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맛집 추천글이 맞습니다.
오늘 뭐 먹지?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점심밥이다. 새학기, 누구와 어디서 얼마짜리 밥을 먹을 건지는 오전 내내 머리를 굴려도 모자라다. 그럴 때면 대학교 4년의 노하우로 연마해 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곳의 이름은 ‘미가(味家)’. 말 그대로 학교 주변 최고의 맛집이다. 진정한 보물은 숨겨져 있다고 했던가, 학교 건너편 염리동 뒷골목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11시 45분, 종이 치자 마자 찾아간 그곳엔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앞 한 켠에 줄지어 놓인 안전모들이 보였다. 재건축이 한창인 염리동 식당의 흔한 점심 풍경인 모양이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공사장 인부 절반, 그 중 나머지 절반은 대학생, 나머지 절반은 교수인지 동네주민인지 모를 아저씨들이었다. 이 근처 점심밥을 어디서 먹을 지 고민한 사람들은 죄다 모인 듯 했다.
이 집 최고의 인기 메뉴는 제육볶음. 학생들도, 공사장 인부도, 아저씨도 제육볶음을 시켜 먹는다. 식당 아주머니는 지글대는 제육볶음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우리의 신경은 온통 아주머니를 향해 있다. 시끌벅적한 대화 중에도 문득 등장하는 침묵이 말해준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드디어 커다란 은쟁반을 든 아주머니가 우리 쪽으로 온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다. “마스크 좀 치워줘요”, “(제육볶음) 놓게 반찬 좀 옆으로 밀어요.” 하지만 우린 기분 나쁠 틈도 없다. 학생도, 인부도, 아저씨도 그저 제육볶음 먹을 생각에 신나 냉큼 상을 치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저 이 집의 제육볶음이 고픈 손님일 뿐이니까.
자네도 여기로 왔나?
한 번은 학교 수업을 듣다 이런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유교의 발전과정과 씨름했더니 허기가 졌다. 자연스레 미가의 제육볶음이 떠올랐다. 오후 3시의 식당은 한적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던 순간, ‘띠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방금 수업을 함께한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동시에 눈이 딱 마주쳤다. “아니, 자네도 여기로 밥 먹으러 왔나?”하며 교수님이 한번 껄껄 웃으시더니 다른 쪽으로 가 앉으셨다. 교수와 학생, 높은 강단과 그 아래의 책상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배가 고팠다. 이젠 똑같이 마룻바닥에 책상다리하고 앉아 제육 쌈을 하나 크게 싸서 입에 넣는다. 역시는 역시다. 적당한 육즙을 품은 제육볶음은 그날도 꿀맛이었다.
와, 잘 먹었다!
“수업은 재밌니?”라는 뻔한 질문을 하는 뒷자리 사람들은 1학년과 2학년임이 분명하다. 부족한 용돈에도 불구하고 후배 밥까지 사주려는 2학년은 아마 ‘선배님과 같이 밥 한끼 하고 싶다’는 후배의 말에 호기롭게 나섰을 것이다. 내 옆자리에는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의 인부들이 앉아있다. 땀흘려 일하고 온 그들은 그만큼 열심히 밥을 비빈다. 맞은편에 앉은 선배는 자기 밥을 덜어 후배에게 넘겨준다. 그만 줘도 된다는 후배의 말에도 불구하고 “많이 먹어, 그리고 화장실이나 계속 가라!”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면서 연신 자신의 밥을 덜어준다. 그리고 뒤에 사람도, 옆에 사람도, 나도 모두 한 입 크게 벌려 맛있게 쩝쩝거리며 밥을 먹는다.
미가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팔 맞대고, 다리 붙이고 만나는 환상의 장소. 똑같이 허기진 속으로 들어와 똑같이 가득 찬 배를 어루만지며 “와, 잘 먹었다!”하고 나서는 장소. 그곳이 바로 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