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는 학원 선생이 해주는 게 아니라 학생 본인이 하는 겁니다!
10년 넘게 사교육 선생으로 일하며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그에 따라 다양한 부모님들을 만나게 된다. 좋은 분도 있었고 5화에 나온 분처럼 술 주정뱅이도 있었지만 이번에 얘기하려고 하는 분은 또 다른 방법으로 나를 비참하게 하셨던 분이다.
나는 학원 일 이외에 개인 수업도 하기 때문에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새로운 학생을 만날 때가 많다. 학원에서와 달리 학생 개개인에 맞춰서 수업 계획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이로운 면이 많고 나 또한 학생과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어 더 애착이 간다. 하지만 늘 좋을 수는 없는 건가? 쌍둥이를 둔 명문대 교수 어머님으로 인해 크게 상처 받은 적이 있다. (메인 사진에 보이는 하버드 대학 교수님은 아니고 우리나라 엄마들이 좋아하시는 명문대학의 교수님이다. )
처음 쌍둥이들을 만나게 됐을 때 나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편견일 수는 있지만 두 부모님 모두 명문대 교수님이시고 정말 지성인으로 유명한 분이시기에 아이들 또한 대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과목 특성상 흥미가 없으면 이해도, 암기도 어려운데 딱 이 학생들이 과학에 no 흥미였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가르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이들도 나도 점차 적응해 가면서 차근차근 시험대비를 진행할 수 있었고 다가온 시험에서 대폭 오른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쌍둥이 중 한 아이는 40점 가까이 성적이 올랐는데 어머님께서는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셨다. (우리 애들이 하면 잘한다는 거지! 이제까지 안 해서 못한 거지 네가 잘 가르친 건 아니다. 이거지 뭐.)
뭐 이거야 생색내고 싶지도 않고 돈 벌게 해주는 게 감사할 따름 아닌가? 근데 사건은 그다음 시험 이후에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 중간고사에 이어 기말고사 성적도 괜찮게 나왔지만 문제는 성적표가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여기 좀 앉아 보세요."
수업하기 위해 온 나에게 쌍둥이의 어머니께서는 얼굴이 벌게져서 고압적인 말투로 앉으라고 하셨다. 성적표를 활짝 펼쳐 식탁에 펴고 손가락으로 딱딱. 과학 성적을 짚으며 과학 성적이 왜 이러냐면서 나보고 뭘 한 거냐는 거다. 성적표를 보니 중간과 기말고사 성적은 좋았는데 수행평가 점수가 거의 0점에 가까웠다. 수행평가가 0점이 되려면 공책 검사, 프린트 검사, 중간에 하는 실험 등 그런 것들을 다 망쳤다는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줘? 수행평가는 내가 해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학교 수업 중 실행해야 하는 다양한 과제들로 점수를 받는 것이라고 했더니 마치 사기꾼을 보듯 바라보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흥분해서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해도 변명하지 말라고 얘기를 하면서 자기 밑에 학생을 혼내듯 소리를 질러댔다. 이 집을 나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이 나이에, 이 경력에 이런 취급이나 받다니 참...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오해는 오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나를 소개한 어머님께 교수 어머님이 전화해서는 이 상황을 따져 물으시다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오해가 풀린 것도 소개해 주신 분을 통해 들었다.) 결국 어떻게 됐냐고? 끝까지 사과는 없었다. 흐지부지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도 그 집 근처를 지나가면 소름이 끼치고 그 애들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처진다. 그분이 사주셨던 에끌레어(디저트에 일종인데 강남 신세계 지하에 판다.)만 봐도 토악질이 날 지경이다.
최고의 지성인이시면 상대방에 말은 안 듣는 겁니까? 사과는 원래 먹는 거지 하는 게 아닌 거죠?
네네, 교수님. 미천한 저는 인연을 끊습니다. 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