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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우영 Mar 10. 2023

너, 생존에 문제 있니?

불안이 깨어나는 순간



  새벽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7일째가 되던 날 밤, 나는 술에 취해 고통 없이 잠들었다. 불면이 드디어 끝나는구나, 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오늘에서야 그 순간이 알코올 한정 특전이었음을 깨달았다. 일찍 잘 수 있다고 믿고 누웠던 시간부터 지금까지 두근거림이 지속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입맞춤하기 전까지의 두근거림은 10초도 안 되는데, 사랑 없는 두근거림을 1시간째 겪자니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건넨다.


너, 지금 생존에 위협을 느끼니?



  불안감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났던 2018년의 어느 날, 나는 생존에 위협을 느꼈다. 지하철을 타고 지인을 만나러 갔는데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온몸이 답답해졌다. 보이지 않는 공기가 동서남북 방향으로 거대한 거인이 되어 다가와 압도됨을 느꼈다. 숨을 쉴 수 없는 순간이 왔고, 다음 역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도망쳤더니 그제야 숨이 몰아 쉬어졌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그 짧은 순간은 이내 공포로 다가왔고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시작됐다. 공황장애의 시작이었다.


  공황 증상은 회사에서도 어김없이 발현됐다. 당시에는 신입임에도 완벽하고 빠르게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입사 전 겪어 왔던 수많은 상황들이 회사에서만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압박감과 강박감은 철저하게 무너졌고, 나는 회사에서 미친년이 되었다.


  일하는 중간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화장실로 도망가는 일이 반복됐다. 화장실에 가서도 안정이 되지 않자, 고통의 시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죄 없는 왼쪽 손목에 눈을 돌렸다. 손톱으로 손목을 꾹꾹 누르고, 이빨로 손목을 깨물기까지 했다. 그렇게라도 아픔을 느끼면 몸이 생존에 위협이 됨을 느끼는 숨 막힘 보다 물리적으로 고통이 있는 곳으로 스스로 시선을 옮겼다.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매일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투쟁을 했고, 손목에는 더한 고통들이 가해졌다. 때마침 회사 사정상 정규직 전환에 대한 어려움이 팀 전체 회의 상에서 공식화가 되었고, 그 순간 나는 삶을 놓았다. 고통은 심해지고 일도 그만두는 시점이겠다,


  그만 살아야지.

  그때 상황에서 더 이상의 생존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시간이 흘러도 신체는 기억한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돈 당겨서 유럽 여행을 갔다. 오랜 소망이었던 파리의 에펠탑에 도착하자 눈물이 다 났다. 현실감 없는 낭만적인 쉼을 겪으며 세상이 이렇게 안락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 산다면 프랑스에 한 달 이상 살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간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이후 반년 동안 이루어진 행동들은 지금의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아마 이전에도 상처 입힌 행동들은 많았겠지만).


  결국 병원을 바꾸고, 의사 선생님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속을 했고, 꾸준하게 치료를 해 나갔다. 본격적인 불안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일상에 피해가 될 정도의 일들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작년부터 인데놀을 비롯한 신경 안정제의 양이 대폭 줄었고, 지금의 나는 병원을 다닌 이래로 최소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위협적임을 느끼기 전부터 안전한 것들은 안전하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잘 맞는 약이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지만, 공포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일도 괜찮아지는 데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가끔 몇몇의 상황들은 나를 무의식적으로 소스라치게 만들거나 온몸을 떨리게 한다. 잔잔한 공간에 갑자기 크게 울리는 목소리, 자동차의 클락션, 술에 취한 빨간 얼굴의 중년 아저씨, 사람이 너무나 많은 공간, 물리학적 아버지에 관한 대부분의 것,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순간,


  그리고 간혹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얼마 전, I와 술을 마시다 이러고 저랬던 나의 아주 극소수 경험을 공개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I는 그런 행동이 좋지 않은 것임을 말했고, 그런 상황들에 놀랄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 그런데 어쩌겠니. 자제해야지 마음먹어도 무의식적인 반응은 컨트롤할 수 없는 걸.


  오늘의 나는 잠들지 않고 이 순간 무엇이 위협적인지를 여전히 묻고 있다.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는 가위눌림? 우울을 이제야 회복했는데, 언제 다시 우울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렇게 내일 하루도 망할 것 같다는 느낌? 일주일 중에 하루만 잘 살아도 나에게는 성공인데, 내 주제 파악을 못해서 매일이 완벽하지 못하면 좌절을 겪나 보다. 우영아, 지금의 네 수준과 분수에 맞게 살아.


  더 이상 이유를 묻는 것보다 급 당긴다고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탓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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