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가 과학이 될 필요가 있을까?
# prologue.
나는 원래 전공이 사회복지가 아니라 통계다. 대학시절 비싼 등록금이 아까워 하나라도 더 배워 보겠다고 전공을 추가로 선택한 게 사회복지다. 20년 전 그 시절, 복수전공 신청서를 들고 무작정 학과장실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께서는 “사회복지? 돈도 안 되는 걸 뭐하려고 하느냐? 다른 동기들처럼 경영학과에 가라!”며 나를 극구 말리셨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친구들과 달리 나만 혼자서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아 스스로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신청서를 사회복지학과에 제출하고 말았다. 남학생들이 득실대는 공대에서만 살다가 어여쁜 여학생들도 많은 인문대학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공대 실습실에서 하루종일 미적분(수학)만 풀던 내게 사회복지학과는 마음(두뇌)의 안식처가 됐다. 그런데 얼마 뒤에 사회복지학과에서 사귄 친구 놈한테 들어서 안 사실인데 내가 처음 수업을 들으러 왔을 때 강의실이 한 때 술렁였다고 했다. 이유인 즉,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통계(조사방법론)는 필수과목이자 어렵고 까다로운 강의 중 하나였는데, 떡하니 통계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영 불만이었나 보다. 담당 교수님께서도 나를 따로 불러 위아래로 훑어보시곤 나의 숨은 의도(?)가 뭔지 물어 볼 정도였으니 그 친구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회복지학에서 통계가 전공필수과목이라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에 웬 통계?! 나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20년을 살았다.
사회복지는 과학인가?
나는 그렇게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됐다. 통계를 전공한 사회복지사라는 독특한 이력 덕분에 (또 어쩌다) 통계와 관련된 책을 내기도 했고, 그게 또 인연이 돼서 제주도에 와서 운이 좋게도 대학(사회복지학과)에서 통계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는 개강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면 처음 마주한 학생들 얼굴에는 벌써부터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짐작컨대 워낙에 문송한(‘문과라서 죄송한’ 뜻의 신조어) 사람들인지라 ‘통계는 곧 수학’일 것이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는 것일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면 사회복지사가 굳이 통계까지 배워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0년 전 라떼(?)나 지금이나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통계는 필수과목인 것도 변함이 없지만, 어렵고 피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여전하다. 그래서 나는 얼어붙은 분위기도 바꿔볼 겸 기질을 발휘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사회복지는 과학인가?” 오늘 처음 만난 교수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학생들은 잠깐 망설이다가도 이내 “네! 사회복지는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감 있게 대답한다. 그런데 내가 다시 “왜 사회복지는 과학이지?”라고 이유를 되물으면 학생들은 우물쭈물하며 얼버무리기 일쑤다. 처음에 그나마 긴장하던 표정들이 이제는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나 보다.
나는 그저 학생들에게 사회복지에서 통계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뜻의 신조어)처럼 이미 속으로는 "사회복지는 과학!"이라고 답을 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무심코 던진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자충수(自充手)에 빠졌다. (학생들에게는 좀 부끄럽지만) 나도 솔직히 처음에는 사회복지가 왜 과학인지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사회복지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니까 당연히 과학이겠거니 하고 살았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교수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할 차례다.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또한 과학이기도 하니까.
과학이란 무엇인가?
