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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선생님 어차피 늦게 주무시잖아요?

내가 무슨 철인 28호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네!

by anchovy

이 글을 읽기 전에 전달할 말이 있어 알립니다.

본인 얘기인 줄 알고 검색해서 들어오는 너, 혹은 너희 부모님! 검색까지 해서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


이제 본문 시작!


예전부터 전해오는 말이 하나 있다.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이 구닥다리 같은 발언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나도 이제 늙긴 늙었나 보다.


8월 중순부터 말까지는 탐구 발표 보고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심사를 통해 수상 여부 결정되는 시기이다. 그런 시기이다 보니 과학 선생인 나는 며칠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다. 완전 엉망인 보고서를 하루아침에 고쳐달라지를 않나 수정 부탁한다고 하고선 야금야금 전체를 고치게 하고 표, 그래프, 사진도 제대로 못 고쳐서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하는 등 아주 총체적 난국이다. 그리고 잘 마무리해서 보내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비용도 어떻게 하면 안 주거나 깎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게 보인다.


그런데 이런 바쁜 와중에 진짜 화가 나는 일이 터져 버렸다. 자꾸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녀석이 꼭 새벽에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 탐구보고서 피드백을 부탁하는 거다. 빨라야 12시 50분, 늦으면 3시. 처음에는 점잖게 주의를 주며 늦은 시간에는 나도 좀 쉬고 싶으니 연락을 자제해달라고 전했다. 그러자 이 녀석 하는 말이 가관이다.


문자 했는데 씹는 건 예의 없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반문했다.

밤늦게 연락하는 건 예의 있는 거냐?


이랬더니 이 무개념 녀석 왈,

주무셨어요? 안 주무시면 할 수 있잖아요?


이 녀석은 수업 중 농담으로 5분을 쓰면 수업 끝나고 돈 아깝다, 시간 아깝다며 말을 하던 녀석이다. 그런데 내 시간은 안 아까우시다!?


역린을 건드린 이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만나 녀석에 보고서를 고쳐주는 2시간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며 입으로는 녀석을 잘근잘근 씹어주었다.



너 늘 시간 아깝다, 돈 아깝다 했으니까 이 보고서 고쳐주면서 얘기한다. 왜냐고? 난 돈 받은 만큼 해주려고. 너 뭔가 어이없는 게 네 시간은 아깝고 내 새벽 시간은 무료로 너한테 개방해야 하니? 왜 네 문자, 카톡에 답장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좋아하는 돈으로 얘기해보자. 네 보고서 읽고 피드백해주는 시간은 수업에 포함되니, 아니지? 퇴근하는 중에 내가 보낸 보고서 다운로드해서 읽느라 사용하는 데이터는 돈 아냐? 네가 보낸 문서 90MB가 넘더라? 그걸 나보고 읽으라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 아냐? 수업 중에 보여주면 너 수업 시간 줄어들까 봐 지금 머리 쓰는 거잖아. 이렇게 엉망으로 보고서 쓰고 어디서 고쳐달란 거야?


진짜 2시간을 꼬박 고쳐야 완성된 보고서를 이 무개념 녀석은 내 새벽시간을 활용해서 고쳐주길 바란 거다. 난 새벽에 늦게 자니까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이봐. 나도 새벽에 자. 그리고 안 자도 그 시간은 내 시간이야. 내 마음대로 쓰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다. 다른 분들도 제발 새벽에 연락 좀 하지 맙시다. 다시 말하지만 전 철인 28호 아니에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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