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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Dec 26. 2021

백신 미접종자의 최후

존버는 승리하나?

나는 백신 미접종자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검사를 받아 본 적도 없다.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로 살면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역 패스로 인해 실질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왜 백신을 맞지 않느냐" , "왜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느냐"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게 된다. 그때마다 내 나름의 생각과 논리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붙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여 "맞고 죽을까 봐 못 맞겠어요"라는 대답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래도 어디엔가는 내 생각을 정리해 두고 싶었고 이렇게 글로 남긴다.



현재 시점에서 나는 국가에서 백신을 강제하는 것이 자유를 통제하는 위헌적 행위라 판단한다. QR코드, 방문록 작성 또한 실효성 없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 행위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내 태도가 매우 못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조금이라도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어보는 것이 대략 15%가량 되는 백신 미접종자들의 마인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백신이 등장했을 때 왜 안 맞았나?



어차피 글로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이 사태의 시작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정확한 타임라인은 기억나지 않지만 19년도 말 처음 우한 폐렴 발원 소식을 접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백신이 등장하기까지는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나는 그 시기에 강남에 있는 스타트업에 근무 중이었고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서울 2호선 지하철을 통해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 마스크를 착용했고 간혹 빼먹은 날에는 양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마스크를 구입해 끼곤 했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함께 나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며 흡연장에서 담배도 다들 잘 피웠다. 그리고 그 이후에 옮긴 직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백신이 등장했다. 이미 1년 이상의 시간을 코로나에 대한 큰 불안감 없이 지내온 내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케이스는 두 가지였는데 내가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가 혹은 그렇지 않았던가였다.



(1) 코로나에 걸렸었다

그렇다면 나는 백신을 맞을 이유가 없었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크게 아파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걸렸더라도 증상 없이 넘어간 케이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백신이 나왔을 때 그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아프지 않고 잘 넘어간 질병에 대해 위험성을 감수하고 주사를 맞을 이유도 없었다.



(2) 코로나에 안 걸렸었다

이미 나는 1년 넘게 일을 하면서 사람 많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잘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동안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는 마찬가지로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편안하게 밥 먹고 일 하면서 1년을 지내도 걸리지 않을 질병이라면 뭐하러 품질에 대한 확신도 없는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처음 백신이 등장했을 때 굳이 맞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검사는 왜 안 받았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확진이 된다는 것은 곧 사회적 매장을 의미했다. 그의 신상이 공개되고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직장이 폐쇄되었다. 불안정한 계약직 상태로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내 입장에서 코로나 확진이 된다는 것은 곧 실직을 의미했고 백여 명 회사 동료들의 근로 또한 위협하는 행위였으니 심지어 아픈 적도 없던 내가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추가해서 짚어볼 점은 바로 '역학관계 조사'에 있다. 만약 내가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반응이 뜬다. 그리고 내 확진으로 인해서 우리 층에 있는 동료 100명이 일시에 검사를 받게 되고 그중 10명이 추가로 확진된다. 회사는 일시적으로 폐쇄되고 나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내가 나머지 10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겼다는 것이 확실한가? 사실상 동료 A가 먼저 코로나에 걸려서 직장에 전파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단지 내가 먼저 검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나는 회사 내 '최초 전파자'가 될 수밖에 없다. 먼저 걸린 사람이 아니라 먼저 검사를 받아 양성이 뜨는 사람이 원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런 상황에서 선뜻 검사를 받겠다고 먼저 나설 이유가 있나. 나는 그 기간 동안 몸이 아픈 적이 없었지만 설령 열이 나고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필사적으로 그것을 숨기려 했을 것이다.



QR코드는 사생활 침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31번 확진자, 87번 확진자 등 비교적 작은 숫자로 역학조사를 통해 전파된 사람들을 따로 격리하고자 하는 시도와 취지가 옳았다고 본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난 이후로 QR코드를 통한 확진자 동선 파악 및 역학관계 조사는 완전히 그 의미를 잃었다. 오래전 정재승 교수의 [과학콘서트]라는 책에서 읽었던 '케빈 베이컨 게임'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6단계만 거치면 미국 배우 케빈 베이컨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인간 네트워크라는 것이 오밀조밀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단순히 '아는' 정도로 계단을 하나 거치게 되니 물론 그만큼의 파급력은 아니겠지만 코로나의 전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강력하다면(그래서 같은 공간 내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검사 대상으로 삼고 추적하자면) 이는 이미 진작부터 손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이 자명하다.



