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으로 살 수 있어?
정말 술술 들어가는 드라마라 이틀 만에 12화를 다 봤다. 이 드라마가 미혼 여성들이 직장+사랑+우정을 다 잡는 21년 버전의 ‘골드미스 다이어리’라던가,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느낌일 거라 생각했다. 원래 여자 셋이 주인공이 되면 다 재밌다(?) 30대 여성들이 모이면 더 재밌다(?) ‘멜로가 체질’이 그랬고,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가 그랬다(나름 논리적 근거). 이거 거의 성공 공식 아닌가.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고, 여기서 오는 시간과 돈에 대한 여유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꿀 줄도 안다. 뜨거운 사랑도 가슴 찢어지는 이별도 경험한, 내 곁에 있을 사람과 스쳐 지나갈 사람을 만나본 나이. 이성에 불타던 20대를 보내고 이제는 ‘가족과 친구’가 인생의 본질이라 답을 내리게 되는 나이. 그래서 평생을 함께 할 ‘가족과 친구’를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시기. 지나온 삶이 튼튼하고, 앞으로 갈 날이 두근거리는 미묘한 경계선이 바로 30대인 것 같다. 아마도… 30대에 결혼/출산/육아 3종 세트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어쨌든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가 팡팡 터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당연히 다이내믹하고 재밌지… 재밌는데 왜 눈물이 나냐… (훌쩍)
당근빠따루. 원래 여자들 중에서도 ‘여중+여고’ 나온 친구들은 특유의 말릴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솔직하고 호탕하고 괴상한데 웃기고 못 말리는 매력. 여기에 ‘술’로 맺어져 기승전술인 세 여성의 이야기라니. 재미가 업을 수 없고요, 첫 회부터 술술~ 빠져듭니다. 티빙이 이런 콘텐츠를…? 넷플릭스 밀리는 이유가 이쏘…?
원작 웹툰에서는 에피소드와 함께 ‘술과 안주’ 그리고 가게까지 알려주며 정말로 ‘술’을 메인으로 삼는 내용이라 하던데, 드라마에서는 조금 더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췄다. 자기만의 캐릭터가 뚜렷한 세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희로애락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눈물 젖은 소주 한 병으로 들이켜는 스토리다.
근데 만취한 사람의 술꼬장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보다는 우리네 삶처럼 애처롭고 짠하고 사랑스럽다.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사실 술 취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마주하기 쉬운 게 어디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상을 맨 정신으로 버티는 모두의 하루하루가 기적이지. 너무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적당한 설렘과 눈물이 섞여있고 중간중간 분위기를 끊고 가는 유쾌한 반전과 비틀림도 재밌다.
특히 ‘이선빈’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은 극 현실주의를 담았다고 호평이 많았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그랬다. 마냥 눈물만 흘릴 수 없고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분주한 장례식장의 풍경을 리얼하게 그려서 그 슬픔이 더 가슴팍에 묵직하게 박혔다.
정말루 요즘 친구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요즘 드라마고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되게 잘 만들었다. 연륜 있는 흥행 보증수표의 연장자가 만든 느낌이 아니라, 어느 날 혜성처럼 날아온 능력치 만빵의 신입이 터트린 폭탄 같다.
그리고 정말 이선빈, 한선화, 정은지 세 캐릭터가 너무 귀엽고, 무엇보다 ‘최시원’이 청일점 역할을 아주 잘했다. 사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을 좋아하던 캐릭터랑 너무 비슷해서 실망했는데 희한하게 그게 밉지가 않았다. 왜 최시원은 저런 역할에 최적화되었는가. 저 과하고 이상한 오버액션이 왜 귀여운가. 아무래도 최시원 자체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다. 희한해… 이상한데 계속 보고 싶어… 궁금해…
아무튼 다 보고 나면, 괜히 술독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덩달아 머리가 띵해진다. 그러다가도 하 뜨끈한 국물에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겨울은 아무래도 소주지… 나는 내가 저렇게 ‘술꾼’으로 살 줄 알았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어 다소 인생의 전개가 당황스럽다. 아닌가. 늦지 않았나?… 나의 30대 어디 한 번… 술꾼 도시 여자로 제2막을 열어봐…? 그래 일단, 한 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