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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Oct 05.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회복지

6번째 퇴사,  결국 나는 사회복지사인가?

  제주도에 내려와 산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제주도로 오기 바로 직전, 그러니까 내가 사회복지사로 밥벌이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던 해에 나는 홀연히 사회복지계를 떠나기로 결심했었다. 직업을 그만두는 이유야 어디 한 두가지만 있겠냐마는 오랜시간 몸 담았던 일을 그만둘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지난 10년의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딱히 남아있는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나름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 온 시간이었는데 어떠한 보람이나 자부심보다 약자의 인내와 가식으로 얼룩져 버린 세월 앞에서 공허함과 자괴감만 남았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앞으로 10년을 지금처럼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 불안함에 던진 질문에 나는 대답해야 했다.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지난 10년은 단지 정치인이나 윗사람과 같은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사회복지를 했다. 더군다나 그걸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한다는 양(羊)의 탈을 쓰고 말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더이상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건 누구의 탓도 내 탓도 아니다.


  그리고 얼마뒤 나는 제주도로 내려왔다. 제주도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유는 이것저것 다양하겠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관광의 이유가 아니라면 제주도는 딱히 특별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제주도에 내려와 살다보니 나처럼 타지에서 살다 제주도로 이사를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럴듯한 사연들도 많았다. 은퇴 후 남은 여생을 즐기려고 온 사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내려 온 사람, 복잡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속세를 떠나 온 사람, 공무원이나 큰 회사에 다니다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본의아니게 등떠밀려 온 사람...... 그리고 요즘에는 한달살이나 일년살이처럼 휴식이나 취미생활을 좀 길게 즐기려고 온 사람들도 많아졌다. 반면에 좀 서글픈 사연들도 좀 있는 것 같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직장을 잃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러 훌쩍 떠나 온 사람,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 나름 멀리 도망쳐 온 사람, 몸이 아파 요양하러 온 사람.......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제주도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고 또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힐링의 섬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 곳에 내가 5년도 넘게 살고 있다.


