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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딩 Mar 28. 2022

두 줄만 제대로 치자_2 (감정 편)_2

쓰다 보니 길어지네


 대망의 레슨 날. 2악장 앞부분을 마치자마자 선생님의 반응을 살폈다. 커다란 반응도 아니었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연구한 게 보인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연구한 게 보인다는 말 한마디가 속으로는 그렇게 후련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올해 상반기 최고의 칭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어서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조언을 얹어주셨다. 역시나 손가락의 위치를 바꾼다던지 볼륨을 줄인다던지 하는 기술적인 조언이었다.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 원장님과 선생님 공통적으로 조언을 해주셨던 게 노래를 부르면서 쳐보라는 것이었다. 처음 그 조언을 받았을 때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도 안 된다며 한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원장님까지 그 조언을 해주시니 한 번쯤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울 수 있으니 연습실이나 학원은 당연히 생각도 못했고 집에서 다들 가족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매우 어색하게 첫 줄을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비슷한 음의 두 번째 줄까지 쳤을 땐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나 혼자 민망하고 의식하기 바빴다. 약간의 현타와 웃음까지 연주를 멈출만한 요소는 충분했다. 조금만 더 참고 다음 줄 넘어가 보자. 제일 멜로디가 고조되는 셋째 줄. 음이 높아지니 목소리도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음악과 동요되면서 그 동요가 팔에서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건반으로 반영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의 눈썹은 알아서 팔자 모양이 되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고 피아니스트들이 할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도 괜스레 아련해지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서 치라고 하는구나. 왜 글렌 굴드가 그렇게 허밍을 하는지, 임동혁 피아니스트가 또모에서 피아노 수업을 할 때 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그랬구나.

https://youtu.be/5y8daD5J0HE

(이렇게 허밍 하고 싶어도 어차피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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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이성만이 중요한 요소이며 감정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감정적이 되면 모든 일에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감정적인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처럼 취급하던 절이었다.  아마 내 기술 첫 편을 읽으면 더 이 이념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연습에서 느낀 건 모든 기술적인 요소들이 잘 정립이 된 후에 하는 감정적인 연출은 한 음악의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았다. 감정적인 게 없으면 기술적인 것의 완성도 없고 기술적인 게 없으면 감정적인 연출도 없다. 

밀라노에서 만난 음대생 언니와 맥주 한 잔(2017)

 예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음악 전공의 여행자 언니도 그랬고 현재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연주에 몰입하는 게 일상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고.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나는 음악전공생이 아닌 평범한 통계학 전공자였고 다른 내 생활이 있기에 그 기분이 내 일상을 지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상생활에까지 휘둘리게 된다는 건 그 뒤에 수많은 연습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마음대로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걸 이젠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기술과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 콩쿨이 코앞일 때는 조금 일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더 이입해서 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을 거쳐야 하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이 한 음악에 집중하면 할수록 변화하는 나의 감정과 실력이 앞으로 더 기대되기도 하는 아마추어이다. 아마 아마추어라서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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