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악장
일주일 동안 감기에 시달렸더니 힘 빠진 소리가 나는 게 선생님의 귀까지 들렸나 보다. 거기다 피아노(여리게)가 기본 베이스라 힘도 없는 상태에서 지키려니 안 그래도 힘이 없는 소리가 더 매가리가 없게 느껴졌다. 3개의 악장 중에서 제일 악보 보기도 쉽고 이제는 단순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일 만만히 보다가 큰코다친 격이 되어버렸다.
2악장은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게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3개의 악장 중 유일하게 모든 감성을 뿜어낼 수 있는 부분이고 다른 곡들 중에서도 아련함이 가장 부각된 곡이라 1,3악장과의 대비가 뚜렷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1,3악장이 잘 드러나기 위해서는 대비되는 2악장 또한 잘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부드럽게 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가. 어떤 방법으로 쳐도 딱딱하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부드럽게 치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석양 아래 스페인식 탱고를 추는 걸 상상해 보라고 하셨는데, 아마 작곡가가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제목 자체도 '아르헨티나의 춤곡'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드비쉬의 아라베스크를 배운 후로 다시 느껴보는 상상력이라 한껏 기대했지만 잘 반영되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딱딱하다는 피드백만 들리자 과연 그 상상력이 내 손가락에 얼마나 반영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 몸과 손가락은 더 점점 굳어져갔다.
대충 요런 표정 지으면서 쳐봤는데요 그럼 제법 피아니스트 표정 같아 보여요. 표정만 결국 선생님께 아직은 그런 표현이 어색하고 그런 상상력이 건반에 영향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평생 그런 아련함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 일도 없는 사람에게 그걸 표현까지 하라는 건 평범한 이과생이었던 나에겐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과연 우리 동기 중에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너무 감정적이라며 한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너무 소중한 기회인 걸 알았던 동시에 그만큼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오히려 아라베스크 때 이런 표현을 너무 만만히 본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최대한 '석양의 탱고'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아직은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으로 쳐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힐뿐더러 그런 걸 선생님 앞에서 표현해야 한다는 의식감 때문에 내 몸은 뚝딱거리기만 했다. 선생님은 제대로 표현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고 조금씩 고쳐나가자고 하셨다. 오히려 1,3악장보다 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시면서.
힘은 빠지지 않되, 부드럽게 하기 위한 스킬들 몇 가지
석양 속의 탱고 생각하기 + 팔을 조금 편안하게 움직이기 + 손목 반동 많이 이용하기 + 한 옥타브 위로 올라가서 친 후 비교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