  내가 이곳 제주도에 온 이유는 다름아닌 사회복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사회복지를 하지 않을 것처럼 모든 걸 내평개치고 뛰쳐나왔는데 또다시 사회복지라니 정말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복지 사업을 해야한다는 제안에 내 얇은 귀가 솔깃했었나 보다. 그걸 또 모든 이들의 로망인 환상의 섬 제주도에서 한다고 하니 순간의 민망함을 감수하고서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난 제주도를 놀러온 게 아니다. 관광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단지 일을 위해 사는 제주도 생활은 다른 여느 곳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사람 사는 건 어딜가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가슴이 벅차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니 이정표 따위는 없고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는 길이 그게 곧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니까 어깨를 짖누르는 책임감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계약한 사업기간이 끝나버렸다. 나는 다시 선택해야 했다.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계속 해야 할 이유는 많았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도 산적해 있었고, 머리 속에만 있고 시도해보지 못한 일들도 수두룩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일이 재미도 있었고, 애정도 있어서 5년이고 10년이고 장기적인 비전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는 걸 만류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제주도에서 이 사업이 시작할 때부터 집요하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복지 사업처럼 좋은 일은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둘 보다는 셋이 더 좋은데 무슨 연유로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는 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마나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 때문에 3년을 버틸 수 있었지만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떠나는 나의 뒷모습이 어땠는 지는 나는 보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분명 떠나야 할 때였다. 지금도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년쯤 백수로 살았다.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가고,  해본 낚시도 하고, 일을  때는 새벽에만 쓰던 글을 낮에도 마음껏 쓰면서 한량처럼  지냈다. 때마침 찾아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복잡한 이해관계를 떠나 나만의 시간을 보낼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작은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만했다. 사회복지사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오해를  만큼 공무원처럼 일하는 직업이어서 공공기관에서의 업무는 생각보다 적응하기가 쉬웠다. 가끔 이해가 가지 않거나 빈정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이에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싶어 그냥  참고 다녔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뒤늦게 나마 찾게 되서 다행이랄까. 하루하루 마음을 비우고 일상에서 수도자의 마음으로 살았다. 펜을 놓은지도 1년이 다되어 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진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도 아닌데 자아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춘기 시절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것인가?' 두번째 버전(version)이랄까. 하루하루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 왠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어색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어찌 하고 싶은 일만하고 살겠나. 하기 싫고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던 일도 막상 하다보면 그냥저냥 먹고살만하니까 그일을 계속 하기도 한다. 결국 천직이란 시간이 결정해준다. 지금에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맹목적인 삶의 의지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사회에서는 나같은 사람보다는 한 직장에서 오래동안 진득하게 버티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결과만 놓고 봐도 그건 엄연한 현실이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번뿐인 인생, 지나가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게 인생인데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것보다 나자신과 또 더 나아가서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사는게 더 기쁜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이 세상에 흔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사회복지 일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지사의 일이라는게 버겁지 않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요즘에는 어렵게 들어간 공무원도 그만두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사회복지사라고 별반 다를게 없다. 지금도 그런 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때는 사회복지사는 이직률이 높은 직업에 속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보니 감정노동이 어느 직종보다도 심한 일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공무원과는 다르게 나름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이라고  대학시절 전공과목 시간에 배운 듯해서 그동안 나도 나름 사명감을 갖고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10년을 넘게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나는 바로 그 사회정의인가 뭔가하는 것 때문에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남들은 다 잘만 다니는 직장을 왜 나만 자꾸 현실부적응자처럼 사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의와 낡은 초심에 얽매여서 말이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 직장을 옮기려고 해도 받아주기 부담스러운 나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데도 나는 또 다시 사회복지사의 신분으로 사는 게 망설여진다. 제주도에 오기 전 나의 결심이 자꾸 떠올라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역시 대한민국 사회복지는 안되는 건가? 아니면 나같은 인간은 사회복지사로 사는게 맞지 않은 건가? 괜한 국가와 자신을 번갈아 탓해가며 나는 오랜시간 스스로를 괴롭혀 왔었다. 그래서 또 다시 사회복지사로 사는 것이 두렵고 망설여지는 이유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사회복지사 일을 계속 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 같다. 어쨋든 같은 사회복지사라면 절대로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사는 건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초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싶다. 막상 조직의 구성원이 되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모두 코 앞에 닥친 문제들에 연연하게 돼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맡은 업무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경력을 쌓고, 때가 되면 승진을 하고 등등. 이외의 다른 문제들은 일반적인 관심사에 집어넣거나 아예 그 속에서 와해시켜 버린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회복지사가 형편이 어렵다는 건 옛날 얘기다. 급여나 처우도 이제는 거의 공무원 수준과 비슷해서 어렵게 공부해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사회복지사가  훨씬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에는 사회복지사가 외부에서 볼 때나 스스로 내적으로 느끼기에나, 썩 대단하지는 않아도 나름 보장된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그 지위를 딱히 부끄러워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회가 사회복지사를 '자원봉사자'라고 부르며 폄훼하거나 살짝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정작 본인들은 딱히 게의치 않는 이유가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고 본다.


   내가 다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게 될 지는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머리 속으로만 되내던 자기 독백을 글로 옮겨 써보는게 얼마만에 일인가 싶다.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1년만에 다시 백수가 된 지금의 난 행복하다. 그렇다고해서 지금의 이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야 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조직생활이라는 구속된 삶을 살 때는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나면 얼마가지 않아 다시 스스로를 구속하는 조직으로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게 현대인들의 자가당착인 삶의 모습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돈은 수단에 불과한데 돈이 사는 목적이 됐다. 일단 살아야 돈도 벌 수 있지만,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목적이 전도된 삶을 살아간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른 삶을 살기란 쉽지가 않다.  쿨하게 다시 직장을 그만뒀지만 몇일 지나지 않아서 나는 또 걱정이다. 이제 나는 또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배고픈 철학적 고민을 한다는 건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겠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 자신의 능력과 경력, 성격, 인간성 등등 이것저것 따져봐도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다시 사회복지 일을 하는 것 뿐이다. 60세가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다면, 이제 막 전반전이 끝난 셈이다. 지금은 하프타임 중이라 생각하고 남은 후반전의 삶을 그려본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글 쓰는 딜레탕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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