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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Mar 11. 2022

[코로나] 졌.잘.싸(feat.신속항원검사 두 줄)

이만하면 잘 피했다

코로나가 터진 지 2년이 흘렀다.


아주 초반에... 그러니까 20년 1월이었나. 겨울에 동계 수련회를 준비하다가 코로나라는 것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주춤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31번째 환자의 소식. 슈퍼 전파자인 31번 확진자가 여러 종교행사를 가고 거짓말을 한 탓에 기하급수적으로 접촉자가 늘어났다던 그때. 코로나 확진자가 두 자릿수가 됐다던 소식도 놀라웠고 하루에 100명씩 늘어가던 속도도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확진자가 어디까지 나올 것인가에 대한 가늠도 되지 않아 막연한 두려움으로 마스크만 찾았던 그때 그 시절.




그때는 31번째 환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하늘이 무너질 두려운 소식으로만 느껴졌다. 벌써 한국에 코로나 환자가 31명이나 되기 때문에 자칫 사람 많은 서울의 어딘가로 가다가는 코로나를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가득했고 꽤나 두려운 역병이었다. 지금은 하루에 무려 30만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으니 산다는 것은 한 치 앞을 모를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다양한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나는 꽤나 굳건하게 일상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뭐 굳이 코로나 걸렸다고 일상이 무너졌다고까지 표현할 순 없겠지만 코로나를 걸리지 않고 잘 비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상을 무난하게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위기의 순간이 많았다.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지만~ 내가 다녀온 식이 끝난 다음 예식이었다던가... 사무실에서 밀접 접촉자가 나왔지만~ 2주가 넘게 재택 일정이 엇갈린 덕분에 나만 홀로 검사 대상에서 빠졌었다던가... 심지어 매년 가던 송구영신예배를 안 가기로 결정하고 온라인 예배에 참여했는데~ 그때 확진자가 나와서 참석했던 모두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던가... 생전 처음 했던 행동 덕분에 코로나를 피했다는 웃지 못할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나는 PCR 검사를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밀접 접촉자가 된 적도 없고, 증상이 나오거나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적도 없고... 이쯤 되면 정말 세상이 말하는 '친구가 없는 이'가 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하기엔 내가 활동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코로나와 접점이 없길래 나는 아예 코로나 검사 한 번을 안 하고 이 질병을 지나쳐 가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안일하게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던 적은 없고!


코로나 검사가 뭐 뇌를 찌르는 깊이라느니, 눈물이 줄줄 흐른다느니 다양한 경험담이 나올 때도 나의 '비염 치료'를 바탕으로 예측만 했었다. 그 면봉보다는 길고, 꼬치보다는 짧은 물건이 코를 휘젓고 다닐 때 드는 충격적인 경험과 기침과 눈물. 아마도 그런 게 코로나 검사겠구나 하며 궁금해했다. 물론 하고 싶진 않았다. 자가 검사 키트가 나와서 집에서 코를 후비는 여러 소식을 들을 때에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하는 검사를 한 번도 안 하고 지나치는 나의 무심함과 요동하지 않는 태도에 놀랐고. 하고 싶어도 사실 증상도 없고 접촉도 없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신기하단 생각으로 가만히 살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신속항원검사'를 받아 두 줄을 받았고

바로 PCR 검사까지 일사천리로 받았다.


어제저녁부터 목이 잠겼고 칼칼했다. 뭔가 목에도 문이 있다면 누군가가 강제로 쳐들어와 문을 꼭 잠가두고 목을 다 부시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누가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답답함과 칼칼함이 있었다. 혹시 몰라서 감기약을 챙겨 먹었고, 내일 아침에도 목이 안 좋거든 '자가검사 키트'를 해볼 참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다. '뭔가 다르다' 직감이 먼저 뇌를 쳤다. 소리를 내봤다. '아↘아↘'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중저음의 섹시한 목소리가 잔뜩 잠긴 채로 힘겹게 툭 튀어나왔다. '뭔가 다르다' 재빨리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이 팅팅 부었다. 하지만 이건 어제저녁 폭식 때문이다. '예상 대로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오전 회의를 참석했는데 우리 팀에서 나와 같은 상태인 직원이 2명이 더 있단다. 둘 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두 줄이 나왔고 4시간이 넘는 PCR 검사를 위해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왔구나' 드디어 나에게도 코로나가 왔구나. 그 긴 시간을 잘도 피하고 지나치며 남의 일만 같았던 코로나가 돌고 돌아서 드디어 나에게 닿았구나 라는 생각에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고 했던가. 언제 걸릴지 몰라 두려워하던 시간보다야, 차라리 직접 겪어보는 편이 덜 무섭겠다는 마음. 2년간 검사 한 번 안 하고 여태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다.

병원에서 받는 '신속항원검사'는 사뭇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검사를 마치고 대기하는 사람들 틈에는 미묘한 긴장감과 두려움, 체념 섞인 표정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렀다. 결과를 들으러 문을 지나는 순간 의사 선생님께서 손목을 흔들며 이리로 와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찰나에 스치는 '안타까운' 눈빛을 봤다. 코로나에 걸리는 게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막상 홀로 그어진 한 줄들 틈에서 '두 줄'이 명확한 내 검사 결과를 보니 쿵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 두 줄은 다르네. 확실히 두 줄이네. 소견서도 받았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PCR 검사가 필요합니다.' 검사는 3층에서 했고, 마침 1층에서 PCR 검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접수를 하고 추가로 검사를 받았다. 궁금하기도, 거부하고 싶기도 했던 그러나 끝내 피할 수 없던 코로나 검사를 드디어 받았다.

맨 위가 나의 결과.

내일, 결과가 나온다.


증상은 있지만 혹시 몰라.

그래도 나는 양성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 회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 음성이래'라고 말하기 좀 부끄러운 상황이 된 것 같은데? 차라리 양성인 게 낫겠는데?라는 희한한 생각도 하면서 약과 물을 번갈아 마셨고 저녁이 되니 나의 염려가 우습게도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머리가 핑 돌고 가래가 나온다... 아 그렇지... 결과는 이미 받은 것과 다름없구나... 그렇구나. 내 결과는 내가 알 수 있구나. 첫 검사 결과 당첨이라니. 대단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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