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스마트복지는 시기상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여기까지가 한계......
얼마 전 이국종 아주대 의대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가 국정감사장에 나와 진술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매일 환자 돌보기에도 바쁠 현직 의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수술실이 아닌 국정감사장까지 나왔는지 무심코 호기심에 틀어봤다. 그가 국정감사장에 나온 이유는 다름 아닌 경기도의 중증외상센터와 닥터헬기 운영, 그리고 수술실 CCTV 설치 등과 관련한 참고인 진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질문공세에 그가 답변한 내용들은 내 귀를 의심할 만큼 놀라웠다. “요즘에는 여기까지가 한국 사회에서 할 수 있는 한계라고 많이 생각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일이라도 당장 닥터헬기는 고사하고 외상센터가 문을 닫아야 할 이유를 대 보라고 하면 30여 가지를 쏟아낼 수 있다.”, “그걸 간신히 정책적 관심에 의지해서 뚫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난항이 예상된다.”...... 영상 속 이국종 교수는 힘없이 좌절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국종 교수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나라 선원들을 구하는 과정(일명 ‘아덴만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피랍선적 선장을 극적으로 살려내면서 국민 영웅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더군다나 2017년에는 JSA를 통해 귀순하려다 북한군으로부터 총상을 입은 북한병사를 또다시 기적적으로 살려내서 우리나라 중증외상 분야의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의사다. 그랬던 그가 최근 경기도의 국정감사장에 나와 중증외상센터와 닥터헬기 운영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다시 한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것이다.
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우리나라 응급구조시스템은 열악하기만 했다. 병원에 닥터헬기나 소방헬기가 있어도 함께 비행할 간호사가 부족해서 관련된 의료진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전국 곳곳에 헬기가 임시로 이착륙할 수 있는 인계점이 있어도 조명시설이 없는 곳이 많아서 야간에는 아예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이마저도 헬기소음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이착륙장 사용이 거부되고 있는 곳이 수두룩했다.
뜻밖에 닥터헬기가 세간의 이목이 쏟아지자 정부와 지자체는 부랴부랴 지원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우선 경기도는 전국에서 최초로 24시간 출동이 가능한 닥터헬기를 도입했다. 그리고 닥터헬기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기존의 588개에 불과하던 인계점을 교육청과 협력하여 학교 운동장 1,755개를 포함하여 총 2,420개의 인계점을 확보했다. 정부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간호 인력을 더 충원하라며 국비 22억 원을 통 크게 지원했다. 이때까지 만해도 이국종 교수의 고민은 거의 해결되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이번 국감장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이러한 분위기와는 달리 오히려 예전보다 더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늘 그랬었지만 축 처진 어깨와 졸린 듯 반쯤 감긴 눈매, 힘없이 나지막히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무언가 일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외상외과 분야의 실력있는 권위자이면서 전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한 외과의사가 공개석상에 나와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한 이교수의 모습에 질문을 하던 국회의원들도 여야(與野) 할 것 없이 모두 안타까워했다. 나 또한 그 모습이 정말 안쓰러워 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렇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의아했다. 마침 이에 대한 이교수의 대답이 나오긴 했는데 그 내용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에서 지원한 예산으로 중증외상센터에 간호사 60명을 증원할 수 있는데 병원에서는 37명만 증원하고 나머지 예산은 기존 일반 간호사들의 월급을 대체하는 데 상당 부분을 썼다고 했다. 또한 그동안 헬기장 주변 지역주민들의 소음피해로 인한 민원이 끊이질 않아서 헬기 이착륙이 불가능해 난항을 겪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닥터헬기 사업이 알고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가끔 들어오는 민원을 핑계로 병원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와 언론, 정부에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일선 의료기관에서 중증외상환자를 살리는 핵심 가치를 이행하지 못했다. 센터장으로서 중간에서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는데 뼈아프게 생각한다.”며 자책하기까지 했다.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제는 예산부족이 아니라 병원조직 내부에 있었다. 어느 메디컬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영상이 끝난 뒤 나는 천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화면 속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아 있었고, 중증외상센터의 상황이 지금의 스마트복지관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3년 전 제주도에서 야심차게 시작했던 가상복지관 정책시범사업(일명 ‘스마트복지관’)이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같은 형태의 사업은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육지에서는 이미 같은 사업을 벤치마킹해서 운영 중인 곳도 있고, 앞으로 스마트복지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정책을 시작한 제주도에서는 이제와 사업을 접고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제주도의 이러한 결정에 사업을 함께 해 온 지역주민들은 모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허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스마트복지관의 이러한 결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걸 간신히 지역주민들과 전국에서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정책적 관심에 의지해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나도 요즘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이국종 교수의 영상을 보고 많이 공감했던 이유는 스마트복지관의 문제 또한 닥터헬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도 아닌 내가 속한 사회복지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복지관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주민들과 관계된 공무원들은 오히려 격려를 해주는데 반해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나 기관장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건물이 없으면 복지관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고 ‘복지관’이라는 사업명칭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시범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다른 복지시설들이 다 받는 시설평가를 받지 않으니 전문성이 떨어지고 너무 편하게만 일을 하려고 한다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도 전례가 없는 사업에 대한 생경함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의 수위는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범사업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법을 만들어야 할) 도의회를 중심으로 사업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업연장을 문제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사회복지관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사업을 저지하고자 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지난 3년 동안 일주일이 멀다하고 육지에서 스마트복지관 정책을 벤치마킹 하겠다며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스마트복지는 시기상조다?!
그동안 공무원도 아닌 내가 제주도정의 정책사업을 (공무원들을 대신해서) 어떻게든 성공시켜보려고 보건복지부를 찾아가 정책설명을 하고, 의원도 아닌 내가 직접 조례안을 만들어 보려 아등바등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주제 넘는 일이 돼버렸다. 그 정도쯤이야 (자칭 전문가인 민간)사회복지사로서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고 애써 자기합리화를 시켜 본다. 그런데 그것보다 나를 가장 허탈하게 했던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의 말이었다. “사업의 취지와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또는 제주사회는) 시기상조다.” 나는 여기서 ‘시기상조’라는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처럼 스마트복지관은 법적근거도 미비하고 주민들의 인식도 많이 부족하여 아직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시범사업이란 것은 원래 시기상조인 정책이 앞으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먼저 시험삼아 추진해 보는 것이 아니던가. 지금의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무 법적근거도 없는) 커뮤니티케어 정책처럼 말이다. 그리고 법적근거라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인 시범사업 같은 경우에는 그 성과를 평가하고 미비한 점을 개선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왠지 스마트복지관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말에는 무언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본래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기에 아직 때가 이르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어떠한 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실행은 나중으로 미루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미루고 싶다’라고 느끼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일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 일이 정말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주변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는 기다려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괜히 섣불리 밀어붙였다가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그 실패의 충격이 재기의 기회마저 앗아갈 수 있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옳다. 문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그 계획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가끔 전자의 흉내를 내며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시기상조라는 말을 듣기에 더더욱 착잡한 심정이다. 나도 사실은 스마트복지관이 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제주도행을 택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멋모르고 시작한 사업이지만 취지에 맞게 조금씩 일을 하면서 지금은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스마트복지관은 새로운 전달체계도 혁신사업도 아니다. 스마트복지관은 그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회복지관에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삶을 살면서 이제야 때늦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앞으로 지속할 수 없게 됐으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연유로 나에게 있어 스마트복지관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 만시지탄(晩時之歎):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
... 스마트복지관(2016-2019) 알쓸복잡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2018>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요약하였습니다.
친구야 너는 아니?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았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 이혜인 수녀의 詩 <친구야 너는 아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