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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나님을 안 믿어서 제가 암에 걸렸다고요?

by anchovy

12년 전, 자궁암 검진을 받다가 물혹 하나가 발견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가임기 여성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물혹이니 그냥 정밀검사를 해보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하셨다. 그런데 이게 뭔 날벼락인지. 20대였던 내 난소에 암으로 의심되는 뭔가가 있다는 거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께 일하는 곳과 스케줄을 조율한 후 다시 오겠다고 얘기한 후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진찰실을 나왔다. 그리곤 곧장 학원에 출근해 원장에게 내 몸 상태에 대해 얘기를 했다. 대체할 선생을 구해주실 때까지는 버텨보겠다는 착한 여자 같은 미련한 말을 건네면서.


근데. 원장이 내게 하는 말.


선생님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이런 거예요. 얼른 우리 교회로 오세요. 기도하면 다 나아요.


이게 뭔 댕댕이 소리인지.

교회 안 다녀서 내가 난소암에 걸렸다니. 그리고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야. 진짜 21세기 사람이 할 얘기인가 싶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대꾸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원장은 예전부터 교회에 안 다니는 나를 계속 전도하려고 했었는데 이런 해괴한 말까지 하면서 이 순간에도 교회에 데려가려 하다니.


결국 여러 번의 그만둔다 그냥 교회에 가자 이런 시답지 않은 실랑이 끝에 교회 안 다녀 암에 걸린 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젊은 나이 덕분인지 수술 후 컨디션도 금방 회복되었고 3주쯤 지나 다른 학원에 이직하게 되었다.


내게 하나님을 안 믿어 암에 걸렸다는 망언을 하셨던 원장은 동업하던 또 다른 원장과 수익금 배분 문제로 대판 싸우더니 폐업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 않았나 보다.


요새도 교회 같이 다니자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안 믿으시면 병에 걸린다는 이상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종교를 가지고 그것에 의지하는 건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듯 그들도 내게 종교의 전도를 강요해선 안 되는 건데. 하긴 기독교인만 입사 조건이고 주 1회 예배 보는 학원이 아직도 있긴 하지.


원장님들! 우리 종교의 자유는 지켜줍시다. 민주주의 대한민국 아닌가요? 그리고 저는 불교예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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