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쇼 Jul 09. 2024

만(卍卐)자 문양의 기원 #1

#절만 #불교 #연방은행 #금리 #역사 #완자문

어렸을 때 외삼촌이 수영을 하던 방죽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을 가둬 흙으로 높이 쌓은 댐이었다.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가 한증막 수증기처럼 피어 올랐다. 학교를 가는 길목이라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책가방을 내려 놓고 큰 숨을 들이켰다. 초록빛 논들과 눈을 마주치다가 비린내 나는 저수지를 향해 돌팔매를 했다. 


해마다 동네 무당은 그곳에 거북이를 방생했다. 구경거리가 없던 시골이라 누구랄 것도 없이 모여 들었다. 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에 화려한 의복을 입은 그녀는 누런색 놋쇠 냄비 뚜껑처럼 생긴 것을 비벼댔다. 쇠소리가 웅덩이를 향해 쟁쟁거렸다. 그녀는 젖가슴이 차오르는 물속까지 들어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랩처럼 중얼거렸다. 거북이 한마리를 놓아주며 기도를 했다. 나는 그녀 발이 미끄러져 빠질까 조마조마 했다.


며칠 뒤 증조 할머니는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기름을 먹인 반질반질한 대청 마루에 다과상을 차려졌다. 나와 오빠의 운명을 점쳐 달라고 했다. 무당은 넥타이 폭만한 길죽한 흰색 창호지에 성냥불을 그어댔다. 유황 냄새가 시뻘건 불길로 변해 종이를 삼켰다. 그녀는 서까래로 된 천정으로 손으로 튕기며 올려 보냈다. 잿빛으로 변한 종이는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애가 잘 되겠네"               


틀니를 한 증조 할머니의 가지런한 앞니가 드러났다. 종이를 태워 미래를 점치는 신기는 어떤 근거로 그랬을까. 그로부터 사십년이 흘렀다. 가끔 '내가 뭐가 잘 된거지?' 반문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운 것 밖에 없다. 부귀영화를 누렸나? 만사가 형통하고 무병장수 했나? 사는게 뜻대로 안될땐 무당의 '잘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신점을 보다


2022년 6월 18일 오빠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떠났다. 밤마다 공원 벤치에 누워 쓰레기 차가 다닐때까지 하늘을 올려다 봤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핑계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년이 흘렀다. 올해는 기운을 내서 뭐든 하고 싶었다. 점을 볼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보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방송에서 외국인들에게 점을 봐주는 톱모델 출신 무녀를 봤다. 한국여자와 결혼한 젊은 네덜란드 남자에게 '삼신할머니께 언제쯤 아이가 생기는지 알아봐 주겠다'며 부채와 방울을 흔들었다. 모델 출신, 뛰어난 회화 실력에 무장해제 돼 신뢰가 갔다. 예약을 했다. 


신당은 일산 끝자락 2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1층은 카페인데 점을 보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이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4차선 도로에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 한대가 멈췄다. 공항에 도착한 연예인처럼 차문이 열리고 그녀가 내렸다. 바지단이 좁아진 회색 절복이 곧게 뻗은 하체가 눈에 띄었다. 긴 파마 머리를 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어릴적 봤던 무당의 영묘한 눈빛이 떠올랐다.


검은색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가린 신당은 서늘하고 따듯한 기운이 교차했다. 한쪽 벽면에 법당이 차려졌다. 묵주를 두른 그녀가 인사를 건냈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내가 태어난 해와 날짜를 얘기하는데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책상에 흰 종이에 볼펜으로 자신의 말을 옮기며 의미 없는 획들을 그었다. 어떤 조언을 해줄까? 뭔가 특별한 말을 듣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렸다.


"포목상을 할 사주네요. 포목... 옛날에 천이나 비단 같은 것을 포목이라고 하잖아요? 요즘은 뭐라고 그래야 하나? 조상들이 이런 일을 하셨네요. 지난 6,7년간 많이 힘드셨네요. 포목 관련 일을 하면 그분들이 도와주실 거예요."


네? 포목요? 동대문과 광장 시장의 원단 가게, 천, 실들이 떠올랐다. 1898년도 태어난 증조 할머니는 만주에서 비단 장사를 했다. 외삼촌은 돈 세는 소리가 밤마다 들렸다며 과장 섞인 말을 들려줬다. 그 돈으로 동탄면 일대 땅과 산을 샀다고 했다. 고개를 갸웃뚱 했다. 평생 했던 일이 컴퓨터 일인데 지금까지 내가 안 맞는 일을 했나? 먹고 살려고 억지로 했다는 기분이 그래서인가? 


"친가와 외가중에... 친정쪽에 우리같은 신(神)이 있으셨네요.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뚝 끊겨서 지하로 다 사라진 기분이예요."


이십년전 동네 40대 박수 무당이 외가쪽에 귀신을 본다는 말이 떠올랐다. 기분이 찜찜했다. 태어난 년도와 월일만으로 집안 내력을 아는게 신기했다. 내 평생 관심인 역사와 관련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해주길 바랬다. 헛다리를 짚었나. 그녀는 '포목'을 반복해서 말했다.