식당과 가정에서만 마스크를 벗고 생활한다고 생각해 본다. 최초 1개 식당 1 사람의 확진자로 시작한다고 해도 그곳 식당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 그리고 그들이 집에 돌아갔다 나온 다음 날에는 그들의 가족들도 다 함께 번져나간다고 봤을 때 전국 식당 폐쇄, 전 국민 확진자 밀접 접촉 시대가 열리기까지 1주일이나 걸릴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디아블로에 나오는 체인 라이트닝처럼 미친 듯이 뻗어 나갈 텐데 이를 역학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몇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몇 번 확진자 동선' 등을 통해서 위험성을 경고하는 인터넷 기사는 사라진 지 아주 오래되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R코드는 지금도 계속해서 찍고 있다. 지금은 출입객들의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를 겸해서 이용되고 있는데 "처음 경로 추적용 QR코드가 등장"한 시점부터 "백신 접종 시작" 전까지의 기간 동안은 아무런 실효성 없이 국민들의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를 취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확진자 수는 허상이다



우리나라에 오늘 확진자 숫자가 5000명, 이웃나라 일본에서 8000명이 나왔다고 가정한다. 어느 나라가 더 위험한 상황인가? 이 숫자만 가지고는 섣불리 결론 내리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10만 명을 검사했고 일본에서 50만 명을 검사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뉴스와 인터넷 기사를 아무리 봐도 검사 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그날그날의 확진자 숫자만 나오고 그것을 토대로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나는 처음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발표되던 시점부터 이 부분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는데, 정부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수치를 조작하고 제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일 갑자기 우리나라 확진자 숫자가 10만 명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오늘과 전혀 다름없는 내일이 이어지리라고 확신한다. 단지 오늘 했던 것보다 검사 수를 20배가량 늘리면 10만 명 정도 수치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미 "확진", 즉 확실히 병원에서 진단을 받지 않았을 뿐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걸린 대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럼에도 "확진자 수"라는 절대치를 가지고 정책을 만들고 보도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지하철 등 순간적으로 인구가 밀집되는 장소에서나 민주노총 집회 현장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을 표적으로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고 지하철에서 전염이 된 사람이라고 해도 역학관계를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서나 교회에서는 무수히 많은 확진자가 나온다. A라는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민주노총 집회에 참석했다가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한 후 확진 판정을 받는다. 이 사람은 국밥집에서 감염이 된 것이다. B라는 사람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후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는데 확진 판정을 받는다. 이 사람은 태극기 집회에서 감염이 된 것이다.



일일 검사수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로 발표되는 확진자 수는 실상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확진자의 감염 경로 또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서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



왜 아직까지도 백신을 안 맞는가?



요즘 언론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돌파 감염'이다. 백신을 맞았지만 돌파를 당했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미 백신에 대한 신뢰가 매우 떨어진다. 그러자 방역당국에서는 백신이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즉 백신을 맞은 A나 맞지 않은 B나 다 코로나에 걸릴 수 있고 타인에게 전파도 할 수 있는데 A는 중증으로 가지 않고 B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만약에, 내가 백신을 맞지 않음으로 인해서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게 된다면 아마 누구보다 빨리 접종을 마쳤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싫어서 샤워하면서 노래도 안 부르고 길에 꽁초 하나 버려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백신을 아직까지도 맞지 않고 있는 것은 내가 접종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1%도 끼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백신 접종을 마친 85%는 더 이상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나머지 15% 중에서 감염병이 계속해서 유지되면서 기저질환으로 인해 주사를 맞지 못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진작 맞았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백신을 2차, 3차까지 맞은 사람들 중에서도 끊임없이 확진자가 나오고 각종 변이가 발생하며 이 사태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백신 미접종자를 공공의 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큰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갈라 치기



문재인 정권은 집권 이후 끊임없이 국민들을 두 편으로 나눠 대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중 조금 더 숫자가 많은 쪽에 우위를 쥐어주며 소수를 핍박해 왔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두가 나란히 한 표를 가지고 있으니 소수 집단을 해쳐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본인들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가져서겠지. 대기업 등 부자들을 조지고, 교회 등 종교단체를 핍박하고, 자영업자를 골로 보내고 있으며 백신 미접종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본인들의 과오와 실책을 은폐하고 국민들을 갈라 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있는 현 상황에 매우 큰 피로감을 느낀다. 사실상 내가 아직까지 백신을 맞지 않고 불편한 사회생활을 모두 감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방역당국의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백신 미접종자의 최후



나는 백신을 맞기 싫다. 별다른 효용성이 없어 보여서 그렇고 자칫하면 몸에 이상이 생길까 봐 두렵기도 하다. 전체주의 통제국가로 가는 첫 관문처럼 느껴져서 맞기 싫고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 맞기 싫다. 내 고집으로 인해 백신을 맞지 않고 버티다가 끝내 병에 걸려 죽는다 해도 한 점 후회는 없을 것이지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마지못해 백신을 맞고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게 된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될 것 같아서 맞기 싫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 확고한 논리와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제 슬슬 정부와 방역당국에 굴복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내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백신 패스'가 필요해진 것이다. 백신은 필요 없는데 패스는 필요한 상황. 거기에 소시민으로서 정부 방침을 바꿀 수 없다는, 그리고 차기 정부에서도 크게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해졌다.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자영업자가 등장했고 나름대로 백신 미접종자들 사이에서는 각자의 소신을 믿고 버틴다는 일종의 동질감이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지만 현실 앞에서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비참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이와 같은 글을 남긴다. 내가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앞으로의 삶을 계속 이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지만 나머지 미접종자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소신을 끝까지 지키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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