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닥치고 애나 키워요.

내게 경단녀를 권하던 원장

by anchovy


"선생님, 이제 집에서 애 낳고 키우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원장의 시꺼먼 속내를..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30살도 넘지 않은 내게 원장이 던진 말이었다. 물론 그때 나는 이미 결혼한 상황이니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당사자도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이 낳는 시기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불쾌했다. 평소 가부장적이고 마초 성향을 지닌 남자 원장이었기에 이 말을 흘러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당시 내가 일하던 곳에 원장은 외부에서 교육 강연을 다니며 우월감이 초절정에 이른 시기였는데 나 말고도 많은 선생님들에게 독설을 해대며(본인은 직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깍아내렸다. 하물며 나에게는 계속 과학 수업을 하다 보면 나이 들어 공부방도 못 차릴 테니 수학으로 전향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얼마나 많은 돈을 주는지 강조하며 다른 선생님들보다 네게 더 큰돈을 주고 있으니 자기에게 충성해야 한다느니 쓸데도 없는 말들을 떠들어댔다.


어느 날은 출근 전에 학원 근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출근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원장이 내 장바구니를 열심히 뒤지고 있으니 말이다. 뭐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까만 비닐봉지를 장바구니에 밀어 넣으며


"아줌마 다 됐네. 그냥 집에서 밥이나 하면 딱이야."


이러면서 낄낄대고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뭐야 이 인간? 업무 시간도 아니고 출근 전 구입한 장바구니 안을 뒤져보는 게 정상이야?


화가 나서 원장실을 노크했다. 뭘 잘못한 건지 당최 알지 못한다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오늘 저녁은 카레 먹나 봐!"라고 얘기를 하는데.

아... 진짜 빡친다는 감정이 뭔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제 가방 안을 왜 보신 거냐 물었더니 내 학원에 있는 물건 못 볼 이유가 있냐며 핸드백도 아니고 장바구니 본 게 그렇게 원장에게 대들 이유냐고 했다. 원장실 안에서 방방 뛰는 나와 이런 내가 건방지다며 소리를 질러대는 원장 덕분에 원장실 밖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 말인즉슨 결혼하고 애 가졌네 뭐네 하며 학원에 피해줄 바에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만두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또 내 페이가 다른 선생님들보다 높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저비용 고효율의 선생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 말인즉슨 내가 널 짜르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 그건 싫고 나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거였다.


결국 등 떠밀듯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 무능함으로 인해 이런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수렴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3년 가까이 일했던 선생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전혀 배려가 없었던 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안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된 관계 이건만, 최근 이 원장님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내 번호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난 그만두면서 싹 지웠는데.,)

아침 7시 반, 본인 강연회를 알리며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답장을 안 했더니 3일 연속 모닝콜처럼 카톡을 보내는 거다. 하... 이 인간이 장난하나?


결국 정중히 답장을 보냈다.


원장님이 애나 낳고 키우라고 조언해주셨는데 참 아쉽게도 일하느라 아이를 못 가지고 바쁘게 사네요. 아침 모닝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하루가 길어졌네요.


이렇게 우리의 악연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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