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딩 Mar 24. 2022

두 줄만 제대로 치자_2 (감정 편)_1

쓰다 보니 길어지네

 눈물이 났던 수업 날 막연하긴 했지만 그때의 참담한 감정과 그 감정의 깊은 동굴에서 오는 우울함이 주는 터치감이 무엇인지 조금 맛보긴 했다. 아주 실낱같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연구하러 연습실을 가기 직전까지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그 참담하고 우울한 감정을 지녀야 한다고? 내가 가장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인데?

 

스물한살 무작정 찾아갔던 부산 바다. B612가 확실히 오래전이라는걸 증명해준다

 막 대학생이 되었던 시절 작지만 빈번한 실패와 자잘한 가정사로 인해 나의 자아는 매우 깊은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있었고, 침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학교생활을 겨우겨우 했던 적이 있었다.  매우 벗어나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깊었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이었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년 동안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어느 정도 감정의 동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 내 인생에서 몇 안되게 느껴본 성취감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내면의 깊은 어둠의 감정이 찾아오면 늘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한다. 그런데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그 동굴에 나 스스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위한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무기력감에서 제대로 해방되었다고 느껴질 무렵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고른 것이 피아노였고 실력을 늘려 성취감을 더 느끼고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차곡히 적립되어왔던 피아노에 대한 자격지심 또한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껴버리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무서웠다.

 

 지금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좋지만 특히나 이 2악장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땐 공상적인 느낌이라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원장님에게 상담받는 것 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조금 다르게 설명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원장님을 불러놓고 부드러움을 어떻게 연출할지 모르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이 나와 참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할 무렵 선생님은 나를 피아노 앞에 앉히고 연주해 보라고 하셨다.


"왼손을 아주 작게 치셔야 해요"

" 최대한 오른손을 길게 눌러서 끈적하게 치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팔을 많이 움직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조언들이었다. 너무 답이 없었던 느낌이라 내가 생각보다 막연한 무언가를 해결책으로 원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아직 난 감정적으로 이입하기엔 기술적인 것이 한참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원장님께 상담을 드릴 무렵 기술 1편의 연구를 할 때였고 그때의 연구와 선생님의 조언이 만나서 어떻게 해야 부드럽게 칠 수 있고 그렇게 들리는 건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감정적인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다음 레슨까지 소리가 안정적이 될 때까지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듣고 칠 뿐이었다.

이전 11화 두 줄만 제대로 치자_1 (기술 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