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레슨 날. 2악장 앞부분을 마치자마자 선생님의 반응을 살폈다. 커다란 반응도 아니었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연구한 게 보인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연구한 게 보인다는 말 한마디가 속으로는 그렇게 후련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올해 상반기 최고의 칭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어서더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조언을 얹어주셨다.역시나 손가락의 위치를 바꾼다던지 볼륨을 줄인다던지 하는 기술적인 조언이었다.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 원장님과 선생님 공통적으로 조언을 해주셨던 게 노래를 부르면서 쳐보라는 것이었다. 처음 그 조언을 받았을 때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도 안 된다며 한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원장님까지 그 조언을 해주시니 한 번쯤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울 수 있으니 연습실이나 학원은 당연히 생각도 못했고 집에서 다들 가족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매우 어색하게 첫 줄을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비슷한 음의 두 번째 줄까지 쳤을 땐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나 혼자 민망하고 의식하기 바빴다. 약간의 현타와 웃음까지 연주를 멈출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조금만 더 참고 다음 줄 넘어가 보자.제일 멜로디가 고조되는 셋째 줄. 음이 높아지니 목소리도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음악과 동요되면서 그 동요가 팔에서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건반으로 반영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의 눈썹은 알아서 팔자 모양이 되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고 피아니스트들이 할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도 괜스레 아련해지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서 치라고 하는구나. 왜 글렌 굴드가 그렇게 허밍을 하는지, 임동혁 피아니스트가 또모에서 피아노 수업을 할 때 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지알게 되었다.그랬구나.
한때 이성만이 중요한 요소이며 감정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감정적이 되면 모든 일에 효과적으로 실행하는데에 방해가 될뿐이라고, 감정적인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처럼 취급하던 시절이었다.아마 내 기술 첫 편을 읽으면 더 이 이념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연습에서 느낀 건 모든 기술적인 요소들이 잘 정립이 된 후에 하는 감정적인 연출은 한 음악의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았다.감정적인 게 없으면 기술적인 것의 완성도 없고 기술적인 게 없으면 감정적인 연출도 없다.
밀라노에서 만난 음대생 언니와 맥주 한 잔(2017)
예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음악 전공의 여행자 언니도 그랬고 현재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연주에 몰입하는 게 일상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고.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나는 음악전공생이 아닌 평범한 통계학 전공자였고 다른 내 생활이 있기에 그 기분이 내 일상을 지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상생활에까지 휘둘리게 된다는 건 그 뒤에 수많은 연습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마음대로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걸 이젠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기술과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 콩쿨이 코앞일 때는 조금 일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더 이입해서 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을 거쳐야 하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이 한 음악에 집중하면 할수록 변화하는 나의 감정과 실력이 앞으로 더 기대되기도 하는 아마추어이다. 아마 아마추어라서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