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대서양 휴양지 카나리아 제도에 씨름이 가장 유명한 국민 스포츠가 됐을까. 


https://www.europeana.eu/es/blog/lucha-canaria-wrestling-from-the-canary-islands


’루차 카나리아‘ 씨름은 1420년경에 카나리아 제도 원주민이 하던 것을 스페인이 점령하면서 발전시켰다고 한다. 12명이 싸우는 단체전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영토 분쟁이 있거나 민족간 갈등이 있을 때 세 단계를 거쳐 결정했다고 한다. 첫째는 돌을 던져서 싸우고 두번째는 막대기로 싸운다. 세 번째는 씨름으로 결판을 냈는데 지금은 1, 2단계가 없어지고 ’루차 카나리아‘만 남았다. 


우리나라 씨름은 ’샅바‘로 두명의 선수를 묶는게 스페인과 다르다. 싸움에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은 모래밭에 같이 쓰러지고 같이 일어난다. 이것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진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는 ’배려‘의 미덕이 있다. 이긴 사람도 똑같이 넘어뜨려 ’겸손함‘을 기르게 한다. 


샅바는 왼다리에 묶는 방법과 오른 다리에 묶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오른 다리에 묶어 오른쪽 다리에 힘을 키우는 씨름을 한다. 둘이 맞댄 모습이 뿔(角)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아 각희, 각저라고 불렸다. 옛날에 상투를 틀었으니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흑인 노예를 조공한 섬라국


스페인 씨름은 북아프리카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려때 기록을 보면 햇빛이 치밀하게 드는 나라 ’섬라국‘에서 ’흑인 노예‘를 공물로 바친 기록이 있다. 그들은 고려때부터 조선말까지 황제와 황후에게 대규모로 조공을 바쳤다. 아프리카에서 한반도로 와서 조공을 바쳤다는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1462년 세조 때 섬라국 사람들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섬라국의 여색(女色)은 절묘(絶妙)한데, 향(香)을 끓인 물을 사용하여 목욕하고, 남자는 쑥대머리[蓬頭]에 검은 몸이며, 모발(毛髮)이 마치 면양(綿羊)과 같다’


고 했다. 그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하인들은 맨 몸이었으며 세 사람을 거쳐야 통역이 가능하다고 했다. 섬라국 사신들은 1785년 정조 대왕 때 내방해서 조공을 하는데 그 물품은 코끼리 상아, 단향, 무소의 뿔 등이다. 종류와 물량은 정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섬라국 사신의 표문>

“....중략

공상(公象)은 1쌍, 모상(母象)은 1척, 용연향(龍涎香)은 황제에게 1근, 황후에게 8량, 금강찬(金剛鑽)은 황제에게 7량, 황후에게 3량, 침향(沈香)은 황제에게 2근, 황후에게 1근, 빙편(氷片)은 황제에게 3근, 황후에게 1근 8량, 서각(犀角)은 황제에게 6개, 황후에게 3개, 공작미(孔雀尾)는 황제에게 10병, 황후에게 5병, 취피(翠皮)는 황제에게 6백 장, 황후에게 3백 장, 서양전(西洋氈)은 황제에게 2장, 황후에게 1장, 서양홍포(西洋紅布)는 황제에게 10필, 황후에게 5필, 상아(象牙)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장뇌(樟腦)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강진향(降眞香)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백교향(白膠香)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대풍자(大楓子)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오목(烏木)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백두구(白荳蔻)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필발(蓽撥)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단향(檀香)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감밀피(甘蜜皮)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계피(桂皮)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등황(藤黃)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소목(蘇木)은 황제에게 3천 근, 황후에게 1천 5백 근인데, 특별히 조공사(朝貢使) 파사활리나돌랑(帕史滑里那突朗)·와문실니하악무돌랑(喎汶悉呢霞喔撫突朗)·요찰나비문지돌(扶察那丕汶知突)·문비필오차(汶丕匹洿遮)를 임명하여 일을 준비하고 조심스레 가서 삼가 대궐에 바치도록 하였으니, 너그럽게 거두어 주신다면, 정화는 지극히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외람되게 바칩니다."


약재로 쓰이는 품목도 있고 황제와 황후에게 바치는 것을 구분했으며 생리가 나오게 하고 외과약으로 쓰이는 소목의 규모는 4천 5백근이나 가져왔다. 섬라국을 지금의 ‘태국’이라고 보는데 '면양과 같은 머리 스타일'과 햇빛이 치밀한 나라 같은 묘사를 보면 아프리카분들이 떠오르니 결례일까.


