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출전'이라는 명백한 목적이 있다 보니 어떤 새해 목표를 정해야 한다던지 하는 마음이 특별하게 들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나타내 미래의 환상 같은 막연한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대회는 5월 중순) 애가 타서 어떤 부분을 더 연습해야 할지만 생각이 났다.
연습량을 늘려야겠다 싶어서 피아노 연습실 대여도 자주 하고 학원도 더 자주 갔다. 약속이 없을 땐 시간제한이 있지만 그랜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현재 학원에서 두 시간, 약속이 있는 날은 피아노 연습실을 대여해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연습을 했다. 다행히도 연습실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연중무휴 24시간인 곳이 많아 퇴근 후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 1월은 아홉 시 통금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때마침 새롭게 다닌 헬스장은 원래 다니던 곳보다 일찍 오픈을 해서 자연스레 '출근 전 헬스 퇴근 후 연습'이라는 루틴이 생겼다. 운동, 일,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면 몸이 너덜너덜해져 열한 시 전이면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원래도 올빼미형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까지의 규칙적인 삶은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선생님 또한 1월까지는 스피드를 내기 직전까지의 원활함까지 가는 게 좋다고 하셔서 자연스레 제일 버벅거리는 3악장을 집중으로 연습을 했다. 두 시간씩 일주일에 5-6일을 연습하니 실력은 당연히 늘 수밖에 없었다.
웃긴 건 실력이 늘었다는 성취의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고 부분을 틀리지 않기 위해 부족한 부분만 계속 찾다 보니 시간이 너무나 금방 갔다는 것이다. 나는 늘 긍정적인 면에서 동기부여를 얻기 때문에 어떤 부정적인 상황이 오면 그 부분을 외면하고 억지로라도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예전에 혼자 피아노를 칠 때도 늘 그런 식이었다. 혼자 치다가 지금 당장 고치기 힘든 부분이 나오면 금방 실증이나 다른 곡을 치곤 했다.(아마 내 이런 버릇이 내 실력 향상에 방해가 된 것 같다.) 옛날과 다르게 이제는 틀려도 괜찮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서인지 안 되는 부분만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쳤는데도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점점 늘어가는 필기
남들과 비슷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적인 사회가 어쩜 그렇게 싫증이 나던지. 지긋지긋한 순위 메김과 점수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는 언제부턴가 나의 부족한 점에서 나오는 승부욕을 외면해버리곤 했다. 실제로도 나의 부족한 면에서 나오는 동기부여보단 실낱같이 찾은 희망적인 요소가 실제 내 성취와 상관없이 높은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했다. 거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나만의 성공의 기준을 만들어야 했고 객관적 1등은 존재하지 않고, 설사 있어도 나에겐 자극점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확고해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이 실제 삶의 만족감과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했다.
예술계와 스포츠계도 비슷하겠지만 조금 다른 점은 그 경쟁이 조금 더 심하고 잔인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당연히 예술계에도 다양한 삶이 있겠지만 확실히 그 1등의 기준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대회'라는 것에 나가기로 한 이상 그 '잔인한 예술계 마인드'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자리 잡혔고 부족한 것에 대한 집착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내 전반적 인생의 방향성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어쩌면 자기기만으로 갈 수 있는 나를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경쟁적인 내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재미있기도 했고 나를 어디까지 더 밀어붙일 수 있나 기대가 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