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미노 Mar 05. 2024

아빠, 사춘기야?

큰아들이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그 방이 비게 되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쓰게 될 수도 있지만 꽤 긴 시간 동안 빈 방으로 남게 될 것이기에 그 방을 용도변경하기로 했다.


큰아들이 사용하던 컴퓨터만 그대로 놓고 책상과 침대, 옷걸이, 수납함 등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하거나 정리했다. 그 물건들이 빠진 자리엔 집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안방에서 사용하던 책상을 가져와 서재를 빙자한 '내방'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결혼 24년 만에 처음으로 내방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와 함께 쓰던 안방도 여유 공간이 생기면서 아내를 위한 공간이 새로 생겼다. 꼬박 1박 2일의 대이동을 거쳐 새롭게 2개의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특히 안방 창문 쪽에 만들어진 아내를 위한 공간은 볼 때마다 뿌듯함에 저절로 쌍긋빵긋 해진다. 


물건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도 오래 걸렸지만 들어온 짐들을 정리하고 쓸고 닦기를 반복하느라 한참을 내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만족한 모습이 되었다고 느껴졌을 때 OTT에 접속해 컴퓨터의 큰 모니터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기존 휴대폰으로 보던 것과는 영화의 맛이 확연하게 달랐다.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 한국영화에 푹 빠져 보고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거실에 나왔다가 내가 안 보이자 아내에게 물었단다.


"아빠는?"

"아빠 방에 들어가 계셔."

"아직도? 방문 닫고 안 나오는 거 보니까 아빠 사춘기 아냐?"


이미 두 아들의 사춘기를 지켜봤기에 둘째 아들이 하는 말이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어느 순간 각자의 방에 처박혀 밥 먹을 때나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마치 자신들의 사춘기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아 보였나 보다. 


그런데 둘째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 한 편에서는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지인에게 "올해 새롭게 태어나느라 작년 거를 다 잊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분이 작년에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 미안함에 농담처럼 한 말이기는 했지만 올해는 기존과 다른 내 모습을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도 한 켠에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만이든 우리나이든 50이 넘었다. 쉰 넘은 나이에 사춘기가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기존에 무겁게 입고 있던 두꺼운 사회적인 시선과 역할에 대한 기대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피하는 시작점에 놓여 있는 한 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청소년처럼 감정의 물결이 질풍노도와 같이 사납게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내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운 한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사춘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들썩거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