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쓰는 사회복지관의 정체성 찾기
복지館 ≠ 복지center... 유남쌩?!
얼마 전 마을회관 입구에 붙여놓은 스마트복지관의 보람판을 새로 달았다. 복지관의 이름을 복지'관'에서 복지'센터'로 고쳐 달기 위해서다. '관(館)'의 영문 표기가 '센터(center)'인데, 다시 말하면 '복지관'이 '복지센터'이고, '복지센터'가 '복지관'인데, 구태여 '스마트복지관'을 '스마트복지센터'로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스마트복지관은 그동안 시설 중심의 서비스 전달 방식에서 벗어나 다방면에서 효율성과 효과성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시범사업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나의 부덕의 소치로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서 그만 지금은 스마트만 남고 복지관은 사라졌다.
2016년 건물 없는 복지관으로 나름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특별자치도 가상복지관 시범사업(일명 스마트복지관)’이 올해부터는 ‘제주스마트복지사업’으로 사업명을 변경하면서 간신히 명맥을 잇게 됐다. 제주도가 시범사업의 혁신성과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의욕적으로 사업 확대를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법적으로 스마트복지관은 복지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복지관은 다른 사회복지관들처럼 하는 일도 기능과 역할도 같고, 운영방식마저도 똑같은데 ‘복지관’이라는 이름만큼은 같이 쓸 수 없다는 게 답답할 노릇이다. 과연 법률에서는 사회복지관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 걸까? 현재의 사회복지관은 무엇인가? 그리고 스마트복지관은 또 다른 정체성의 혼란이었던 것인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은 1983년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사회복지사업법은 26개의 개별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회복지관은 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 등 여타의 사회복지시설처럼 개별법에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상위법 자체에 설치 근거를 갖고 있는 유일한 사회복지시설이다. 쉽게 말하면, 사회복지관만을 위한 개별법은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회복지관 설치에 관한 규정은 1989년에 마련된 동법 시행규칙에나 가야 알 수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 제23조에 따르면 ‘사회복지관에는 강당 또는 회의실과 방음설비를 갖춘 상담실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바로 이 조항에 의해 스마트복지관은 복지관이 될 수 없다. 또한 보건복지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사회복지관 운영 관련 업무처리 안내]에는 법에 의한 사회복지관 이외에는 “사회복지관”, “복지관”, “복지회관”이라는 명칭을 임의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스마트복지관은 복지센터로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복지관은 안 되고 복지센터는 되는 법의 잣대가 참 우습긴 하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 건강가정지원센터, 주민센터, 자원봉사센터 등과 같은 특화된 서비스 기관들이 등장하면서 사회복지관의 위상은 훼손되고, 종합사회복지기능들은 할양되어왔다. 또한 ‘종합’이 함유하는 통합의 명분조차도 공공부문의 ‘통합 사례관리’ 기능 확장에 따라 점차 위축되고 있다. 최근에는 바우처 사회서비스 생산에의 참여로 인해 사회복지관에 대한 공적 보조의 정당성 명분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정리하자면, 과거(지금까지도) 사회복지관 이름 앞에 ‘종합’이라는 말을 붙여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책임을 사회복지관에 떠넘겨 온 정부가 뒤늦게 사회복지서비스를 대상별, 유형별 급여체계로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볼 수 있다. 혼란은 정부로부터 야기됐으나 그 혼란은 고스란히 사회복지관이 겪고 있는 샘이다. 마치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형국이다.
사회복지관은 민간 복지기관인가?
정부 사업의 대행기관인가?
나 또한 스마트복지관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홀로 사회복지관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중에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발견했다. 사회복지관은 민간의 자발적인 복지기관인가? 아니면 정부사업을 대신하는 대행기관인가?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들었을 때 다소 도발적인 문제제기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제대로 솔직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관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역사에서 연속선상에 놓인 서로 다른 사회복지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관은 역사적으로 인보관(settlement house)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1884년 영국의 토인비홀(Toynbee hall)과 1889년 미국의 헐하우스(Hull house)는 모두 지역사회의 빈곤과 고용, 주거환경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민간차원의 사회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1906년 선교사 메리 놀즈에 의해 세워진 인보관과 1921년 역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태화여자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관이라고 배웠다. 이후 1970년대까지는 민간 종교단체와 사립대학교를 중심으로 사회복지관이 설립되면서 그 수가 점차 확대되어 갔다.
이렇게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건립되고 운영되던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관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복지관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법제화되고, 1988년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 사업을 벌이면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사회복지관 설치를 의무화하면서 당시 24개소에 불과했던 사회복지관은 1990년대에 급속하게 증가하게 됐다. 그 결과 1990년에 58개소에 불과하던 것이 10년 후에는 324개소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465개소의 사회복지관이 운영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은 민간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점점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처럼 사회복지관의 정체성을 논할 때는 19세기 민간차원의 사회복지운동으로서 인보관과 2000년대 이후 제도화된 조직으로서 존재하는 사회복지관을 같은 연속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민간에 의해 설립되고 지역사회 실천모델로서의 사회복지관과 정부 법률에 의해 설치되고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사회복지관은 완전히 다른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90% 이상은 1980년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법제화된 이후에 설치된 기관이다. 그리고 사회복지관의 95% 이상이 민간에 의해 위탁 운영되고 있고 우리는 그 사회복지관을 민간 사회복지전달체계의 중심이라고 일컫는다. 공공의 서비스인 사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 법률에 의해 설치 근거를 갖고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정부의 운영지침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복지관을 민간기관으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공공의 서비스를 민간이 위탁받아 운영한다고 해서 민간 서비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시내버스를 민간 운수회사가 위탁받아 운영한다고 해서 누구도 시내버스를 공공재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은 누가 봐도 공공의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체계로 인식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복지관의 정체성 찾기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출생의 비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것은 비극이다.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도 이보다 더 비극적이진 않겠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지금껏 정부는 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에서 항상 민간 사회복지기관을 배제해 왔다. 그러면서 정책이 실패하면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항상 민관협력을 강조하는 것뿐이었다. 사회복지정책이 실패하는 원인은 민관협력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사회복지를 민과 관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복지관도 마찬가지다. 민간복지기관으로 생각한다면 정부의 눈치를 그만 살피고 자율적으로 사회복지를 실천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달체계 개편에 편승하면 그만이다. 이제 지긋지긋한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그만할 때도 됐다. 앞으로는 더 이상 공공에서도 민간에서도 정체성이라는 이유로 복지관을 복지센터라고 말해야만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복지관 #민관협력 #커뮤니티케어
... 영화에서 월요일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었지... 알쓸복잡...
<참고문헌>
*김영종, 2015, 한국 사회복지관의 제도적 정체성 규명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양난주, 2015, 사회복지관의 역할 정체성을 찾아서,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