사회복지가 과학인가를 알아보기에 앞서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겠다. 과학(科學), 영어로 사이언스(science)란 말은 중세 라틴어 ‘스키엔티아(scientia)’에서 유래됐다. 스키엔티아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지식은 누구나 배우거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계급과 신분, 성별에 따라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거 지식 불평등의 역사는 현대의 과학에까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옛날처럼 계급과 신분의 차이는 없어졌지만 오늘날 과학은 오로지 ‘과학자’만이 지니는 특별한 종류의 지식이 됐다. 이유는 과학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science)이라고 하면 보통 자연과학을 의미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수학적이고 복잡하고 어렵다. 아무나 로켓을 쏴서 달나라로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부를 (아주)열심히 한 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은 자연과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도 있다.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자연현상이지만 거기에는 사회현상도 포함된다. 사회과학이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분야라고는 하지만 자연과학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과학이다. 과학의 기본적인 목적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제시하고, 현상을 구체화해서 변수 간의 관계를 통제(control)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이다. 그나마 자연현상은 사회현상에 비해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일반화가 용이하지만 사회현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과학은 연구자의 관점(세계관)에 따라 사회현상을 밝힐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또 사회현상은 매우 가변적이고 통제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까지만 봐도 사회과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회과학이란 용어가 등장한 지는 고작 1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는 사회학이나 인문과학 등으로 불리다가 1904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인간 공동체에 관한 과학을 사회과학으로 부르면서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사회학이 갑자기 사회과학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사회현상을 연구하는데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을 적용한 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은 연구절차가 체계적이고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어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객관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의 연구자들은 인간과 환경 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사회복지에서도 이러한 과학적 방법의 도입 여부는 중요한 문제였다. 사회복지는 원래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클라이언트를 돕고 보호하는데 필요한 이념과 가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다른 전문분야에 비해 좀 더 배타적인 윤리의식과 이념 등에 집착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몰가치적이고 객관성을 강조하는 과학적 지식을 사회복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발전하면서 사회복지가 전문직으로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복지사의 활동에 책임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책임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서비스를 실행하고 검증해야만 했다. 서비스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연결을 사회복지사 개인의 가치판단이나 상식적 차원에 맡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도구로서 과학적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조사와 통계는 사회복지의 이념과 동기를 경험적으로 연결시켜 사회복지가 전문직의 책임성을 제고하는데 중요한 가교(架橋)역할을 해왔다.
사회복지가 과학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사회복지는 과학이 맞는가? 먼 길을 돌아 온 느낌이지만 이제 이 질문의 흩어진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지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왜 통계를 배워야하는지 학생들에게 할 말도 생겼다. 맞다. 사회복지는 과학이다. 이것을 나도 나름 과학적 방법이라는 걸 써서 이 명제를 증명해 보겠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삼단논법(三段論法)으로 말이다. 「사회복지는 사회과학에 속한다. 사회과학은 과학의 한 분야다. 그러므로 사회복지는 과학이다.」 유레카! 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증명인가!....... (잠시 후) 그런데 왠지 기쁘지가 않다. 사회복지사로 살아 온 지 15년 만에 마주한 희대(?)의 난제(難題)를 풀었는데도 뭔가 앙금이 남은 듯 뒤끝이 개운하지가 않다. 왜일까?
나는 사실 사회복지가 과학인지 아닌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단지 내가 통계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로 내 선택의 정당성을 찾고 싶은 자기방어(self-defense)일 뿐이었다. 그것보다 정말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회복지가 굳이 과학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학문으로서 사회복지가 일반적 지식 확대를 위해 과학적 방법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쯤은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복지는 사회과학 중에서도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응용사회과학(applied sociology)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사회복지사가 직접 활동에 필요한 세세한 지식들은 사전에 예상해서 개발되기가 힘들고, 미리 유형화되기도 어렵다. 사회복지가 인간과 환경을 대하는 휴먼서비스의 특성상 개별화된 사례 활동에 적합한 실천 지식은 그때마다 현장에서 직접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크다. 즉, 사회복지의 전문성은 객관적인 지식체계를 갖추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복지사 개개인의 이타적인 동기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객관적인 가치판단(―칸트의 ‘정언명령’쯤으로 해두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에 과학적 이론지식이 더해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따로 없겠다.
지금까지 사회복지는 과학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과학(적 방법)만이 전문성을 담보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선생님 다음으로 석사출신이 많은 직업이 사회복지사라고 한다.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고학력의 사회복지사가 전문성이 높아 보일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복지사는 학부과정에서 교양과목을 듣지 않고도 어디서건 필수과목만 들으면 얼마든지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 석사출신 사회복지사가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대학원은 그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속성과정일 뿐이다. 개중에는 조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분들도 꾀 많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학력만)고학력이신 분들이 꼭 과학적 방법(조사나 통계)을 맹신하고 전문성의 척도로 삼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모든 현실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학은 몰가치적이고 객관적이다. 반면 사회복지는 가치중심적이고 주관적이다. 과연 사회복지가 과학이 된다고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또 잃는 것은 무엇일지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과학의 방법은 만능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과학은 명제의 참, 거짓을 따지는 데 유용하지만 가치를 판단하는 데 종종 무용지물이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능력 밖이다. 우선 ‘아름다움’부터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학과 인문학이 알아낸 대부분의 가치는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다.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사랑’을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더구나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을 믿는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다. - 물리학자 김상욱
사회복지도 그렇다.
-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알쓸복잡
*참고문헌
송진영(2018), 사회복지자료분석, 지식공동체
김영종(2008), 사회복지조사방법론,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