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네 Nov 14. 2021

Under the BLUE

우울 그 밑에서


나는 벗어났어. 며칠 전까진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거든. 말 그대로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 싶더라니까. 무슨 생각을 하든 그 끝은 날 찌르는 것들만 남았어. 그것들이 심장을 쿡쿡 찌르더니 나중엔 쥐어짜더라고. 이런 감정, 사실 이 뭔지 모를 감정을 언젠가는 동경했던 것 같아. 사람을 더 깊어 보이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거였어. 그건 사람을 저 밑, 보이지 않는 그곳까지 끌어내려 버리더라고. 막상 내려가 보니 온갖 것들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어.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수면 밖으로, 햇빛을 향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기꺼이 내려갔던 건데……. 아니었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 어느새 내 발목엔 무거운 쇳덩이가 달려있었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어. 숨을 쉴 때마다 모래와 자갈이 섞여 들어와 내 가슴을 찢는 것 같았어. 그 고통 속에서 난 언제쯤 죽게 될까, 일 초를 하루처럼 세고 있었어.




낯선 감각들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그쯤이었던가. 심장을 쿡쿡 찌르든,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든, 내 가슴을 찢든, 그러거나 말거나 할 그쯤. 그때 나는 매 순간 고통스러워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아픔에조차 익숙해져 있었어. 괴로움에 익숙해진 나머지 밖에 놓고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들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했던 것이었는지 잊어버렸어. 관심이 없었어. 사라지든, 훔쳐지든, 망가지든. 그것에 대한 일이 아니라도, 아무런 생각조차도 못 했어. 그냥 생각을 안 했어. 그래, 아무튼 그냥 그러고 있었을 때였어.


갑자기 내 몸이 붕 뜨는 거야. 엄청나게 힘센 누군가가 나를 걷어 차올린 것처럼.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던 것 같기도 해. 뭐가 뭔지 생각을 해 보기도 전에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아팠어. 반짝이고 꿈틀대는 바다의 껍데기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가 두고 온 게 생각나더라. 혹시나 누가 훔쳐 갔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눈물이 쏟아져서 헤엄치기가 힘들었어. 웃기지, 그동안은 관심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소중했으면 두고 가지 말았어야 했을 텐데 말이야. 있는 힘껏 물속을 달렸어. 날 짓누르고 있던 그것들이 이제는 날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기분 탓이었을까? 




근데 내가 두고 온 건 뭐였을까? 열심히 찾고는 있는데. 바위틈이고 모래 속이고 다 뒤져봤는데도 내가 찾는 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것이었을까? 아니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을까? 누군가 훔쳐 간 어떤 것일까? 도대체 난 뭘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걸까? 기억도 못 하면서 난 계속 찾아. 그렇게 찾다 보면 찾아질 것처럼. 기억이 날 것처럼. 내 눈앞에 나타날 것처럼. 저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거였던 것 같기도 해. 소중했던 그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아 다시 던져버려. 소중했다가도 다시 하찮게 느껴져.


내가 그걸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난 다시 쇳덩이를 끌어안고 가라앉게 될까? 다시 찔리고 짓눌리고 찢길까? 이제는 그곳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알아. 그곳에 다시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아. 


저기 구덩이 속 반짝이는 게 보여. 저곳에 가면 뭔가 떠오를 것도 같아. 찾아낸 것 같아. 내가 놓고 온 것. 한때는, 아니, 지금 더 소중한 그것. 모래가 급히 내 발을 붙잡는 걸 보니 맞는 것 같아. 아니면 어떡하지? 난 그걸 찾아낼 수는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최악의 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