지금까지 한 일이 '홈페이지 개발과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했다. 그녀는 전통적인 것을 재해석하는 능력이 있으니 민화 그림을 티셔츠에 찍는 아이디어를 권했다. 그동안 상품 소싱 하려고 준비했던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식품'은 어떻게 하지? 머리 복잡했는데 잘됐다. 아마존에 의류를 판매한 경험이 있어 그림이 그려졌다. 생각지도 못한 '포목'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지천에 널린 만(卍卐) 문양



점 본 뒤로 만화가 아닌 민화 찾기 삼매경에 빠졌다. 어떤 문양으로 상품을 만들까. 어느날 동네 산책을 하는데 멘 홀 뚜껑의 '(卍)(卐)'자가 눈에 띄었다상하, 좌우 상반되게 배치 됐다. 뚜껑 밑에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교통신호 관련 시설물'이라고 했다. 불교와 나찌 문양으로 알려진 무늬다. 경찰청 마크를 중심으로 만자 무늬라니 흥미로웠다. 저 문양을 누가 결정 했을까? 제철소 사장님? 불교신자 경찰 간부? 거푸집 만드는 곳? 민화를 찾다가 '만(卍)(卐)'자 문양에 호기심이 생겼다.


동네 멘홀 뚜껑


'만(卍)(卐)'자 무늬는 생활 곳곳에 있었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받은 예물 상자에 수복이라는 한자와 상하, 좌우로 '만(卍)(卐)'자의 끝이 연결됐다. 


예물상자에 새겨진 문양


지하철 문과 내가 다니는 교회 건물 에스컬레이터에도 있었다. 


지하철 문에 있는 우만자


동네 시청 건물 철조망에도 있었다.



고양시청 철조망



인근 고봉산 정자의 난간에도 있었다. 햇빛이 비추니 바닥에 무늬를 만들었다.



일산동구 고봉동에 있는 고봉산 정자의 절만자



미국의 금리 인상에 관한 뉴스가 나올때 미연방은행 회의실 내부에 '만(卍)(卐)'자를 금색 도형으로 꾸민 것을 봤다. 어떤 연유로 기독교 국가에서 '만(卍)(卐)'자를 사용 했을까 궁금했다. 캘리포니아 산디에고의 해군기지는 건물 자체가 만(卐)자다. 워낙 유명해 구글 지도로 찾아 소개하는 영상이 많다.


캘리포니아 해군기지 모양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천정에도 있다.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미술관,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촬영지 '자연사박물관'에도 있다. 미국의 정부 부처, 은행, 법원, 오래된 건축물에 필수로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928년 미 윌슨 대통령이 연설하는 도서관 건물 연단에는 '밭 전(田)'자와 교차된 '만(卍)'자가 있었다. 어떤 의미로 쓴 것일까? 



미국 윌슨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도서관 연단에 표시된 좌만자와 밭전(田)자.



1915년도에 우리나라 해협에 들어온 미국 상선 깃발도 '만(卐)'자 였다. 아래 책자는 중국, 일본, 코리아(조선), 인도 차이나 해협에 정착한 회사의 이름과 주소 등을 안내한 것이다. 상선들이 속한 회사나 노선을 나타내는 깃발을 걸고 입항하는데 '미국 무역 회사'가 '만(卐)자'이다. 



https://archive.org/details/directorychroniclechina1915/page/11/mode/thumb

미국 무역회사 해운선 깃발


캐나다의 여자, 남자 아이스하키 팀에서도 썼다. 


캐나다주 노바스코사 아이스하키팀



미국의 기독교 청년회도 사용했다. 보스턴 셀릭스 농구팀은 NBA가 결성되기 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농구팀으로 시작했다. 



보스턴 셀릭스 YMCA 농구팀



뉴멕시코의 '레이턴(Raton)'이라는 지역 행사에 '만(卍,卐)'자가 새겨진 성조기를 사용했다.



뉴멕시코 레이턴 행사 차량



11세기 유럽 교회에서도 사용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의 모자이크 벽화에 십자가와 함께 '만(卍,卐)자'를 교차해 사용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좌만자 우만자



이외 가방 브랜드명으로 유명한 '키플링' 시인의 책이나 코카콜라도 '만(卍卐)'자 문양을 사용했다. 1910년대 보잉사의 신형 전투기도 '만(卐)'자를 썼다. 만에서 시작하고 만으로 끝났다. 



만(卍)자는 거북이가 지키는 북방의 '별자리'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만(卍)자는 '길상, 행복과 번영, 행운'의 뜻으로 나온다. 언제, 어디서 유래했는지,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알 수 없다. 명나라 때 편찬한《삼재도회》(三才圖會)라는 108권짜리 백과사전이 있다. 그 책에 천문도에 관한 부분을 보다가 북쪽 방위를 담당하는 별자리에서 '만(卍)'자를 발견했다. 검은색 흑점 9개가 남쪽 방향에 위치했다.



만자 문양 별자리



 기원후 7세기에 만들어진 돈황 석굴의 천문 지도에도 9개의 흑점이 '만(卍)'자 대형이었다.