일본의 ‘스모’를 씨름이라고 하지만 단단한 흙 위에서 소금을 뿌린 뒤 서로 밀치고 때리는 ’상박(相撲)‘이다. 스모는 한 단계씩 올라가는 계급제 운동이다. 일본에서 체격이 좋은 서양인들이 스모 선수로 활약하지만 그들은 ’하체‘ 힘이 약해 스모를 어려워 한다고 한다. 배드민턴이나 양궁, 태권도 같은 종목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파견돼 타국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아프리카에서 온 '스페인 씨름‘은 보급하기도 전에 있었다. 아프리카로 어떻게 전해졌을까.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무령왕릉


1492년에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콜롬부스‘는 1,200개의 섬이 있는 카리브해 주변을 서인도제도 라고 봤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 ’바하마 제도‘는 거북이 목이 바다에 들어간 것처럼 길죽한 ’플로리다‘ 아래 있다. 바로 위쪽 지형이 복숭아 천지인 ’조지아주‘인데 그곳에 10,000년이 된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적지가 있는데 나는 ’무령왕릉‘을 잘못 본 줄 알았다.



https://www.nps.gov/ocmu/index.htm


그곳에 유적지 이름이 ’옥물지(Ocmulgee Mounds National Historical Park)‘인데 옥물지라는 강(Ocmulgee River)을 따라 3백4천만 평 규모로 엄청난 규모다. 그곳은 17,000년 넘게 인간이 거주했다고 보고 있으며 2,000개 이상의 유물을 현장에서 회수했다고 한다. 옥물지(Ocmulgee)는 구글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오물지‘라고 나온다. 지명이 우리나라 말 같아서 찾아보니 ’고려사절요‘에 안효대왕 3(高宗安孝大王三)년인 1236년에 ’오물지천‘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이 나온다.


"6월에 몽고 군사가 의주강(義州江)을 건너 오물지천(烏勿只川)과 삭녕진(朔寧鎭)에 둔을 쳤고, 유격병(遊擊兵)이 가주(嘉州 평북 가산)와 안북부(安北府 평남 안주)의 운암역(雲岩驛)에 진쳤는데, 가주ㆍ박주(博州) 두 고을 사이에는 화기(火氣)가 하늘에 닿았다. 또 선주(宣州) 형제산(兄弟山) 들판에는 무릇 17 군데에 나눠 진쳤으며, 드디어 자(慈)ㆍ삭(朔)ㆍ귀(龜)ㆍ곽(郭)의 4주에 두루 진을 쳤다. 선봉은 황주(黃州)에 들어가 신(信)ㆍ안(安)의 2주에 이르렀다"


조지아주의 옥물지 왕릉


빨간 줄로 표시된 곳이 ’옥물지 리버(혹은 오물지천)‘이다. 플로리다는 미동북부의 '메인주'처럼 'Korea'가 아닌 ’Corea’ 지명인 장소와 거리, 건물들이 있다. 의사 이름이 ‘Corea’이거나 성씨가 ‘Corea’인 사람도 있다. 웨딩 서비스 브랜드가 ‘Corea‘이고 도로명, 건설사 명도 'Corea'인데 우리나라 재미 교포와 무관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관할 수도 있겠다.



옥물지 유적지가 있는 조지아주에는 ’리씨 사립대학’과 ‘리씨 초등학교’ 등이 있다. 플로리다와 조지아주에는 Corea 키워드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고려사 절요에 나오는 ‘오물지천(오물지 강)’과 조지아주의 ‘옥물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1492년 스페인 국왕의 지원을 받은 콜롬부스가 서인도제도를 통해 조지아주에서 마주한 것은 신대륙의 고요함이었을까 오래된 문명의 환대였을까. 


30년전 미국에 유학을 가기 위해 미대사관 앞에서 인터뷰 차례를 기다렸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미국을 가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목도했다. 영화에서 봄직한 구멍 뚫린 유리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백인 중년 여성의 심드렁하고 기계적인 질문에 얼음장이 됐었다. 두려움의 실체가 뭐였을까. 조금이라도 그녀의 비위, 아니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숨도 쉬지 못했었다. 


우연히 울산과 비슷한 버지니아 지형에서 우리나라와 연결고리를 찾다보니 영어가 생판 낯선 문자가 아니라는 것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곳 역사가 신대륙으로만 볼 게 아닌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대사관 앞에서 초조하게 있었던 그시절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면 당차게 응대했으리라. 단순히 생각만으로도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바뀌면 사람을 크게 일으켜기도 하고 변변치 못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다음 여정은 버지니아에 서 있는 나를 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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