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딩 Feb 26. 2022

나 이런 걸로도 우네

목적지가 없는 길을 달려 나가는 기분이야

이제 연습을 할 때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수업시간에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된 연주를 선생님께 선보이는 것. 그래서 그런지 수업 전날과 수업 직전에 하는 한 시간 연습이 제일 집중이 잘 되기도 했다.


연습을 끝마치고 선생님께 연주를 선보일 수업시간. 3악장의 피드백이 끝나고 2악장을 연주할 때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을 어필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노을 지는 해변 아래 탱고를 추는 커플을 상상했다.

감정을 잡고 첫 음인 '라'를 눌렀다. 

소리가 너무나 컸다. 두 번째 음계인 '미'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다음의 '시'는 소리가 너무 컸다. 마지막'미'는 다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첫마디부터 삐걱댔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계속해서 소리는 빠졌고 1번 손가락은 계속해서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크게만 소리가 났다. 연주 첫 줄에 석양 속 탱고는 당연히 사라졌다.  오른손의 멜로디는 신경 쓸 틈이 나지 않았다. 겨우 한 장의 연주를 끝냈을 때 선생님은 멈추라고 하셨다.


망했다.

 0.5초의 정적이 느껴졌다. 눈물이 차올랐다. 중학교 입시했을 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것 같은데 고작 이 정도가 다인 건가. 도대체 어떻게 쳐야 부드럽게 들리는 건지. 막막하고 정착지 없는 길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성의 없게 치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당연히 그럴 것 같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저 화나고 답답하고 속상할 뿐이었다. 이미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선생님께 보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연주에 집중하려고 할수록 속상한 마음이 계속 커져 눈물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설명도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다. 한 생각만 났다.


 도대체 어떻게 쳐야 되는 거야.

남은 수업을 어영부영 끝내고 도저히 연습실에 있고 싶지 않아 삼십 분 정도만 손을 풀다 집으로 향했다. 하필 또 이럴 때 다이어트라니.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잠깐이라도 달래 볼까 생각했지만 결국엔 본질에 집중하기로 하고 롯데샌드 세 조각으로 타협했다. 나름 다이어트했다고 그 세 조각의 달달함에 바로 기분이 조금 풀어졌고 그새 현실적으로 문제에 직시할 수 있었다.


며칠 뒤 곰곰이 생각해보고 적어낸 나의 문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1. 전체적으로 어떻게 연주해야 부드러워지는지 아예 잡히지 않는 감

2.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얼마나 이입을 해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잡힘

3. 선천적 낯가림과 경험 부족으로 선생님 앞에서는 더 경직되는 몸

4. 선생님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늘 느낌과 상상력만 말해주시는 느낌


상상력의 최강자 infp가 이런 걱정을 하다니, 처음 배울 땐 나의 선천적 상상력이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경험이 없으면 결국엔 무용지물이다.

이전 09화 어쩌다 보니 수도승 라이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