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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딩 Mar 14. 2022

두 줄만 제대로 치자_1 (기술 편)

두 줄에서 세 마디로, 세 마디에서 한 마디로, 양손에서 다시 왼손부터

해야 할게 명백하게 나와있는 3악장에 비해 2악장은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느낌. 그래서 나도 모르게 2악장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아예 작정하고 2악장만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고 해야 할 리스트를 작성했다.


제일 귀찮지만 우선적으로 나의 연주 많이 들어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더라도 나의 감정을 표출하기

또 창피하고 부끄럽더라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모방하기 - '감히 내가?'라는 겸손은 떨쳐버리고 따라 할 수 있는 소리란 소리는 다 따라 해 보기


 첫 레슨 때 선생님은  피아니시모(아주 작게)로 시작하지만 아직 너무 맥없이 들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강도보다는 부드러움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강도를 신경 쓰지 않으니 손가락이 더 성의 없게 건반 위에 올라갔고 더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엔  마디만 강약부터 부드러움까지 아예 제대로 신경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연습했다.


딱 한 마디, 다섯 음계만 제대로 쳐보자

왼손으로 시작되는 2악장의 첫 연주 - 5번(새끼) 손가락 '라'를 시작으로

 피아니시모(매우 작게) 임에도 불구하고 첫마디의 '라'는 다른 마디의  '라'보다 조금 더 웅장하게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첫 음이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늘 다른 건반들 보다 훨씬 어색하고 딱딱하게만 들려 계속해서 알맞은 강도를 찾아내려고 했다. 겨우 찾아낸 그 강도는 늘 일정하지 않았고 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 통일감이 들 때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음계 - '미' 두 번

같은 미를 두 번 누르는데 한 번 누른 후 완전히 손가락을 떼고 다시 누르는 게 아니라 한 번 누른 후 건반에서 손을 완전히 떼기 바로 직전에 다시 또 한 번 '미'를 눌러줘 한 음을 부드럽게 이어준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네 번째 '시' - 1번 손가락(엄지)

강도 조절이 제일 어려운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줘야 하는 부분. 이 '시'는 다섯 계이름 중에서도 제일 크게 들려야 하는데 부드럽기까지 해야 해서 다른 손가락 보다도 긴장을 더 많이 줘야 했다. 단순히 손가락을 건반에 내려쳐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건반을 누르기 전에 일단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고 내가 제대로 된 볼륨 조절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가 되면 나만의 심호흡을 한 후 적당히 튀는 '시'를 눌러주면 되는 것. 상대적으로 첫 '라'와 비슷한 볼륨이면서 두 번째 '미'와는 차이가 드러날 수 있도록 커야 하는데 이 '시' 또한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건반을 내려쳐 흐름을 끊기게 했다. 또 '시'를 잘 연출하기 위해선 앞부분 '라' - '미' - '미'가 제대로 나와야 했는데 또 제대로 나왔어도  금방 집중력이 풀려버려(건반 세 개 치는데 집중력이 떨어질 수가 있냐면 할 말은 없지만) 나만의 절제력의 상태는 사라지고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건반을 내려치는 엄지가 되어버렸다.


다시 '미'로 - 마무리

라 - 미 - 에서 시작했다가 시'에서 최대한의 긴장감을 보여준 후 두 번째 '미'와 같은 강도로 약하게 그러나 마디의 마무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감을 멈추면 안 되었다. '라 - 미 - 미'가 '시'를 위한 도약이었다면, '시'는 도약의 결과물이었고, 마지막 '미'는 그 도약의 결과물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한 마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섯 계이름 모두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라 - 미 - 미 - 시'까지 완벽한 발란스를 연출해도 바로 긴장감이 풀리면 역시나 무의식적으로 건반을 툭하고 내려놓기 바빴고 한 마디는 쉽게 무너져 내렸다.

 이 발란스를 제대로 지키기까지 얼마나 더 연습해야 할까

전체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긴장이 많이 되다 보니 진이 많이 빠졌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극단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거나 아예 소리가 안 나기 일쑤였다. 첫 '라'의 소리를 제대로 찾으면 두 번째 '미'에서 방심하고, 다시 집중해 두 번째 '미'까지 제대로 긴장감을 표현하면 네 번째 '시'에서 긴장감이 풀려 또 너무 크게 쳐지고, 네 번째까지 잘 치고 마지막 '미'에서 소리가 안 나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 반복을 집 피아노, 연습실 피아노, 학원 피아노 세 피아노에서 문제없이 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습하고 연습했다. 마르타와 랑랑의 연주를 계속해서 들었고 내 연주도 계속해서 촬영하고 듣기를 반복했다.


선생님들이 오히려 느린 부분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빠른 부분보다 힘들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했지만 완전히 그러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 연습 후 다섯 손가락 모두 뻐근하고 저려오는 걸 느끼니 3악장 못지않고 나라는 걸 제대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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