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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Dec 15. 2024

3년전보다 나아진 것

#글쓰기 #정동진 #주말여행 #KTX #동해바다 #기차여행

일요일 오후 청량리에서 KTX를 타고 정동진역에 내렸다. 역에서 162m에 있는 카페에 앉아 회색빛 손바닥만한 노트를 뒤적거렸다. 2년전 검은색 볼펜으로 휘갈겨 쓴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3년전 상해로 일을 하러 갔다. 지금은 오빠의 장례를 치루고 안면도 방포 해수욕장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3년뒤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사람 일이라더니 하물며 몇 년 뒤를 예측하랴. 샤프심 점만큼도 상상이 안된다"


어느날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고 동네 친구가 말했다. 그녀를 통해 글쓰기를 하게 된 인천, 태릉에 사는 친구들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차표를 예매했다. 바다를 보고 카페에 가면 글을 쓰자고 했다. 가능할까 싶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커피향보다 진한 천장 아래서 연탄색 보다 진한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수다를 멈추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2년전 두서없이 쓴 낙서에 다음과 같이 이어쓰기를 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정동진 바다가 보이는 기차역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땐 혼자였는데 지금은 동무들이 있다. 샤프심 점만큼도 상상이 안됐던 그때의 미래가 현실이 됐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우는 일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속에서 나의 청력은 둔해지고 시력은 흐릿해졌다. 그때보다 나아진 게 있다면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진 것이다"


일요일 오후 누군가의 시간으로 기차가 움직이고 달리고 있다. 자동차 워셔액보다 짙은 바다에서 논게 즐거웠다. 낯선 사람들에게 관대해지고 싶었다. 생판 모르는 남들의 공헌으로 야무지게 움직이는 사회속에 오늘도 내일도 거져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기 보다 오늘을 어떻게 그들처럼 할지 선회해 본다



순간 이동하듯 청량리역에 도착해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탔다. 일요일 오후 출근시간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서 있던 곳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같은 방향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데 머리에 히잡을 쓴 동남아 관광객들이 우르르 탔다. 그중 서너살 돼 보이는 남자 아이를 안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나는 일어나 그 분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이 내 자리에 앉을까 가방으로 의자쪽을 방어했다. 눈빛으로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땡큐"를 연발 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잠든 아기가 버거워 보였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바지가 무릎위까지 치켜 올라갔다. 허리를 숙여 발목까지 내려줬다. 따듯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은데 얼마나 추울까 싶었다. 몇 정거장 뒤 그녀가 일어나 내리면서 "땡큐"를 했다. 그녀의 친정 어머니같아 보이는 나이든 여인이 온풍기처럼 따듯한 눈길을 보냈다. 


지하철과 연계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와서 집에도 편하게 가게 생겼다. 친구가 '도어 투 도어' 여행이라며 즐거워했다. 출차를 하면서 주차비를 계산하는데 1만원이 나왔다. 호출을 눌러 '제 차가 경차인데 50% 할인이 된건가요?'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4천원으로 알고 차를 댄건데 물가만큼은 불친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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