돈황동굴의 천문 지도



만자 모양 별 이름은 '팔괴(八魁)'이다. 팔은 숫자이고 '괴(魁)'는 무슨 뜻일까? 옥편에 '우두머리, 장원(壯元ㆍ狀元), 으뜸, 덩이뿌리, 시초, 근본(根本), 크다, 북두칠성의 첫째 별'로 나온다.


옛날에 과거시험을 볼 때 1등을 하면 '장원급제'라고 했다. 장원이 되면 '괴과(魁科)'에 발탁이 됐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문과(文科)의 '갑과(甲科)'를 말한다. '괴(魁)'는 '귀신' 부수가 있다. 사람이 아니고 '귀신'처럼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의미할까? 귀신(鬼) 옆에 두(斗)자가 있다. 북두칠성, 남두육성할 때 두(斗)자인데 '괴(魁)'는 북두칠성의 맨 앞에 국자 모양의 4개 별자리를 뜻한다. 천자가 타는 '수레'를 의미한다. 수레를 타는 우두머리가 '괴(魁)'이다. 


'팔괴(八魁)'는 9개 별로 이뤄져 있다. 왜 '구괴(九魁)'라고 하지 않았을까? '팔(八)'은 원래로 돌아간다는 뜻이 있다. 가장 완벽한 숫자로 여긴다. '여덟명의 뛰어난 우두머리? 근본?' 이라는 뜻일까? 우리나라 천문도는 '만(卍)' 별을 다르게 그렸다. 


1777년 정조대왕 때 옛날 별자리를 참고해 만든 '구장천상열차분야지도(舊藏天象列次分野之圖)'가 있다.  미의회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만(卍)'자 모양 '팔괴(八魁)' 를 찾아보면 '여덟 팔(八)'자 별 3개가 선으로 연결돼 있다. https://www.loc.gov/item/2012594296/  



별들의 순위와 분포를 보여주는 구장 천상열차분야 지도인 구천도




'팔괴(八魁)'와 돼지머리



팔괴는 1년 12달중 '10월'에 있다. 띠로는 '돼지'이다. 죽은 고래들이 거처하는 '쌍어궁'이다. 옛날에 추수가 끝나면 10월에 제천 행사를 했다. '상달(上月)'이라고 했다. 모든 계절의 우두머리이다. 우리가 영화를 크랭크인 하거나 가게를 개업할 때, 스포츠 경기를 앞두고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 새로운 시작을 신들에게 고하며 잘되길 염원한다. 돼지머리는 '팔괴(八魁)'가 있는 별자리 신령들을 상징하고 그분들께 빌었던 게 아닐까?


세종 때 편찬한 천문서 '천문류초'가 있다. 여기서 팔괴(八魁)는 '군대의 우두머리, 모든 짐승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수호자'로 나온다. 이 별은 '실수(室宿)'라는 별자리에 소속돼 있다. 실(室)은 '집, 장가간다, 시집간다, 교접한다, 성교한다'는 뜻이 있다. 남녀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 곡식을 저장하고 가축을 키우며 자손대대로 뿌리를 내리는 부동산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도시가 형성된다. 재물이 쌓이고 물자가 유통돼 도적떼가 출몰하고 병란도 일어난다. '만(卍)' 별운 '실수(室宿)'를 지키는 우두머리 별이다. 지상도 똑같이 적용돼 '만(卍)'은 지도자나 장수를 의미했다. 세종대왕이 썼다는 익선관에도 '만(卐)'자가 있다. 




세종대왕의 익선관



'실수(室宿)'는 모기 입이 삐둟어 진다는 '처서'가 되면 남쪽 중앙에 떠오른다. 이 때 토목공사를 했다. 국가는 그동안 미뤘던 궁실과 교각, 도로, 산성 등을 보수하거나 증축했다. 선조들은 별자리마다 관직을 부여하고 이름을 매겨 그 별이 밝게 빛났을 때에 맞춰 농사를 짓거나 옷을 해입거나 추수를 했다. 예를 들면 어떤 별은 소를 치며 농사를 주관하는 별이라 밝고 어둠의 따라 소의 전염병을 예측했다. 어떤 별은 옷 만드는 길쌈 별로 그 별이 빛날때 길쌈 놀이를 했다. 어떤 별은 천자가 머무는 궁실로 여겨 그 별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어떤 별은 인간의 수명을 주관해 아픈 사람이 낫기를 기도하는 대상이 됐다. '실수(室宿)'는 사람들이 사는 집을 지킨다. 그 거처를 지키는 장수가 '만(卍)'별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스포츠 팀과 보잉사 전투기에 사용한 '만(卍)'자는 대표성을 상징했던 게 아닐까? 뉴욕 박물관이나 미연방은행 건물에 있던 '만자(卍卐)'는 토목 공사를 담당하던 '실수(室宿)' 별자리의 신령들에게 거처의 안녕을 기원했던게 아닐까. 집을 지키는 장수이자 금수로부터 인간을 보호했던 별이 '만(卍)'의 역할이다. 특정 종교의 상징 이전에 인간 삶의 터전을 지켜주는 신령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