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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Jun 30. 2019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사회복지시설 평가의 추억

평균 87.6점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노인복지관, 사회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 803개소의 3년간 운영 실적을 평가하고 보도 자료를 통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기사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평균 87.6점’...... 모르겠다. 복지부장관은 국민들에게 우리나라 사회복지 점수가 100점 만점에 평균 90점 가까이 나왔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런지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평균 몇 점이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조금 낯선 기분이 든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의 수준이 그만큼 높이 평가되었다는 것에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기쁜 일이긴 하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이 다니는 복지관의 평가점수가 ‘평균 90점(A등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듣고 사회복지사들은 과연 얼마나 기뻐할 수 있을지 자꾸만 의문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회복지는 성적순이 아니자나요!

  올해는 사회복지 시설평가가 도입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3년을 주기로 시행되는 사회복지 시설평가는 ‘시설운영의 합법성과 투명성 제고’, ‘효율성 향상’, ‘이용자의 인권 보호’가 목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평가의 대상인 사회복지현장에서는 아직까지도 ‘평가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가를 통해서 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의 물리적 환경, 조직운영이나 인력관리와 같은 시설체계가 법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재정 지원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그치고 있어 평가의 원래 목적과 괴리가 있다는 반문인 듯하다. 이러한 사회복지현장에서의 꾸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평가제도는 큰 변화가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피-평가자의 신분이면서 또한 어쩔 수 없는 ‘을’의 처지라 지금까지 좋던 싫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목적은 불분명하고 평가의 당위성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억지로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사회복지사들의 현실은 그래서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사의 삶은 홀수 년(1·3·5·7년)이 고비라던데 3년을 주기로 시행되는 시설평가를 전후로 해서 사회복지사들의 이직이 잦은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싶다.


  제주도에 내려온 이후로는 잠시 잊고 살았었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도 시설평가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사회복지시설평가는 사회복지사에게 일종의 시험과도 같은 것이다. 평가지표라고 하는 시험지에 답안(사실 기준만 있지 정답은 없다)을 적어 내면 영역별 배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나중에 ‘A’, ‘B’, ‘C’, ‘D’가 적힌 성적표가 나온다. 마치 학창시절 학력고사 시험처럼 말이다. 평가에서 1등을 한 사회복지시설은 상(인센티브)을 받기도 하고, 어쩌다 간혹 낙제점(‘F’)을 받은 시설들이 있기도 한데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평가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지표의 타당성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수를 매겨 사회복지사를 서열화하고 정부에서 나서서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평가를 준비하던 그날을 추억해 본다. 시설평가 일정은 거의 1년 전 쯤에 미리 발표되는데 그 때부터 이미 사회복지사들은 본격적으로 평가준비체제에 돌입한다. 평가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5-6월쯤 자체평가를 시작으로 7월쯤에는 현장평가, 9월쯤에는 무작위로 확인평가까지 예정되어 있어서 정말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시설평가가 있는 해는 거의 일 년 내내 평가를 준비하고 또 평가를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안 그래도 바쁘다는 말을 인사치레로 하는 사람들인데 수 개월간 진행되는 빡빡한 평가일정은 사회복지사들의 숨통을 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싫다고 안 할 수도 없고 몇 달만 바짝 고생하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그냥 참고 하는 거다. 이맘때쯤 많이 볼 수 있는 카톡의 상태메시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하니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평가기간이 3년씩이나 되다 보니 챙겨 봐야할 서류가 엄청나게 많다. 더군다나 평가지표에 따라 서류들을 이것저것 살피다보면 (자신의 기억으로는) 예전에 분명히 작성해서 결재까지 받았던 보고서인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유령(?)서류들이 발견된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자책하거나 떠나버린 옛 동료를 탓해봤자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정된 야근뿐이다. 사회복지 평가의 역사도 역시 밤(?)에 이루어지나 보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새로운 물을 다시 채울 수는 있다. 희망을 갖고 처음부터 아예 없었거나 원래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그저 그런 서류들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그렇게 두어 달 동안의 밤샘 작업으로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평가준비를 끝낸다. 매번 평가준비를 마칠 때마다 ‘다음부턴 평소에 잘하자!’고 다짐해보지만 올해도 다시 그 말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드디어 D-day 아침이 밝았다. 출근길 복지관 입구에서부터 떨어진 휴지조각은 없는지 한 번 더 꼼꼼히 살핀다. 존엄(?)하신 평가위원님들이 평가를 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평가서류들을 순서대로 배열해 둔다. 편철된 서류뭉치에 포스트잇으로 표식을 달아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용자 인터뷰를 대비해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용자분도 미리 섭외해 대기시킨다. 몇 번에 걸친 리허설도 했으니 걱정이 없다. 이제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평가위원들의 커피가 식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허무하게도 3년의 평가가 끝났다.


  평가가 끝나면 무언가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상처뿐인 영광만 남은 듯하다. 꺼내놓은 서류들을 서고에 정리하고 다시 사회복지사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몇 달 후 기다리던 평가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최우수(A등급)’이다. 최고 점수를 받았는데도 별로 기쁘지가 않다. B등급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 큼지막하게 "사회복지시설평가 2회 연속 최우수(A등급)기관 선정!"이라고 써서 복지관의 가장 높은 곳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 알쓸복잡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은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드 브레히트(1898~1956, 독일 시인)


#참고1.

<2018년 사회복지시설평가 결과 보도자료>

- 평가대상 803개 시설 중 A등급 583개소 (72.6%), F등급 61개소(7.6%)

- A등급 비율 사회복지관 85.3%, 노인복지관 69.5%


#참고2.

<2015년 사회복지시설평가 설문조사결과>

-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평가제도가 필요한가? 그렇다 46.9%, 보통이다 25.6%

- 평가지표 내용이 서비스 질 평가가 타당한가? 부정적 73.1%, 보통 20.9%, 긍정적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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